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 소장
미·중 관계는 냉전적인 시각에서 갈등 관계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은 최대 위협이던 소련에 대응하는 전략적인 협력관계로 전환한 바 있다. 냉전이 끝난 후 안보적 협력관계는 약화되고 경제적 문제가 부각됐다. 미국은 중국을 세계경제 질서로 끌어들여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흐름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해주길 원했다. 그러나 중국이 예상보다 빠르게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2030년쯤에는 경제 규모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사회주의와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를 강화하면서 위기의식이 커졌다. 트럼프 정부 들어 두 나라는 전략적 협력관계에서 경쟁관계로 재설정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압박을 가하면 중국이 순응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중국은 미국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고, 미국이 목표로 했던 미·중 무역수지 역전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 장기적인 전략경쟁을 전제로 한 정책들을 통해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했다. 중국은 미국이 신냉전에 준하는 대중 압박 정책을 가한다는 인식 아래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신들의 내적 역량을 강화하고 내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완결시키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 모두 쉽사리 세계 초강대국 지위를 두고 양보하거나 패퇴할 나라들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미·중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로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본격적인 G2(주요 2개국)의 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원호 팀장
큰 흐름에서 보면 미국은 중국의 도전에 대응해야 하므로 트럼프와 바이든 대통령 사이에 큰 기조의 변화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목표와 수단에서 차이를 보인다. 목표 측면에서 트럼프 정부가 중국 정부의 변화 자체를 목적으로 일련의 수단을 활용했다면, 바이든 정부는 그간의 경험에 비춰볼 때 중국 정부를 자유무역 질서에 따르도록 변화시키기 어렵다고 보고 현실적으로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수단 측면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일방적인 수단을 활용했고,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10월 국가안보 전략서나 지난해 5월 블링컨 국무장관의 대중국 연설에서 볼 수 있듯 투자·연대·경쟁의 세 가지 수단을 강조하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연대다. 트럼프 정부와 달리 바이든 정부는 특히 우방국들과 연대를 통해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김흥규 소장
미국은 관세를 놓고 중국에 단계적으로 압박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고 중국도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했다. 트럼프 정부 말기부터 중국과의 관계가 단순 무역경쟁이 아니라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 자체가 미국에 위협이 된다는 인식을 갖고 국가 주도의 경제·무역 정책, 불공정한 전술 측면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세계 5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에서 중국을 분리하는 작업들이 이뤄졌다. 수출통제법 등을 활용해 화웨이를 퇴출하려는 구체적인 노력들이 나타났다. 두 번째는 4차 산업혁명에서 중요한 반도체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조치들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기술유출 방지 등의 조치가 이어졌다. 세 번째로 미국 기업들에게는 리쇼어링(해외진출 기업의 본국 회귀)을 촉구하고 있고, 대만과 한국처럼 핵심 제조 역량을 갖춘 나라들에 대해서는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는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과학기술 자립 등 자국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결국 미·중 관계는 무역분쟁에서 기술패권 경쟁으로 전이되는 상황이다. 과거 자유무역과 대외 개방, 다자 협력을 강조하던 미국이 훨씬 더 보호주의로 돌아선 반면, 대외 개방과 다자주의를 추진하는 중국의 전략이 대비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연원호 팀장
현재 진행되고 있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은 미·중 간 완전한 디커플링이 아니라 일부 분야에 한정된 디커플링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 시기에 처음 관세전쟁을 시작했을 때 미국의 대중국 평균 관세율은 3.5% 정도였고, 중국의 대미 관세율은 7% 정도였다. 이를 맞추기 위해 트럼프 정부가 계속 관세를 올렸고 중국이 그에 대응하다 보니 양국이 25% 수준으로 동일하게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이 관세를 매기는 분야를 보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첨단기술 분야가 미래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가 경제안보라는 개념과 함께 주목받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트럼프 정부 때 타결한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물건을 더 많이 팔고 싶어 하고 중국과 통상을 단절하려는 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 9월 특별경쟁연구 프로젝트(SCSP) 국제 콘퍼런스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수출통제가 미국의 ‘새로운 전략자산’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 점이다. 기존에는 국제 평화와 안정을 위해 제한적으로 활용되던 수출통제를 두고 백악관에서 전략적 자산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은 굉장히 큰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과 갭을 최대한 벌리는 것이 국가안보 이슈라는 점을 최초로 언급했다. 이를 통해 첨단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미국이 디커플링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연원호 팀장
1990년대 미·소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 빠르게 세계화가 진전됐다. 그 과정에서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는 방식으로 구축됐는데, 최근 미·중 경쟁이 심화되면서 다시 떼어내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은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핵심품목과 관련해 신뢰할 수 없는 국가에 공급망을 의존할 경우 국가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직후 서명한 행정명령이 공급망 검토와 관련된 사항이었다. 반도체, 배터리, 희소금속, 의약품과 관련된 공급망을 점검하라는 내용이었다. 핵심품목과 관련해서는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공급망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주요국들은 두 가지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첫 번째는 미국처럼 리쇼어링 전략을 취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과 연대를 통해 공급망 재편을 극복하려 한다. 이것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므로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 우선주의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는 산업정책을 통해 보조금을 과하게 지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데, 현재 WTO 자체도 마비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처럼 중견국 위치에서 개방경제로 성장해야 하는 국가 입장에서는 자유무역질서가 굉장히 중요하다. 다행히 실제 재세계화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김흥규 소장
미국과 중국은 서로 다른 전략적 접근을 취하는 것 같다. 미국은 양대 진영론적인 관점에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진영의 대립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고 민주주의 진영을 재결속하기 위한 경제안보 전략을 짜고 있다. 개방적인 다자협력보다는 특정 국가를 억제하기 위한 연대를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미-EU 무역기술위원회(TTC)를 중심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정책 공조,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반도체의 안정적인 공급과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칩4)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오히려 미국과 직접적인 군사안보적 충돌이나 대응체제를 구축하기보다는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중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주도하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한 가입 의지를 보이고 있고, 신흥경제 5개국인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내 자국의 영향력 확대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대립 구도 속에서 한국은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시장은 글로벌 사우스(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반구 소재 개발도상국)로 분류되는 국가들에 집중되는 추세인데 우리가 발전시켜야 할 첨단기술과 설비는 글로벌 노스(미국·유럽 등 선진국)로 분류되는 미국에 집중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외교안보적인 측면과 경제 분야의 실리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김흥규 소장
세계는 지금 세 가지의 전혀 다른 비전과 전략이 상충한다. 미국은 양대 진영론에 입각해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진영의 대립 구도로 보고 있고, 중국은 중국 중심, 미국 중심, 그리고 중간지대로 나뉘는 천하삼분론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보는 것 같다. 러시아의 경우 자국의 전통적인 지정학적 영향권을 반영하는 4대 영향권론을 앞세우고 있다. 이러한 각축 속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한·미 동맹으로 일종의 편승 전략이다. 두 번째는 헤징(hedging) 전략으로 국제 질서를 복합적이고 다극화된 질서로 전환해간다는 전제하에 유연함을 발휘하는 전략이다. 세 번째는 한쪽에 치우지지 않는 균형 전략이다. 현재 정부는 명백히 한·미 동맹의 관점에 서 있다. 미국으로부터 나오는 메시지를 보면 중국 견제를 넘어 내부적인 역량 강화를 우선시하고, 필요하다면 동맹의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읽히는 지점이 있어 우려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세 가지 균형 전략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전략적 균형을 취하는 세력균형론으로, 미국을 견제하는 전략이다. 두 번째는 현실적으로 위협을 주는 세력에 대해 균형을 취하는 위협균형론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이다. 세 번째는 철저히 국익에 입각한 실리를 챙기자는 이익균형론 입장이다. 현재 우리는 위협균형론 입장과 이익균형론의 관점을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원호 팀장
미국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미국-EU 무역기술위원회(TTC)를 추진하는 것이 과연 순수하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볼 수 있나 하는 생각은 든다. 미국 입장에서는 처음 다자 질서를 추구했을 때 중국의 변화를 기대한 측면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기대만큼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면 전적으로 중국에 대한 견제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좀 더 효율적인 메커니즘의 작동을 위해 함께할 수 있는 그룹을 조직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 힘이 센 친구가 부족하다는 점이 약점이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최근 중국의 행보는 다자 질서를 강조하며 친구들을 더 사귀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라면 중국은 경제안보 관점에서 세계 의존도를 줄이면서 세계가 중국에 더 의존하게 만드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중국이 어느 정도 전략적인 디커플링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안보 측면에서 미국이 주도적으로 많은 정책을 펴고 있는 만큼 미국과의 협상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과도한 자국 중심주의 혹은 과도한 중국 견제로 흘러가지 않도록 협상을 잘해야 한다. 중견국들과의 연대도 굉장히 중요하다. 일본이나 대만, 독일, 네덜란드 등 중견국들과 연대를 강화하면서 협상을 해나가는 전략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가 없으면 안 되는 영역을 구축하고 기술격차를 벌려 나감으로써 우위를 점하는 위치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