2023년 ‘무역협정 프로그램에 대한 미 대통령의 통상정책 의제 및 전년도 연례보고서’(이하 통상정책의제)는 크게 5개 부문으로 나뉜다. ①노동자 중심(worker-centered) 무역정책의 진전 ②미국·중국 무역관계 재정립 ③핵심 무역파트너와의 협력 및 다자기구(multilateral institutions) 강화 ④집행을 통한 무역정책의 신뢰성 증진 ⑤공정하고 포용적이며 견고한 무역정책 증진과 이해관계자(stakeholders) 참여 확대다. 이 5개 부문별로 다시 세부 의제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노동자 중심 무역정책 부문의 세부 의제는 노동자의 권리 강화, 탈탄소와 친환경 정책의 촉진, 미 농업지원, 공급망 탄력성 강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노동자 중심’이라는 단어는 바이든 행정부 무역정책의 핵심가치다. 이 핵심가치를 기본으로 여러 무역정책이 가지를 치면서 전개되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 강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무역협정 조항은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 USMCA)의 신속대응 메커니즘(Rapid Response Mechanism, RRM)이며 이미 작년에 멕시코 소재 4개 사업장에 대해 발동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와 같은 조치를 적극적으로 집행, 무역상대국이 노동자 권리를 제한해 노동비용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불공정 경쟁 행위를 근절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또한 보고서는 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한 무역정책을 여러 다자기구의 의제로 제안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한편 탈탄소 사회 촉진과 친환경 목표 달성은 중요한 정책 목표이므로 미 농산물의 수출확대에도 바이든 행정부가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공급망 문제 역시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행정명령으로 조사(반도체·대용량 반도체·핵심광물·의약품 등의 4대 품목)를 지시한 바 있는 미 행정부의 핵심 관심 사항 중 하나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우방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공급망의 탄력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며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주요 7개국(G7), 주요 20개국(G20) 등 여러 다자기구에서 중요한 의제로 논의를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중국 무역관계 재정립은 미·중 두 나라 무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무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의제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 바라보는 중국은 불공정·반경쟁 무역관행의 대표국가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중 관계가 노동자 중심 무역정책의 원리에 기반할 수 있도록 총체적(holistic)이고 실용적인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적 위치를 점하기 위해 인프라법, 반도체와 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통한 국내 투자 확대도 강화할 것이라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한편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들은 무역파트너들과 공유해야 하며 이들 국가와 협력해 무역정책을 설계할 때 미국의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따라서 핵심 무역파트너와의 협력 및 다자기구 강화는 미국의 중요한 통상정책의제다. 다자기구로는 IPEF, 미주 파트너십(Americas Partnership for Economic Prosperity), 세계무역기구(WTO), APEC,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을 들면서 이들 기구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양자 간 의제의 진전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자기구 중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IPEF와 WTO인데 IPEF 협상은 이미 1, 2차를 거쳐 5월 8일부터 15일까지 3차 협상이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현재 사실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WTO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특히 분쟁해결기구의 판결은 WTO의 설립 원칙에서 벗어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주요 무역파트너들과 협력해 노동자 중심의 무역정책 원리를 반영할 수 있는 WTO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보고서에서 밝혔다.
보고서는 또한 강력한 집행이 노동자 중심 무역정책의 핵심요소라고 강조하면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 불공정하고 반시장적인 관행에 대처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지식재산권의 수호를 강조하면서 지식재산권이 주요 경쟁력인 산업(IP-intensive industries)이 고용하고 있는 미국 내 일자리가 6,000만 개 이상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고의적인 통화 평가절하를 통해 불공정한 무역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법·정책·관행 등을 포함)에 반대하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환율조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통상정책의제의 하나인 공정하고 포용적인 무역정책이 추구하는 바는 국가경쟁력의 강화와 무역으로부터 혜택이 인종과 성 평등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USTR은 무역과 투자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인종과 성 평등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으며 분배효과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실례로 USTR은 2021년 10월 USITC(US Internatinal Trade Commission)에 의뢰해 무역정책이 노동자의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분석을 수행한 바 있다. 보고서는 향후에 USITC와 협력해 무역정책의 소득분배 효과 분석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USTR은 무역정책의 입안과 수행에 있어 의회를 핵심 이해관계자로 인식하고 있으며 의회와의 소통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USTR은 28개의 자문기구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정기적으로 노동조합·환경단체·비영리단체·지방정부·산업계·학계 등의 이해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상의 통상정책의제 내용을 볼 때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2년간의 통상정책 기조가 하반기에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트럼프 전 행정부와 바이든 현 행정부가 내세우는 무역정책의 가치는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보호무역주의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이전 정부와는 달리 다자기구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다자기구에서 주요 의제가 어떻게 합의되느냐에 따라 다소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은 ‘노동자 중심’이라는 가치를 다자기구 협정에서도 관철하고자 할 것이지만 미국의 주장이 100% 수용된 다자기구는 다른 국가 입장에서는 그 존재 의의를 가질 수 없으므로 현재의 통상의제 내용에서 소폭 변화는 있을 수 있다. 한편 세계무역의 규범을 정하는 WTO의 개혁은 생각보다 훨씬 지체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입장에서는 현재의 WTO 규범을 통한 중국 제재는 실효성이 없고 WTO 개혁을 통해 중국을 타깃으로 한 새로운 규범을 도입하더라도 다른 회원국들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을 타깃으로 한 규범은 다른 저개발국가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WTO 개혁보다는 IPEF 협상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가 미국 통상정책의제의 변화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금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자유무역을 어느 나라보다도 강하게 지지해온 미국의 정책 전환은 한국 경제에서 상당한 도전이다. 특히 경제와 안보가 분리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더욱 그 대응책을 찾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그 우호국들의 국내총생산(GDP) 합은 세계 전체 GDP의 65%를 넘기 때문에 미국 중심의 무역블록에서 이탈하는 것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미국 통상정책의제가 추구하는 핵심목표를 충족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삼고 미국과의 양자 간 협상 또는 협력을 통해 우리의 이익을 창출하는 전략이 최선일 것이다. 통상정책의제 보고서에서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무역파트너이자 긴밀한 동맹국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공급망 탄력성 강화, 신흥 기술, 디지털 경제, 지속 가능한 무역 등의 의제에 있어서도 한·미 간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 차원 높은 안보협력관계가 설정된 만큼 이를 무역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맹국을 상대로 한 강력한 보호무역정책은 양국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는 점을 논리적·실증적으로 증명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하며 무엇보다 한국 상품이 미국 정책에 의해 미국 또는 타 국가의 상품으로 쉽게 대체되지 않을 정도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확실한 대응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