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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그림으로 보는 세계화의 역사
뉴딜아트의 빛과 그림자
미국의 루스벨트 행정부는 1933년부터 ‘정부 지출에 의한 고용증대’로 대표되는 뉴딜(New Deal) 정책을 추진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예술 분야에도 뉴딜이 시행됐다는 것이다. 뉴딜의 일환으로 미술가들이 정부에 고용돼서 우체국 등 공공기관에 벽화를 그렸다. 이렇게 탄생한 미술작품을 뉴딜아트(New Deal art)라고 부른다. 뉴딜아트 프로젝트는 많은 미술가에게 일자리를 주어 그들이 미술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왔으나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다.
문소영 <그림 속 경제학> 저자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미국 매사추세츠 앨링턴 우체국의 벽화(1930년대, 작가 미상),
미국 공공사업진흥국(WPA)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

빈곤에 시달리는 화가들에게 일자리를

1929년 10월 이른바 ‘검은 목요일’과 ‘검은 화요일’의 주가 대폭락이 일어났다. 곧이어 경기침체가 뒤따랐다. 소비와 생산과 교역이 급감했고 엄청난 수의 기업과 은행이 도산했고 실업률이 치솟았다. 이 난국을 타개하려면 정부가 나서서 기업 투자의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을 취하거나 부족한 기업 투자를 메울 수 있는 정부 지출을 해야 한다. 특히 불황이 심하면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공공사업에 투자를 해야 한다. 이것이 케인스가 주창한 ‘유효수요의 원리’의 핵심인데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미국의 루스벨트 행정부는 1933년부터 ‘정부 지출에 의한 고용증대’로 대표되는 뉴딜(New Deal) 정책을 추진했다. 흥미로운 점은 예술 분야에도 뉴딜이 시행됐다는 점이다. 뉴딜의 일환으로 미술가들이 정부에 고용돼서 우체국 등 공공기관에 벽화를 그리게 됐다.
한 화가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루스벨트는 기막힌 아이디어라고 감탄했다. 빈곤에 시달리는 화가들에게 일자리를 줄 뿐만 아니라, 미술관에 갈 시간적·금전적 여유가 없는 서민들도 진짜 그림을 실물로 볼 기회가 아닌가? 루스벨트는 곧 재무부에서 이 일을 담당하도록 했다. 재무부가 연방 건물들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무부는 1933년 12월부터 1934년 6월까지 공공미술 프로젝트(PWAP)를 운영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3,700여 명의 미술가가 고용돼 미국 곳곳의 공공건물과 공원을 장식할 대형 벽화, 그림, 조각, 그리고 포스터 같은 그래픽아트를 제작했다. 이렇게 뉴딜로 탄생한 미술작품을 뉴딜아트(New Deal art)라고 부르고, 그중 특히 눈에 띄는 프로젝트였던 벽화를 뉴딜벽화(New Deal mural)라고 부른다.
벽화 프로젝트는 PWAP가 종료됐을 때 미완성인 게 많았는데, 나중에 뉴딜 사업을 총괄한 공공사업진흥국(WPA)의 연방미술프로젝트(FAP)가 흡수해서 마무리했다. WPA에서의 뉴딜아트 규모는 더욱 커져서 1936년에 5,000명 이상의 미술가를 고용할 정도였다. 1935년부터 1943년까지 수천 건의 벽화와 10만 점이 넘는 그림, 수만 점의 조각, 수만 점의 그래픽아트가 제작됐다.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

다만 뉴딜아트로 그려진 대부분의 공공기관 벽화는 그다지 작품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상당수가 현재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다. 뉴딜 벽화는 공공미술인 만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그림이다. 추상화를 포함한 전위예술도 배제됐으며 전쟁 등 어둡고 자극적인 테마도 제외됐고, 정치적인 색채가 짙은 그림도 허용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도발적인 부분이 있는 작품들은 곧 주민들의 항의에 부딪히게 되면서 더욱더 온건한 모습으로 전개됐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미술가의 자유와 창의성을 빼앗아버리는 무용지물이라는 비난도 일어났다. 전위적인 작품이 배제됐기 때문에 사실 뉴딜 벽화는 특별히 눈에 띄는 작품을 남기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딜아트 프로젝트는 많은 미술가에게 일자리를 주어 그들이 미술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왔다. 훗날 이들 미술가는 현대미술의 중심지를 유럽에서 미국으로 가져왔다. 그러니 뉴딜아트의 미술사적 의미가 없다고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뉴딜아트의 이러한 빛과 그림자는 현대 정부에 의한 미술 지원과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먼시 우체국의 벽화 ‘말을 모는 레이첼 실버턴’(1938), 존 보샹 작, 미국 공공사업진흥국(WPA)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

유효수요의 원리 (theory of effective demand)
경제 문제의 핵심 원인이 ‘수요 부족’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 1929년 발생한 세계 대공황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학자 케인스는 ‘유효수요 부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케인스는 정부가 앞장서서 유효수요를 진작함으로써 공황을 극복할 수있다고 주장했다.

뉴딜아트(New Deal art)
미국 정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Public Works of Art Project, PWAP)를 통해 탄생한 미술작품을 일컫는 말. 3,700여 명의 미술가가 정부에 고용돼 공공건물과 공원을 장식할 대형 벽화, 그림, 조각, 그리고 포스터 같은 그래픽아트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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