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G7 정상회의는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보존’과 ‘글로벌 남부(Global South)와의 연결’을 주제로 우크라이나 문제, 외교안보, 경제안보, 디지털, 기후·에너지·환경, 복합위기 대응 등 글로벌 이슈 전반을 다루었다. 특히 ‘중국을 둘러싼 제반 문제’에 대해 긴밀하게 연대하기로 했고 실제로 중국과 관련한 별도 항목이 G7 개최 역사상 처음으로 포함됐다. 그 핵심은 힘을 통한 현상 변경을 방지하고, 경제안보 차원에서도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합의를 배타적 지역주의로 규정했다. 문제는 이러한 미·중 전략경쟁의 추세가 장기적이고 구조적으로 전개될 위험이 크지만 과거 냉전시대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부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중국에 대해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이를 공동성명에 반영했다. 그러므로 한국도 새로운 전략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번에도 참관국 자격으로 확대정상회의에 참석해 글로벌 중추국가의 새로운 외교방향을 제시했다. 향후 한국은 G7 국가, 유사입장국가와 연대해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고 과학기술 표준 제정에 적극 참여하면서도 한국 경제의 회복력을 위해 맞춤형 대중국 관계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각국이 경제안보를 국정 목표로 삼고 디리스킹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협력을 유지하되 동력이 약화될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2023년 5월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주제는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보존’과 ‘글로벌 남부(Global South)1)와의 연결’이었다. 이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 전략경쟁, 대만해협에서의 긴장 증대, 각종 비시장(non- market) 행위 등이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위협한다고 보는 한편 식량·보건·부채 위기에 빠진 글로벌 남부에 대한 지원과 연대를 증진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세계경제 및 외교안보, 디지털 통상 협력, 글로벌 인프라 및 투자를 위한 파트너십 촉진,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 기후·보건·에너지 및 식량안보·성평등 문제를 폭넓게 다루었다. 또한 그 논의 결과는 G7 정상회의 공동성명, 5개 분야별 개별성명 및 4개의 별도문서(부속서)에 반영했다. G7 회의에 초청받은 우리나라는 복합위기 대응,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한 공동의 노력, 평화와 번영을 주제로 한 확대정상회의에 참석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한국 외교의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제시했다.
이번 회의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이슈는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에서 중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실제로 G7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과 관련된 별도 항목을 채택했고,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내용을 곳곳에 반영했다.
첫째, ‘중국을 둘러싼 제반 문제’에 대한 대응과 관련해 긴밀하게 연대하기로 했다는 점을 명기했다. 여기서 말하는 제반 문제는 최근 미·중 전략경쟁 과정에서 나타난 글로벌 공급망, 중국 정부의 시장개입,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핵심기술에 대한 대중국 통제를 염두에 둔 것이다.
둘째, 인도·태평양의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대만해협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중국이 국제법 속에서 의무를 다해야 하며, 국제평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기서 말하는 국제평화의 의제는 사실상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강제노동을 포함한 인권문제와 티베트·홍콩 문제를 겨냥한 것이다.
셋째, 경제안보를 공식 의제로 별도로 다루면서 중국의 경제적 제재 행위에 대해 G7 국가가 함께 조율된 메커니즘을 구축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민주주의 가치의 공유 및 법에 기반한 디지털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 다자협력을 논의했다. 최근 들어 중국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이 잇달아 미국의 챗지피티(Chat GPT)와 유사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 데 따른 국제사회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다만 생성형 인공지능을 규제하는 데는 G7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아 일단 ‘적절한 규제의 필요성’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절충했다.
그러나 이번 G7 정상회의에서는 글로벌과 중국 이슈에 대한 총론에는 합의했지만, 미묘한 입장 차이도 있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미국 영공에 중국 정찰풍선 출현 이후 냉각된 미·중 관계가 곧 해빙될 것”이라고 밝혔고 “우리는 중국과 디커플링(decoupling)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회복탄력성을 위해 디리스킹(derisking)2)과 다변화를 모색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독일과 프랑스 정상, 그리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도 이미 중국을 방문해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에 힘을 실어주었다.
비록 G7 공동성명에서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이라는 접근법을 취했으나 중국은 탈중국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중국학계를 중심으로 G7 회의 결과가 중국 외교에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수위도 상징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과잉대응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히려 G7 국가 내에서도 대중국 견제의 구체적 범위와 방법을 놓고 입장 차이가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세계 최대 시장과 파격적인 외자정책을 내세워 미국과 유럽 기업을 적극 유치하면서 G7 국가 내부, 그리고 서방국가 정부와 글로벌 기업 사이에 균열이 나도록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은 2022년 10월 시진핑 3기 체제 등장 이후 외부로부터의 압력과 영향력을 약화(blunt)시키는 한편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왔다. 최근에는 서방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규칙 기반 국제질서, 미국의 동맹전략 강화 등에 대응해 3부작의 새로운 담론을 제시한 바 있다.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 등이 그것이다. 중국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중재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 중재 등을 시도한 바 있다. 또한 중국이 주도할 수 있는 브릭스 플러스(BRICS+)3)를 통해 탈달러를 추구하는 등 미국에 대한 반균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G7 정상회의가 개최된 시기에 일종의 맞불전략으로 중국·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회의를 개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이 상호존중에 기초한 진정한 다자주의이며 인류 운명공동체 건설에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미·중 전략경쟁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을 비롯한 G7 국가들이 경제안보를 중요한 국정 목표에 넣고 지정학·지경학의 위험을 줄이고 있는바, 글로벌 협력은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면서 변화하는 국제경제 현실에 부응하는 한국 맞춤형 통상전략과 대중국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첫째, G7 거버넌스는 현재의 구성국가를 중심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은데, 실제로 이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여러 차례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아 한국의 변화된 국제적 위상을 높여왔다.4) 이런 점에서 현실적으로 G7 가입을 위한 대선진국 외교를 강화하는 한편 기존 G7 플러스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둘째, 유사입장국가(like-minded countries)와의 포괄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급망 회복력을 확보하고 광물자원 등의 경제안보화 현상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중국 리스크에 대해서는 G7 국가와 연대해 공동 대응하는 한편 대안 시장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이와 함께 핵심 전략물자 등을 안정적으로 비축하고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공급망 리스크가 기업에 그대로 전가되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 간 데이터를 공유하는 등 시장 가까이에 정부가 있어야 한다.
셋째, 기후변화와 환경문제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이 이번 회의에서도 다시 확인됐다. 특히 운송 부문 탄소배출량을 50% 감축하고 석탄화력발전 축소에 대한 단계적 목표를 설정하기로 합의했다. 이 점에서 우리도 30년 이상 노후한 석탄발전소 폐지 등을 국정과제로 설정하는 등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에 대한 미래전략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중국 정책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가치와 원칙을 유지하는 한편 국익 중심의 한·중 경제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이 중국 견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반도체, 배터리와 같은 핵심기술에 대한 중국 공급망 분리라는 냉엄한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범용기술이나 성숙기술을 중심으로 한·중 공급망 협력을 찾을 필요가 있다.
다섯째, 향후 미래 세계질서는 당분간 데이터 플랫폼을 둘러싼 경쟁에 따라 판도가 결정될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도 생성형 인공지능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표준과 규제방안을 논의했고 올해까지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국내 관련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므로 섬세하게 모니터링하면서도 한국형 인공지능 규제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대전환의 시대다.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 등 서방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도전받고 있고, 이 과정에서 각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더 확산되고 있다. 협력과 갈등 속에서 미국은 미·중 전략경쟁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디커플링 No, 디리스킹 Yes”라는 발언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한국은 한·미 동맹과 G7 등 선진 민주주의와의 가치연대를 굳건히 하는 한편 대중국 정책에서 상호 존중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중국 시장의 기회를 찾아가는 복합방정식을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