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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중추 외교 구현의 장이 된 아세안·G20 정상회의
아세안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는 국제사회의 현안을 논의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중요한 다자 협의체로, 전 세계 주요국의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자리다. 최근 강대국 간 지정학적 경쟁과 지경학적 변화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어서, 경제안보는 더욱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많은 국가가 디리스킹 전략을 통해 생산기지와 소비시장을 다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이번 다자 회의에서 경제안보에 역점을 둔 정상외교를 펼쳤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시아·태평양연구부 교수 사진 대통령실

아세안 및 G20 정상회의는 다자주의가 약화되는 현시점에서도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다자 협의체로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 정상들이 모이는 이러한 다자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한국의 국가 비전과 외교적 원칙을 명확히 밝히고, 한국이 중요시하는 안보 및 경제 분야의 현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와 협력을 촉구하고 있다. 2022년 11월 캄보디아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와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는 글로벌 중추 국가 비전과 외교적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더불어 한국은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고 아세안에 특화된 포괄적 협력을 강조한한·아세안 연대구상1)도 제시해 국제사회에 한국의 기여와 역할을 확대하고자 했다. 이번 2023년 아세안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에서는 한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 의지를 재확인시켰다. 구체적인 방향과 이행 계획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외교의 신뢰성을 높이고 국제사회의 한국 외교에 대한 깊은 공감대를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2)G20 정상회의3)를 각각 주최한 인도네시아와 인도는 한국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Special Strategic Partnership)’를 맺고 있는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주요 핵심 협력국가다. 특히 올해는 양국 모두와 수교 5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다자회의를 계기로 양국을 방문해 양국 관계의 발전을 위한 협력 강화를 모색했다.

1) 한·아세안 연대구상 (Korea-ASEAN Solidarity Initiative, KASI)
우리 인도·태평양 전략의틀 속에서 핵심 파트너인 아세안에 특화된 지역정책. 2022년 11월 프놈펜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아세안 연대구상'을 밝힌 이후, 같은 해 12월 인도·태평양 전략을, 지난 4월에는 구체적 이행 계획을 밝힌 바 있다.

2)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과 대화상대국 간 정상회의, 아세안+3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로 구성돼 있으며, 동아시아 지역 차원의 관심사들을 논의한다.

3) G20 정상회의
주요 19개 국가에 2개의 지역 연합국으로 구성돼 있다. 기존 선진국 그룹인 G7 국가뿐만 아니라 글로벌 복합 도전에 대응할 역량을 가진 다수의 글로벌 중견국이 참여하고 있다.

글로벌 중추 외교를 본격적 궤도에 올려

우리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 참석을 통해 지역 및 글로벌 차원에서 글로벌 중추 외교를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리는 기회를 마련했다. 작년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발표한 한·아세안 연대구상을 본격적으로 이행하고, 인도·태평양 전략 틀 속에서 아세안과의 특화된 협력을 추진해 보다 호혜적이며 실질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아세안 정상들에게 표명했다. 이를 통해 기존 경제통상 분야 중심 접근을 넘어 포괄적인 안보 협력 및 전략적 공조를 강화하는 등 포괄적·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나가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또한 2024년 아세안과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수립, 국방, 해양안보, 방위산업, 경제안보, 기후변화, 공급망 다변화, 기술협력, 디지털, 전기차 및 배터리의 미래 산업 등 기존에 소홀했던 분야와 새로이 부상하는 신흥 분야에 대한 협력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강화하고 강압에 의한 현상변경에 대한 단호한 반대 원칙의 메시지를 전하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단지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닌 동남아시아, 나아가 국제사회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국제사회의 공조를 요청했다. 또한 최근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적 밀착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통해 국제사회의 규칙을 위반하고 한국의 국가이익에 위협이 되는 행동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한국은 G20 정상회의를 통해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개발도상국 문제 및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글로벌 과제에 대한 글로벌 사우스 지역과의 협력에 있어 한국의 기여와 역할 확대 의지와 실행 계획을 명확히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G20의 첫 번째 세션 ‘하나의 지구’에서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이 ‘녹색 사다리’ 역할을 해 개발도상국들의 기후변화 적응과 온실가스 감축을 도울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녹색기후기금(GCF)에 3억 달러를 공여하겠다고 약속하며, 청정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고 글로벌 녹색 운항로를 구축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의 기여를 제안했다. 무엇보다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구체적 노력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의 활발한 참여를 통한 국익 창출에도 적극적 관심을 기울였다.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원전 건설,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전 개발, 수소에너지 기술, 저탄소 및 무탄소 선박 개발, 친환경 항만 인프라 구축 역량 등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부각시켰다.

경제안보 강화를 위한 실용외교 추진

한국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급변하는 국제경제 상황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안보 외교를 보다 구체화하고 이를 국제무대에서 명확히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세안과 G20 정상회의, 기업인 간담회,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20여 개국 이상과의 양자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실용적 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특히 이번 정상회의를 주최한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세안 국가들과 인도는 생산기지, 거대 소비시장, 핵심광물 공급망과 관련해 중요성이 점차 증대하고 있다. 한국은 이 지역과의 협력을 통해 미래 지향적인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이에 따라 필리핀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및 다양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통해 중장기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9월 7일 한·인니 수교 50주년을 맞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양국 기업인들이 미래 핵심산업과 공급망, 보건, 디지털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평소 경제를 중심으로 한 외교 활동을 강조하며, 경제안보 외교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2023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모든 외교의 중심에 경제를 놓고, 수출과 해외 진출을 하나하나 직접 점검하고 챙기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첨단기술 경쟁 속에서 경제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아세안과 인도가 중요한 거점 지역 중 하나다. 이들 지역은 생산기지, 거대 소비시장으로서 성장 잠재력이 크고, 첨단기술 제품 생산에 필요한 리튬, 니켈, 희토류 등 핵심 광물 공급망 지역으로서 전략적 가치 역시 크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필리핀과의 FTA 체결, 인도네시아와의 경제협력 로드맵 구축 등은 경제안보 외교에서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필리핀 FTA 체결을 통해 필리핀은 전체 품목 중 96.5%를, 우리나라는 94.8%의 관세를 철폐하게 됐다. 이 중에서 특히 한국산 자동차는 FTA 발효 즉시 관세가 철폐되어,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필리핀에서 큰 기회를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자동차의 가격경쟁력이 상승해 일본 자동차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필리핀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의 점유율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향후 시장 잠재력이 큰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에 대한 관세 역시 점진적으로 철폐되면서 한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에 큰 힘이 실릴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글로벌 경제지도 변화, 공급망 재편, 디리스킹4) 기조 속에서 인도네시아와의 협력은 한국 경제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동차·철강·석유화학·디지털 경제·전기차·할랄식품·핵심광물·원전 분야 등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방산 및 그린 사업 분야에서도 협력 범위를 확대한 것은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인도와도 수교 5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인도 방산 협력의 상징인 K-9 자주포 사업과 같은 방산 분야 협력을 발전시키고 정보기술, 디지털산업, 전기차 및 수소에너지 등 그린 사업에서도 협력 범위를 확대하기로 한 것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지탱하기 위한 적극적 경제안보 외교의 일환이라 하겠다.

4) 디리스킹(de-risking)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중국을 대하는 새로운 접근 프레임으로, 중국발(發) 위험 요인 제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적대적이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위험 요소를 점차 줄여나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중국과 경제협력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적 의존을 낮춰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줄이자는 뜻이다.

글로벌 사우스를 위한 기여 외교와 글로벌 연대, 더욱 확대해야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한국은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역할과 기여 의지를 다시 한 번 국제사회에 천명하며, 본격적인 이행 단계로 나섰다. 한국은 6·25전쟁 이후 성공적인 경제발전에 힘입어 글로벌 사우스5)에서 글로벌 노스 국가로 도약했을 뿐만 아니라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정착한 거의 유일무이한 국가다. 이것이 한국이 가지는 강점이다. 이러한 경험을 활용해 다른 유사입장국과의 굳건한 연대와 협력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기여를 보다 확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21세기 소프트파워 강국으로서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역할을 확고히 해나가야 할 것이다.

5) 글로벌 사우스 (Global South)
원래 미국, 독일, 프랑스 등유럽 주요국과 러시아, 한국, 일본 등 선진국을 뜻하는 ‘글로벌 노스’와 대비해 주로 남반구나 북반구의 저위도에 위치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개발도상국을 일컫는 용어로 통칭돼왔다. 오늘날에는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멕시코 등을 비롯한 120여 개국이 글로벌 사우스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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