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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FTA

통상의 세계 돋보기
세계 주요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 정책
광물은 휴대폰 등 전자기기나 자동차와 같은 운송수단, 건물 등 우리 생활에 밀접한 여러 제품과 시설에 원재료로 사용되는 현대 경제의 필수적인 재화다. 그러한 광물자원 중에서 앞으로 가격이나 수급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위기발생 시 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광물을 일반적으로 핵심광물(critical minerals)이라고 정의한다.
김진수 한양대학교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핵심광물의 공급 안정성과 탄력성(reliability and resiliency)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은 크게 관리 대상 핵심광물 식별(목록 마련), 핵심광물 관련 국가 전략계획이나 정책 로드맵의 수립, 국제 공조체계 구축, 비축, 공공투자 확대의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즉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첫 번째 과제는 해당 국가의 광물자원 공급망 중 어디가 취약한지를 분석·식별하고 그 결과와 자원 부존 상황, 산업 수요를 바탕으로 관리가 필요한 핵심광물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그러한 공급망 분석을 꾸준하게 진행해왔으며 미국 에너지부(DOE)가 2018년부터 발표해온 ‘핵심광물평가(Critical Materials Assessment)’도 같은 맥락이다.

주요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 정책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이나 EU의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 Act, CRMA)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IRA는 핵심광물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고 공급망 다변화 자체보다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재편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유럽의 CRMA는 핵심광물을 대상으로 하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등 특정 국가의 자원 의존도를 줄이고 유럽 역내 생산을 늘리고 재활용 역량을 강화하는 법안으로 일견 공급망 다변화와는 거리가 있는 정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두 법안이 시작된 계기가 핵심광물 공급망의 특정 국가 의존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므로, 역내 공급능력을 확보하고 정치적인 우방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것이 공급망 다변화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핵심광물의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주요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협력체계의 구축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캐나다, 독일, 프랑스, 영국, 호주, EU 등 1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inerals Security Partnership, MSP)과 CRMA의 실행 계획으로 EU 회원국 정부와 호주, 캐나다, 전 세계 여러 광물 관련 회사와 대학, 비정부기구(NGO)가 참여하고 있는 유럽원자재연합(European Raw Materials Alliance, ERMA)이 대표적이다. 광물자원 소비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MSP는 협력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2023년 10월 회의에 자원 보유국 8개국(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베트남, 잠비아)을 비회원국으로 초청했으며, ERMA 또한 유럽의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캐나다와 호주, 칠레, 브라질, 페루, 카메룬, 남아프리카공화국, 카자흐스탄 등 주요 자원 보유국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 정책

한국은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나라로 광물자원도 예외가 아니다. 2022년 우리나라의 광산물 생산액은 2조2,661억 원, 수입액은 65조7,620억 원으로 3.3%의 자급률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 들어 탄소중립과 첨단산업의 대두, 지정학적 갈등 심화는 광물자원 공급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우리나라도 2023년 2월 첨단산업 글로벌 강국 도약을 위한 “핵심광물 확보전략”을 발표하며 광물자원의 공급망 안보 확보를 위한 개선 정책을 수립했다.
첫 번째 전략은 ‘자원협력 강화’로 양자협력과 다자협력 전략으로 구분해 제시했다. 양자협력 전략으로는 개발 매력도와 접근 가능성을 바탕으로 먼저 전략협력국을 선정하고, 해당 국가를 대상으로 한 민관협력, 장기공급계약 체결, 자유무역협정(FTA)을 활용한 공동연구, 정보교류, 무역 활성화 추진을 전략으로 담았다. 다자협력 전략으로는 앞서 소개한 MSP와 호주가 주도하고 25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핵심광물작업반(Working Party on Critical Minerals, CMWP)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두 번째 전략으로는 ‘국내외 광물자원 개발’을 제시했다. 해외 광물자원 개발은 수출입은행의 대출 및 보증, 무역보험공사의 보험정책자금을 활용하는 전략으로 해외의 광산개발 시 현지법인 설립 과정에서 필요한 시설과 수입자금에 대해 여신 및 보험을 지원하는 금융지원을 한 축으로 설정했다. 다른 한 축은 세제지원으로, 2013년 일몰된 해외자원개발 투자세액공제의 재도입을 추진하고 해외 광산개발 과정에서 설립한 자회사에 대한 손금 인정 범위를 확대했으며 배당금에 대한 세부담 완화를 전략으로 담았다.
세 번째 전략으로는 ‘재자원화 기반 조성’을 다뤘다. 광물자원은 에너지와는 다르게 재활용할 수 있다. 국내에서 발생한 폐기물로부터 유용한 광물자원을 추출하는 재자원화는 일종의 광산개발과 같은 효과를 가져와 공급망 다변화에 도움이 된다. 핵심광물 확보전략에는 ‘사용 후 배터리 회수·유통·활용 등 통합관리체계 마련’과 ‘미래자원 재자원화 촉진을 위한 K-재자원화 얼라이언스 운영’의 두 가지 세부 과제가 설정됐다.
마지막으로는 ‘비축 확대’를 설정했다. 비축은 공급망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일반적인 기업들의 운영 재고(inventory)와는 다르게 전략적인 목적으로 광물자원을 보관하는 것(strategic reserve, stockpiling)을 의미한다. 한국과 같이 핵심광물 중 국내에 부존 광물이 거의 없고, 국가 경제와 산업 생산에 있어 광물자원이 필수적이며 수입량이 많은 국가에는 비축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핵심광물 확보전략에서는 새로 선정한 핵심광물을 고려해 2031년까지 비축 품목을 20종 35개 품목으로 확대하고 희소금속의 비축일수를 100일(위험성이 높은 희토류는 180일 이상)로 늘린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국제에너지기구의 핵심광물 공급망
안보강화 전략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핵심광물 확보전략은 매우 체계적으로
구성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제언

사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수단과 정책적 지원 방안은 대부분 검토가 이루어져 현재 우리의 여건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책이 “핵심광물 확보전략”에 담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수립한 전략을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법제와 거버넌스)과 예산 투입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지난 11월 23일 국회에서 국가자원안보특별법안이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를 통과했다. 특별법의 소위 통과는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에 필요한 제도적 뒷받침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자원안보특별법안에 앞서 먼저 소위를 통과한 공급망기본법과 함께 법제화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기본계획 수립과 로드맵 수립을 진행해 예산 투입을 전제로 한 핵심광물 확보전략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행 방안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주요국의 정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서는 국제공조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양자협력도 중요하지만 복잡한 광물 공급망의 특성을 고려하면 다자협력을 중심으로 전략을 풀어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며, MSP나 CMWP 내에서 광물자원 수요국 외에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광물자원 개발과 재활용에 대한 기술력이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즉 부존자원이 없더라도 자원 개발과 재자원화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협력 의제를 늘려나갈 수 있다. 따라서 핵심광물 개발 및 재자원화 기술개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조하고자 한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실패로 광물자원공사가 광해관리공단과 통합된 이후, 우리나라는 광물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공기업이 없다. 그러나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바로 공공투자 확대다. 민간기업도 리스크 관리를 위해 스스로 공급망을 다변화할 수 있지만 민간의 목표는 이윤 극대화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핵심광물의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고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한 공공부문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핵심광물 확보전략에 제시된 한국광해광업공단을 중심으로 한 지원 역할 외에 직접투자를 포함한 공공부문의 전략을 추가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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