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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FTA

ESG 포럼
선형경제에서 순환경제로의 전환
세계는 지금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무역과 국제거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순환경제 부문에 관한 한 유럽연합(EU)이 앞서 나간다. EU는 ‘유럽 그린딜’의 일환으로 2020년 3월 강화된 ‘순환경제 실행계획’을 채택했다. EU는 순환경제 원칙을 전 세계로 확산할 것이라 공언하고 있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ESG센터 센터장 

순환경제의 시작은 ‘제품 설계’에 있다. 제품 디자인 단계에서 상품이 환경에 주는 영향이 80%나 결정된다.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EU는 ‘지속 가능한 제품 에코디자인 규정(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 ESPR)’으로 순환경제를 열려 한다. 그동안 에너지 효율성이 강조됐다면 이제는 내구성(durability)과 재활용 가능성(reusability)이 중요하다. 향후 유럽에서는 이러한 요건을 준수한 제품만이 시장에 나오거나 서비스로 제공될 수 있다. 수입제품도 마찬가지다.
2023년 1월에 발표된 에코디자인 우선순위 제품 목록에는 ①섬유제품, 신발, 가구, 타이어, 장난감 등 최종소비재 12종 ②철, 비철금속, 알루미늄, 플라스틱, 종이, 유리 등 중간재 7종이 선정됐다. 향후 논의를 거쳐 제품별 규제 방향을 정하고 하위 입법이 마련될 예정이다.
국제거래 관점에서는 ‘제품 여권’이 주목된다. 사람이 국경을 이동할 때 여권이 필요한 것처럼 제품을 수출입하거나 거래할 때 여권을 요구하는 것이다. 디지털 제품여권(Digital Product Passport, DPP)이 바로 그것이다(에코디자인 규정 제3장). EU에 수출될 제품에는 각종 정보를 탑재한 디지털 여권을 구비해야 한다. 요구되는 정보는 제품의 지속가능성 및 순환성에 필수적인 정보들이다. 수명 정보, 수리 및 해체 가부, 재활용 원자재 비율 등이 포함된다. 소비자 및 거래관계자에게 투명하게 제품의 지속가능성 정보를 공개하도록 해 순환경제를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DPP는 우선 전자제품에 발급한 뒤 가구, 섬유, 건설 등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배터리 여권은 무엇보다 빨리 추진되고 있다.

선형경제와 순환경제의 차이점

순환경제의 법제화 노력

순환경제를 추동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소비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제품을 오래 사용할 권리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하면 순환경제의 수요가 커진다는 논리다. 그 핵심에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가 있다. EU 집행위는 2023년 3월 ‘상품 수리를 촉진하는 일반원칙 지침’을 제안했다. 이에 따르면 보증기간 중에 판매자는 교체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경우를 제외하고 수리를 제공할 의무가 주어진다. 보증기간 이후에도 소비자가 수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폐배터리는 중금속 때문에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유럽의회는 지난 6월 14일 ‘새로운 배터리 법률’을 채택했다. 이 규정에는 △배터리의 전 주기에 걸쳐 탄소배출량을 측정해야 하는 탄소발자국 제도 △리튬·니켈 등 광물을 재사용하는 재생원료 사용제도 △배터리 여권제도 등이 포함됐다. 배터리는 EU 핵심원자재법의 적용대상이고, 이 법은 핵심 원자재에 대한 EU 역내 생산·정제 가공·재활용 역량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도 폐배터리 재활용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고 있고, 국제적으로 폐배터리 재활용은 규제화·산업화되고 있다.
플라스틱과 포장재도 순환경제의 중요한 과제인데, 유럽은 오래전부터 플라스틱 지침을 통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미 2021년 7월부터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회용 접시·수저·빨대 등이 금지됐다. 2022년 이후에는 영국, 스페인 등 국가별로 플라스틱세를 도입하고 있다. 플라스틱 규제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으로 확대되어 조만간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포장재 관련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EU는 2022년 11월 새로운 포장재 법규를 제안했다. △재사용 가능한 포장재 사용 촉진 △ 과도한 포장 제한 △불필요한 포장 최소화 등을 주요내용으로 한다. 특히 2030년부터 EU 안에서 유통되는 모든 포장재는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와 디자인으로 생산돼야 한다.
섬유 분야도 마찬가지다. 2022년 3월 EU는 패스트 패션 규제를 예고했다. 옷을 일회용품과 같이 소비하고 버리는 것을 중단하라는 내용이다. 2030년까지 △재활용 섬유 일정 비율 이상 사용 의무화 △재고품 대량 폐기 금지 △일정 수준 이상의 내구성 요건 등을 구체적으로 정한다는 방침이다. EU 사이트에 가보면 패스트 패션의 종식을 선언하고 있다.

순환경제를 실현하려면 제품 설계방법을 바꾸고, 순환경제 프로세스를 촉진하며,
지속 가능한 소비를 장려하고, 폐기물을 줄여나가야 한다.

순환경제가 성장동력으로 부상

이제까지 EU의 규제를 위주로 설명했지만, 순환경제로의 전환은 세계적 흐름이다. 예를 들어 일본은 2001년 ‘순환형 사회 형성 추진 기본법’을 만들고, 하위 법규로 ‘자원 유효이용 촉진법’과 다양한 리사이클링법을 만들었다(용기포장 리사이클링법, 가전 리사이클링법, 식품 리사이클링법, 건설 리사이클링법, 자동차 리사이클링법, 소형가전 리사이클링법). 중국도 2008년 ‘순환경제 촉진법’을 제정했고, 우리나라도 작년 말 ‘자원순환기본법’을 전면개정해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을 만들었다. 다자 차원에서도 G7과 G20이 회원국의 자원관리 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모니터링을 권고했다.
우리 기업들은 제품 개발 단계부터 전 주기에 순환경제를 고려해야 한다.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공시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순환경제 관련 비즈니스를 개척하고 관련 기술을 집적해야 한다. EU는 순환경제가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도 순환경제를 기회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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