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책 : 인공지능

Trade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부상한 인공지능
인공지능(AI), 데이터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기술규제는 무역에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AI 역량이 글로벌 경쟁의 대상이 되면서 AI에 관한 정부 간 협력 및 견제를 위한 각종 대외 협상과 규범화 과정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디지털통상 규범에서 AI와 관련된 쟁점과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영임 가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일반적으로 무역은 국가·지역 간 상품이나 서비스를 매매하는 것을 의미하고, 통상은 매매뿐 아니라 지적재산권, 제도 등도 포함하는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디지털 통상은 기존 무역은 물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디지털 서비스나 데이터 산업, 그리고 이를 포함하는 국가 간 모든 무역활동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러나 디지털 통상관련 산업이나 거래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여 아직 표준화된 정의와 명확한 규범은 없다. 최근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발전으로 국제무역에서 디지털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확대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양자 및 다자간 디지털 통상규범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나, 종종 자유무역협정(FTA) 방식이 채택되기도 한다. WTO 회원국 간 모든 FTA는 사실상 WTO 협정의 예외로서 인정되는 것이기에, 다자규범이 적용된다. WTO 협정의 가장 우선적인 원칙은 비차별 원칙이며, 목적은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의 철폐를 통한 시장 자유화다. 따라서 기본적인 통상규범의 구조는 개방성을 보장하되 다양한 예외조항을 통한 각 정부의 규제 목적과 조치를 수용하는 구조로 구성돼 있다.
최근 주요 디지털통상 규범으로 인지되는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의 전자상거래 챕터,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 간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igital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DEPA), 싱가포르·호주 간 디지털경제협정(Digital Economic Agreement, DEA),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 USMCA)의 디지털무역 챕터, 그리고 미국·일본 디지털무역협정(United States-Japan Digital Trade Agreement, USJDTA) 등에서는 기술요소와 디지털 공간, 기술 적용 과정에서의 안전과 보호 등을 추구하는 조항을 강조했다. 특히 ‘전자상거래’라는 용어보다 ‘디지털 경제’ 또는 ‘디지털통상’ 용어가 포함된 협정문에서는 단순히 디지털 수단을 넘어 훨씬 포괄적인 디지털 이슈를 다루고 있다.

통상 플랫폼의 디지털화로 등장한 이슈

이와 같이, 전통적 통상에서 디지털통상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바로 통상 플랫폼의 디지털화와 이로 인해 통상의 대상인 상품과 서비스가 디지털화돼 전자적으로 전송되는 데이터의 형태로 변모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기존 전자상거래 이슈인 ‘전자적 전송물 관세 부과’ 이슈와 함께 ‘국경 간 데이터 이동’, ‘디지털세 도입’ 및 ‘새로운 무역 패턴에 대한 규범 마련’ 등 신규 이슈가 등장하고 있다.
전자적 전송물 관세 부과는 디지털통상을 통해 전자적으로 전송되는 상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지, 전자적 수단에 의해 거래되는 디지털 재화를 상품 또는 서비스로 분류할 것인지 등의 논의가 이슈화되고 있다.
국경 간 데이터 이동 자유화는 정보보안 위협과 사생활 침해의 위험성 증가 이슈와 데이터의 공개 및 활성화에 있어서 소비자 권리 보호를 위한 국가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이슈가 논의되고 있다.
디지털세 도입은 현행 과세 체계로는 글로벌 디지털 기업에 과세를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고, 디지털 기업의 초국경적 영업활동에 대한 과세 비율이 전통적 제조업 대비 현저히 낮아 법인세율 불공정 경쟁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새로운 무역 패턴에 대한 규범 마련은 제4차 산업혁명 기술로 인해 교역 플랫폼의 디지털화뿐 아니라 교역 형태 자체의 변화가 예상되며, 기존 WTO 체제의 협정에는 이러한 혁신 비즈니스에 대한 규범과 체계가 미비해 국가 간 이해관계에 따른 통상마찰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이외에도 디지털 격차는 통상 플랫폼의 디지털화로 인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이슈인데, 특히 정보 접근성, 디지털 인프라, 기술 능력 등에 대한 차이가 국가 간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통상 플랫폼의 급속한 디지털화로 인해 기존의 규제 및 거버넌스 모델이 뒤처질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의 독과점력이 증가하고, 공정한 시장 경쟁을 저해할 우려도 있다. 국제적인 규제 및 거버넌스 체계의 강화가 더욱 필요하다.

기술패권 경쟁의 핵심

AI를 규범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우나 AI 규제 이슈는 디지털통상 분야에서 등장하는 주요 관심사다. 글로벌 AI 경쟁은 기술패권 경쟁의 핵심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선제적 공격을 통해 불확실한 글로벌 환경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갖기 위한 전략이다. AI는 여러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으나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등장하는 기술인 만큼 그동안 열세에 있었던 국가들도 기술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기술 분야이므로, 더욱더 전 세계적으로 기술패권의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분석된다.
유럽연합(EU)은 주요 국가 중 최초로 AI에 대한 포괄적이고 구속력 있는 규제안(AI Act, AIA)을 2021년 4월 21일에 공개했다. 개정안이 2023년 6월 14일 유럽의회를 통과함으로써 명실공히 AI가 사람의 안전이나 인권에 위협을 가하는 것을 법안을 통해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세계 최초의 명문화된 법안이 탄생됐다.
EU의 AIA는 적용대상이 EU 내에서 AI 시스템을 출시하거나 서비스를 도입하는 모든 제공자(위치 무관), EU 내에 위치하는 AI 시스템의 사용자 및 AI 시스템이 생성한 결과물이 EU 내에서 사용될 시, 제3국에 위치한 AI 시스템의 제공자 및 사용자도 대상이 돼 매우 광범위하다. EU 시장에 배포·사용되는 AI 시스템이 안전하고 기본권 및 EU 가치에 관한 기존 법률을 존중할 것을 보장하고, AI에 대한 투자와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며, AI 시스템에 적용되는 기본권 및 안전 요구사항에 대한 기존 법률의 거버넌스 및 효과적인 시행을 강화하고, 합법적이고 안전하며 신뢰할 수 있는 AI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단일시장 개발을 촉진하고 시장분열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됐다. AIA는 미국이 AI 규제법안 발의를 하게 된 촉발 요인이 됐다.
AIA의 가장 큰 특징은 AI의 위험을 4단계로 구분해 가장 상위 단계인 수용불가(unacceptable level)인 경우는 EU 시장 내 진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고위험 수준(high risk level)인 경우는 EU 전 지역의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하거나 자체 또는 인증기관의 적합성 평가, 새로운 요구사항 준수 등을 증명하면 큰 문제가 없다. 고위험군에 속하는 AI 시스템은 위 왼쪽과 같이 7가지 요구사항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AIA는 개정안에서 AI 시스템의 7가지 원칙을 수립했는데 이 원칙은 AI 시스템이면 위험 수준과 상관없이 모두 갖추어야 하는 요소를 의미한다. ISO/IEC JTC 1/SC 42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위원회에서는 위 오른쪽의 7가지 요소와 관련된 국제표준을 개발 중에 있어서 AIA와 매칭관계는 대부분 성립되나 개발이 더 필요한 부분도 있다. AIA를 위해 SC 42에서 표준을 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엔나 협정에 의해 국제표준이 개발되고 유지되고 있다. “비엔나 협정”이란 유럽의 표준과 국제표준이 서로 충돌되지 않고 상호 일관성 있게 유지되도록 하려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지금부터 30여 년 전에 채택된 협정이다.
AIA에서는 규제조항을 어길 경우 매우 높은 페널티를 부과하고 있는데 2023년 6월 14일 개정안에서는 최대 4,000만 유로 또는 전 세계 연간 매출액의 7%를 페널티로 부과하는 것으로 강화했다.
이 외에 EU는 디지털서비스법(DSA)을 2023년 8월 25일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주로 소셜미디어 규제, 글로벌 매출 최고 6% 페널티 및 서비스 정지, 온라인 플랫폼 및 검색엔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시장법(DMA)을 2023년 5월 2일부터 시행하고 있는데, 빅테크 독점방지, 전 세계 매출 최대 10%, 반복적 위반 시 최대 20% 페널티, 애플, 구글, 아마존, MS, 메타가 주요 규제대상이다.
현재 빅테크 기업을 선두로 공격적인 디지털 시장 개방을 도모하는 미국과는 달리, 부족한 자원을 대체하는 미래의 전략적 성장동력으로서 디지털경제협정을 주도하는 싱가포르에서는 소위 ‘싱가포르형 디지털경제협정(DEA)’을 추진하면서 DEPA뿐 아니라 싱·호주 DEA, 영국·싱 DEA를 포함해 한·싱 DPA까지 총 4건의 협정을 타결했고, 디지털통상 규정을 포함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이나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에도 가입했다. 디지털 강국인 우리나라 또한 디지털통상 규범의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무역시장이나 거래 규모를 확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충분한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하는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전자적 방식의 교역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 간 전자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교역에 대해서도 통상규범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대두돼왔으나, 최근 급격한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진입하면서 전통적 통상규범을 디지털 경제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게 됐다.
첫째, AI 시스템의 개념정립이 필요하다. 선진국들과 개발도상국들 간 AI 시스템에 대한 기술격차는 물론, 규범 발전 방향에도 시각 차이가 커 합의점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디지털통상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시스템인 AI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돼야 한다. AI 시스템의 표준 용어, 개념, 프레임워크, 라이프사이클, 품질, 신뢰, 거버넌스, 인증 등 AI 시스템을 둘러싼 디지털통상에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둘째, EU AIA에 대한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 미국은 EU AIA 이후 AI 위험관리프레임워크(AI RMF)를 발표했고, 국가 표준 8대 전략 중 하나로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선포했다. 우리나라는 표준에 대해서는 그동안 특허나 논문보다 관심도가 약했으나, 글로벌 경향은 AI가 미칠 사회적 이슈 등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위험관리나 법안 마련을 통해 자국을 보호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물론 겉으로는 기술발전의 비용절감 등을 법안의 주요 내용으로 표방했으나 내면으로는 자국의 보호가 더 우선시됨을 알 수 있다. 앞으로 AI는 점점 우리 산업 전반에 걸쳐서 파급될 것이며, 비엔나 협정, 국제표준 등 전 세계가 AI를 기반으로 디지털통상의 무대를 활발히 펼치고 있어서 대내외적인 안목과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AI는 신기술 영역이므로 각 국에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패권경쟁과 순위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과거 논문과 표준이 패권경쟁과 순위경쟁을 했다면, 디지털통상 시대에서는 표준, 표준특허 등 글로벌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기술이나 기회들이 패권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관련 컨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