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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FTA

ESG 포럼
양자·다자 통상협정과 ESG
지난 2020년 캐나다·칠레·뉴질랜드 세 나라는 ‘글로벌 무역과 성평등 협정’을 체결했다. 성평등을 단일 주제로 한 최초의 통상협정이다. 성평등을 포함해 노동·환경·인권· 소비자·중소기업 보호에 이르기까지 지속가능성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는 통상협정의 중요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통상협정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동력이고, 통상협정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주류화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른바 ‘모두를 위한 통상(trade for all)’ 정책이다.
임성택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사진 한경DB
지난해 6월 22일 네덜란드-독일 국경에서 네덜란드 농부들이 네덜란드 정부가 발표한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보편적 가치를 무역에 반영하는 가치 기반 무역의 등장

EU집행위원회가 2017년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교역 및 투자정책 마련 내용을 담은 ‘EU 모두를 위한 통상전략 보고서’를 EU의회에 제출했다. 내용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 및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지속가능발전을 추진해나가고 있고, 지속가능발전은 모든 자유무역협정(FTA)의 핵심원칙 중 하나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EU는 통상협정 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각종 영향평가를 통해 환경·인권·성평등·소비자·중소기업 보호 등에 주력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도 통상정책에서 ESG와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를 이른바 ‘가치 기반 무역’이라고 한다.
환경, 노동, 인권 등에 관한 규제가 강한 선진국과 달리 교역 상대방 국가가 낮은 규제만을 펼친다면 공정한 무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셜 덤핑’이라는 말이 있다. 현저히 낮은 저임금으로 생산한 저렴한 제품을 해외시장에서 파는 것을 말한다. 노동규제가 낮은 나라의 제품이 노동규제가 높은 나라에서 싸게 팔리는 것이 공정한가? 환경규제도 마찬가지다. 환경규제는 높은 환경비용을 초래하고 그만큼 가격 경쟁력을 낮춘다. 이런 상황은 공정한 무역을 방해할 뿐 아니라 지속가능발전에도 역행한다. 이런 이유로 선진국들은 ESG를 새로운 통상장벽으로 내세우고 있다. 선진국들은 양자협정인 FTA를 통해 이를 관철한다. 다자협정보다 용이하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도 환경 및 지속가능성을 무역과 연계하려는 시도는 계속됐다. 그러나 다양한 국가의 이해상충으로 논의만 무성하고 결실은 보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FTA에 지속가능성·환경·노동을 연계하는 경향이 늘어났다.
지역협정(RTA)과 다자협정에서도 이런 흐름은 나타나고 있다. 일본, 캐나다, 호주, 멕시코, 싱가포르, 칠레, 베트남, 뉴질랜드 등 11개 국가가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도 강력한 환경챕터와 노동챕터를 규정했다. 2022년 5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출범했는데 여기서도 노동 및 환경, 청정에너지로의 전환, 탈탄소화를 위한 기술협력 등의 의제를 포함하고 있다.

통상협정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동력이고,
통상협정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주류화한다.

의무 위반 시 특혜관세 철회, 수입금지 등의 불이익

협정의 일반예외조항 또는 전문에 지속가능성을 언급하는 낮은 차원부터 상호협력, 실질적 환경규정, 특별환경 이슈, 환경법 준수, 메커니즘 이행, 분쟁해결절차, 환경영향평가 실시, 부속협약 체결, 공공참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정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통상조약상 지속가능성 규정을 위반할 경우 두 가지 해결방법이 있다. 하나는 협력과 대화를 기본으로 하고 무역제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 패널을 구성해 사안을 검토하고 시민사회와의 대화, 정부 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둘째는 의무 위반에 대해 특혜관세 철회, 수입금지 등의 제재로 이어지는 경우다. 국제적으로는 점차 후자가 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아래 두 가지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서는 이른바 ‘신속대응 메커니즘’을 마련했다. 예를 들어 멕시코 기업이 노동권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미국 내에서 비정부기구(NGO), 노동조합 등이 청원해 조사절차를 개시할 수 있다. 노동법을 위반한 멕시코 사업장으로부터의 수입에 대해서는 협정상 특혜 중지가 가능하다. 분쟁해결절차도 신속하게 진행된다.
둘째, OECD가 다국적 기업의 인권실사 의무 위반에 대해 마련하고 있는 분쟁해결절차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른바 국가연락사무소(NCP)를 통한 이의신청절차다. 2017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는 크레인 사고로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고 이후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는 한국 국가연락사무소(한국 NCP)에 해당 기업들이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면서 이의신청을 했다. 해당 업무를 발주하거나 설계에 참여한 유럽 소재 기업들에 대해서는 노르웨이 NCP에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한국 및 노르웨이 NCP는 해당 기업에 대해 기업의 책임경영 이행을 권고하는 최종성명서를 채택했다. NCP의 결정은 권고적 효력밖에 없지만 기업은 이를 무시하기 어렵다. 한국 기업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OECD의 프로세스가 작동되는 것이다.
통상협정에서 지속가능성과 ESG 이슈는 점점 더 강화될 것이다. 내용도 다양해지고 제재도 강화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속 가능한 통상정책을 수립하고, 국내 기업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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