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20대 국정과제❶에서 ‘탈원전 정책 폐기 및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를 세 번째 과제로 포함했다. 지난해 7월 초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❷에서는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안보 강화, 에너지 신산업 창출을 통한 튼튼한 에너지시스템 구현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 따르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안전성 확보를 전제로 한 계속운전 추진 등을 통해 2030년 원자력 발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아울러 일감 조기 창출 등을 통한 원전생태계 활력 복원,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독자적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 노형 개발 추진 등도 제시했다. 8월에는 ‘원전수출전략 추진위원회 및 추진단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❸에 따른 추진위원회와 추진단이 출범해 원전 수출전략 수립은 물론 원전산업 생태계 복원을 위한 각종 정책을 발굴해 추진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2022년 12월 개정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 가이드라인’❹에서 SMR 등 미래형 원자력 기술 개발사업과 신규원전 건설 및 가동원전 계속운전을 위한 투자를 녹색금융 대상에 포함시켰다. 2023년 1월에는 신한울 3·4호기 건설과 안전성 확보를 전제로 모든 가동 원전의 계속운전을 포함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❺(제10차 전기본)이 공고됐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사업’도 총 3,992억 원(민자 1,245억 원 포함)의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동사업으로 확정돼 사업단 출범을 앞두고 있다.
원전산업의 육성은 기본적으로 원전 개발·이용 사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탈원전 정책으로 중단됐던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허가기간이 만료된 가동 원전의 계속운전 추진, 총체적 국가 역량을 동원하는 수출추진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산업이 상당 수준 훼손됐으므로, 다양한 정책수단을 동원해 원전산업계를 정상적인 상태로 복원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2년 6월 개최한 원전산업 협력업체 간담회에서 ‘원전산업 협력업체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9월에는 ‘원전산업신속지원센터’를 원전업체들이 다수 위치한 경남 창원에 개소하는 등 원전생태계 복원을 위한 지속적인 지원책을 추진 중이다. 신속지원센터는 각 지역 지원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원전업계 애로·건의 해소, 기업 지원요청(자문 등) 대응, 지원정책 현황 파악 등을 통해 다방면에 걸친 맞춤형 원스톱 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2023년 업무보고에서 신한울 3·4호기의 조속한 건설 추진은 물론, 전년 대비 1.1조 원이 증가한 3.5조 원의 일감을 원전생태계에 공급하고, 혁신형 SMR 연구개발사업을 본격 추진하는 등 원전산업 재도약에 주력할 계획임을 밝혔다. 원전 수출은 원전산업 육성에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더욱이 ‘팀 코리아’로 불리는 한국 원전산업계는 아랍에미리트(UAE) 사업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원전 공급자임을 과시한 바 있다. 2022년 8월 출범한 원전수출전략 추진위원회는 그동안 세 차례의 회의를 갖고 원전 및 관련 산업의 해외수출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을 논의해왔다. 2022년 8월 3조 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10월에 폴란드와 원전건설 협력의향서(LOI) 및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실제 성과가 계속 이어지리라 기대한다.
➊ 원전 협력업체에 올해 925억 원 규모 긴급 일감 발주
➋ 2025년까지 총 1조 원 이상 원전 일감 신규 발주
➌ 맞춤형 수주전략으로 수출역량을 결집해 업계의 일감 연속성 강화
➍ 총 3,800억 원 규모 금융애로 해소 지원과 6,700억 원 규모 기술투자
➊ 원전 중소기업을 대상 1,000억 원 규모의 긴급자금 공급
➋ 원전 중소기업 특화 R&D 신설
➌ 시중은행 협력을 통한 부실 발생기업 지원
➍ R&D 200억 원 우선 지원(2022), 250억 원 규모 원전기업 특화 R&D 신설(2023)
2022년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량은 17만6,054GWh로서 전체 발전량 59만4,392GWh의 29.6%를 차지했고➏, 원전 25기의 평균 이용률은 81.6%였다➐. 제10차 전기본에서는 2030년 발전량 201.7TWh 및 발전량 비중 32.4%, 2036년 발전량 230.7TWh 및 발전량 비중 34.6%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 건설 중인 신한울 2호기와 새울 3·4호기(신고리 5·6호기에서 명칭 변경)와 곧 건설을 재개할 신한울 3·4호기, 그리고 허가기간이 끝나는 가동 원전들의 계속운전까지 고려한 것이다. 수력을 포함해 부존 에너지 자원이 빈약하고 고립된 에너지 섬인 우리나라가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및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려면, 기술집약적 준국산 에너지인 원자력 발전량 비중을 40~50% 수준으로 높여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한편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2년판 세계에너지전망(WEO-2022)에 따르면, 2021년과 비교한 2050년의 원자력 발전량이 현 정책 유지 시나리오(STEPS; Stated Policies Scenario)에서는 53%, 선언된 목표 시나리오(APS; Announced Pledges Scenarios)에서는 84%, 탄소중립 시나리오(NZE; Net Zero Emissions by 2050 Scenario)에서는 109%씩 각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가동 원전 중에서 30년 이상 운영된 것이 약 70%이고 40년 이상도 약 30%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2050년까지 향후 약 25년간 최소한 현재 가동 중인 용량 이상의 신규원전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현재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는 SMR이 203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상용화돼 시장점유율을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신규원전 건설에는 미국, 영국 등 기존 원자력 국가들뿐만 아니라 폴란드, 이집트, 튀르키예, 방글라데시, 사우디아라비아 등 원자력을 새롭게 도입하려는 국가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SMR은 경제규모가 크지 않거나 관련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은 개발도상국들도 상대적으로 쉽게 건설·운영할 수 있어서 시장확대 잠재력이 크다. 기술 자립과 세계 최고의 상품 경쟁력 확보라는 기적을 일구어온 우리나라 원자력계에 커다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원전산업의 지속발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일감 확보다. 여기에는 국내 신규원전 건설, 국내 가동 원전 유지보수, 해외 원전 일괄수출, 해외 원전시설 개별 설비·서비스 공급 등이 포함된다. 궁극적으로 대기업과 중소 전문기업 모두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어 세계 원전시장의 핵심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 그러나 탈원전 정책을 거치면서 훼손된 국내 원전 전문기업들의 경쟁력 복원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며, 정책적으로 잘 조율된 국내 사업을 통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원전산업 인프라 유지·강화 관점에서 국내 원전 건설을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는 원자력 강국인 프랑스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1980년대를 전후해 표준화된 원전(P4·N4)들을 대규모로 건설해 원자력 점유율이 80% 수준에 이르렀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신규원전 건설이 급감하면서 원전산업 생태계가 거의 붕괴됐고, 이는 자국과 핀란드에서의 유럽형 가압경수로(EPR) 건설 사업이 난항을 겪는 핵심 원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나라도 국내 원전 건설과 UAE 수출이 겹치면서 심각한 인력부족 문제 등을 겪었으나, 탈원전 정책으로 신규원전 건설이 지연되면서 급격한 일감 감소를 겪은 바 있다. 제10차 전기본에는 신한울 3·4호기 후속 신규원전 건설이 반영되지 않았는데, 민주적이고 실효성 있는 절차를 신속하게 마련해 신규원전 부지 확보를 추진해야 한다.
가동 원전의 유지·보수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가동 원전 계속운전 시 안전성·운전성능·운전편의성 등을 향상시켜서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원전 운영회사가 설비개선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계속운전 허가기간을 현재의 10년 단위에서 미국, 일본 등과 같은 20년 단위로 늘려서 적극적인 설비개선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정부는 또한 국내 원전기업들의 기술·사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SMR 개발 등 미래형 R&D사업에 원자력 전문기업의 참여를 확대하고, 민간기업 중심의 사업화 전략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