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을 제외하고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오랜 기간 식민지배를 받았던 동남아 신생독립국은 타국에 의한 주권침해나 내정간섭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상호 연대를 도모했다. 1961년 ASA(Association of Southeast Asia), 1963년 마필인도(Maphilindo)와 같은 지역협력의 노력을 지속한 끝에 아세안은 역내 경제성장, 사회문화 발전 및 평화와 안정 추구를 위해 5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싱가포르)이 모여 1967년 8월 8일 출범했다.
1950~1980년대 냉전체제에서 베트남을 중심으로 캄보디아, 라오스로 공산주의가 도미노처럼 확산되자 반공산주의적 성향을 가진 아세안 국가의 협력은 더욱 강화됐다. 1976년, 1977년 1·2차 아세안 정상회의를 연속 개최했으며, 1987년 3차 아세안 정상회의는 필리핀의 신정부를 지지하기 위해 마닐라에서 개최했다. 1984년 독립한 브루나이는 6번째 아세안 회원국이 됐다. 아세안 창설 멤버인 5개국과 브루나이를 아세안 기존 회원국 또는 ‘아세안 6(아세안 식스)’라 부른다.
1990년대 탈냉전 도래로 과거 주적(主敵)이던 베트남의 아세안 가입(1995년)은 아세안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1997년 라오스·미얀마, 1999년 캄보디아가 연쇄적으로 아세안에 가입함에 따라 동티모르를 제외한 동남아 10개국이 회원국이 됐고 이를 ‘아세안 10(아세안 텐)’으로 부르기도 한다.
아세안은 지역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2015년 아세안공동체를 출범시키면서 아세안 창설 이후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지역통합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공동체를 탄생시킨 것이다. 공동체 형성을 위한 구체적인 분야로 정치안보공동체(Political-Security Community), 경제공동체(ASEAN Economic Community), 사회문화공동체(Socio-Cultural Community) 등 3개의 협력 축(pillars)을 설정했다. 또한 2025년까지 정치적으로 단결되고(politically cohesive), 경제적으로 통합하며(economically integrated),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socially responsible) 공동체를 지향하는 아세안 비전 2025(ASEAN Vision 2025)를 선포했다.
아세안은 1989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에 참여하면서 역외 지역협력의 첫발을 내디뎠다. 1994년 동아시아 최초이자 유일한 안보협력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을 출범시켰으며, 유럽연합(EU)과의 협력을 위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ia Europe Meeting, ASEM) 창설 모임을 1996년 싱가포르에서 개최하는 등 아세안을 중심으로 지역협력을 선도했다.
아세안의 역할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아세안의 위기에서 시작됐다. 1997년 동남아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한국이 경제위기(외환위기)에 빠지는 등 동아시아 전반에 위기가 확산되자 아세안은 그해 12월 한·중·일 정상을 초대해 아세안+3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이후 현재까지 아세안+3은 연례정상회의로 개최되고 있다.
2005년 아세안은 기존 아세안+3에 호주·뉴질랜드·인도를 포함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를 시작했다. 아세안 주도의 지역협력이 주목받자 미국과 러시아 같은 초강국도 2011년부터 동아시아정상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아세안은 동북아 지역과 아시아 지역을 포괄하는 지역협력의 허브로 당당히 자리 잡게 됐다. 출범 당시만 해도 신생 독립국, 즉 약소국의 집합체에 불과하던 아세안은 강대국의 러브콜을 받으며 아시아·태평양 지역협력을 선도하는 국제기구로 자리 잡았다.
아세안의 인구는 6억6,000만 명으로 세계 4위 규모이며, 경제규모는 3조3,000억 달러로 세계 5위 규모다(ASEAN Statistical Yearbook 2022). 한국 국내총생산(GDP)(1조6,000억 달러, 2022년 나라지표 기준)의 약 2배에 달한다. 아세안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다. 인구는 세계인구 중 8.4%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도, 중국에 이어 세계 3대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GDP 비중은 3.4%에 그쳤으나 교역·수출·수입 비중은 모두 7%대를 기록했다.
아세안 총 GDP 규모는 2012년 2조4,000억 달러에서 2021년 3조3,000억 달러로 빠르게 확대됐다. 이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인도에 이어 세계 6위의 규모다. 아세안 GDP 규모는 영국(3조1,000억 달러)과 프랑스(2조9,000억 달러) GDP보다 큰 규모이며, 한국과 호주(1조7,000억 달러)의 2배에 가까운 규모다. 아세안의 1인당 GDP(10개국 평균)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로 2012년 약 4,000달러에서 2021년 약 5,000달러로 약 25% 증가했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으로 총 GDP와 1인당 GDP가 모두 감소했으나, 2021년 이후 다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별 GDP 규모를 살펴보면 인도네시아가 아세안에서 유일하게 1조 달러를 돌파하면서 최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태국이 약 5,000억 달러, 싱가포르와 필리핀이 약 4,000억 달러로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베트남이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6위(약 3,600억 달러)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브루나이 등 4개국의 총 GDP 규모는 약 1,300억 달러로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세안의 주요 교역 대상국(지역)을 살펴보면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교역액은 6,692억 달러(2021년 기준)로 20%를 차지해 2012년 12.8%에서 대폭 상승했다. 2대 교역국인 미국은 2021년 3,645억 달러(2021년 기준)로 11.4%를 차지해 2012년 8%와 비교해 크게 상승했다. 3대 교역지역인 EU-27은 2,688억 달러(2021년 기준)로 8.0%의 비중을 차지해 2012년 8.4%와 비교해 소폭 감소했다. 4대 교역국인 일본은 2,430억 달러(2021년 기준)로 7.2%의 비중을 차지해 2012년 10%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5대 교역국인 한국은 1,895억 달러(2021년 기준)로 5.6%의 비중을 차지해 2012년 5.2%와 비교해 소폭 증가했다.
한국과 아세안은 1989년 부문별 대화(Sectoral Dialogue Partnership) 관계로 협력이 시작됐고 1991년 완전대화상대국(Full Dialogue Partnership)으로 격상됐다. 2006년 한·아세안 FTA 상품협정, 2007년 한·아세안 FTA 서비스 협정이 연쇄적으로 체결된 이후 상호 교역과 투자는 급증했다.
2005년 무역 총액이 480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인 2010년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2020~ 2021년 코로나19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아세안 무역액은 계속 증가했으며 2022년에는 2,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아세안은 한국의 2대 교역국으로 중국(21.9%)에 이어 아세안의 비중은 14.9%를 차지했다(2022년 기준).
한국을 기준으로 아세안과의 교역을 국별로 살펴보면 베트남이 41.2%(806억 달러)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싱가포르가 22.1%(248억 달러), 말레이시아가 11.2%(205억 달러)로 뒤를 이었다.
아세안은 한국의 주요 투자 대상 지역이기도 하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아세안 총 투자액은 87억4,000만 달러로 11.3%를 차지해 미국(46%), 케이먼제도(12.2%)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해외직접투자(FDI)를 국별로 살펴보면 싱가포르가 38.7%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베트남이 28.2%, 인도네시아가 13.4%로 뒤를 이었다.
한국은 2023년 한·아세안 연대구상(Korea-ASEAN Solidarity, KASI)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KASI는 자유·평화·번영을 기초로 한·아세안 관계 격상 및 아세안 회원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아세안이 주요 목표로 하고 있는 해양협력, 연계성,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무역촉진, 디지털 경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FTA를 통한 경제통합 심화에 한국이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한국에게 아세안은 무역·투자의 핵심 대상국인 만큼 KASI 구상은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향후 아세안과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일관성과 구체적 실현방안이 수반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