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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FTA

ESG 포럼
지속가능한 무역, 모두를 위한 통상
무역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고 있을까? 빈곤과 기아를 몰아내는 등 우리의 삶을 개선하고 있을까? 무역은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폐기물 같은 환경문제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을까?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ESG센터 센터장

무역은 세계의 부를 향상시킨 중요 동력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도 무역에 크게 의지했다. 무역은 일자리를 늘리고 세계적 불평등을 해소했다. 그러나 무역이 모든 사람의 삶을 개선했는지, 인권 향상에 기여했는지, 지구환경에 유익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한마디로 답하기 어렵다. 과거의 통상은 효율성과 경제성을 추구했다. 국제자본은 노동력이 싼 곳, 환경규제가 약한 나라로 이동했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은 최대이윤을 위해 선호됐다. 열대우림을 파괴한 뒤 수출용 농장을 만드는 일은 빈번했다. 고기와 수산물 수출을 위해 탄소배출은 늘었고 해양 생태계는 파괴됐다. 물류는 하늘과 바다를 오염시켰다.
이에 지속가능한 무역이 제기됐다. 지구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무역, 포용적 성장을 가능케 하는 무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UN 지속가능발전목표와 무역

2015년 유엔은 2030년까지 달성할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채택했다. 빈곤감소, 기아퇴치 등 17개 목표가 제시됐다. 유엔은 무역을 SDGs를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라 인식했다. 포용적 경제성장과 빈곤 감소를 위한 엔진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코로나19 이후 지속가능한 무역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2023년 9월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유엔 고위급 정치포럼에 WTO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무역이 인류를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회복하고 유엔의 SDGs를 달성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무역정책: 지속가능성과 포용성

많은 국가가 지속가능한 무역을 새로운 무역정책 또는 전략으로 도입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15년 신통상 투자정책으로 ‘모두를 위한 통상(Trade for All)’을 발표했다. ‘Trade for All’은 모든 경제주체의 이익을 증진하는 통상을 말한다. 무역이 소비자, 근로자, 중소기업을 소외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신통상정책은 구체적으로는 효과성·투명성·가치 기반의 무역을 강조한다. 미국도 환경, 인권과 같은 지속가능성 이슈를 통상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일찍부터 미국은 환경과 인권이 자유무역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FTA 등 무역협정에서 관련 챕터를 넣고 있다. 나아가 바이든 행정부의 관세국경보호청(CBP)은 녹색무역 전략을 선포하면서 녹색무역을 장려하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속가능 무역을 중요 어젠다로 설정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이른바 ‘노동자 중심의 무역 의제(Worker-Centered Trade Policy)’를 강조하고 있다. 이 정책은 미국이 자국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 이전의 무역정책에서 벗어났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이러한 정책이 결국 미국 노동자의 이익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캐나다는 ‘포용적 무역(Inclusive Trade)’을 강조한다. 모두가 이익을 얻을 때 무역은 가장 잘 작동하므로 여성, 중소기업, 원주민과 같은 소수집단을 포함해 무역에서 발생하는 혜택과 기회가 보다 광범위하게 공유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무역이 대기업에게 특권을 주고 근로자와 중산층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캐나다 무역청(TCS)은 여성·원주민·흑인·성소수자 기업가가 주도하거나 소유하는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성공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뉴질랜드도 ‘모두를 위한 무역정책’을 가지고 있다. 2018년 8월부터 10월까지 정부가 뉴질랜드 국민의 의견을 듣고 모두를 위한 무역정책을 개발했다. 특이한 것은 ‘모두를 위한 무역자문위원회(Trade for All Advisory Board)’를 설립해서 주요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다.
국제상공회의소(ICC)는 2022년 11월 지속가능 무역에 관한 국제표준을 만들기도 했다.

2023년 9월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유엔 고위급 정치포럼에 WTO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무역이 인류를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회복하고
유엔의 SDGs를 달성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무역의 미래, 아니 현재

글로벌 기업들도 지속가능한 무역을 위해 자발적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공급망 관리 또는 구매 정책에서 지속가능성을 중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애플은 책임 있고 지속가능한 공급망을 위해 엄격한 정책을 가지고 있다. 애플의 협력회사들이 노동, 보건과 안전, 환경에 관한 엄격한 기준을 준수하고 모든 사람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할 것이 의무화돼 있다. 국제적 구매 과정에서 환경과 인권을 고려하는 기업은 대세가 되고 있다. 한국 대외무역법은 무역의 목적으로 “국제수지의 균형, 통상의 확대를 도모해 국민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제1조). 무역의 원칙으로는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제시하고 있다(제3조). 아직 지속가능성 또는 포용성 개념은 한국 무역정책에 크게 반영되고 있지 않다. 한국에서도 지속가능 무역 또는 포용적 무역의 논의를 활발하게 할 필요가 있다. 무역 비중이 큰 한국이 새로운 무역전략에서도 진취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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