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은 제품과 서비스 등에 대한 개념, 시험방법, 평가절차 등을 이해관계자들이 사회적 합의절차에 따라 만든 통일된 규정이다. 또한 제품·서비스의 생산성과 품질 향상은 물론 우리 일상의 편리함과 안전을 담보하는 중요 수단이기도 하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표준을 활용해 규격화된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호환성을 확보하는 것이 표준화의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무역기술장벽(TBT) 협정에 따라 기존 기술규정을 국제표준으로 대체해야 함에 따라 표준의 역할과 위상이 강화됐다. 즉 국제표준기구에서 얼마나 많은 자국의 표준을 반영하느냐가 국가경쟁력 확보의 관건이 된 셈이다. 각국의 국제표준화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국제표준 선점이 사실상 글로벌 시장 지배의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각국은 견제와 협력 활동을 통해 자국의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제정하고 국제표준화 무대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첨단기술 분야에서 국제표준화 경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전략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5월에 ‘핵심·신흥기술에 대한 국가표준전략’을 발표하고 우방국들과의 표준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독일은 ‘표준화로드맵 Industry 4.0’을 통해 표준화에 의한 플랫폼 선점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표준(China Standards) 2035’ 전략을 통해 전방위적 표준화를 추진하고 국제규범 등을 재편해 새로운 지정학적 질서를 수립한다는 계획이고, 일본은 국제표준화기구(ISO) 상임이사국으로서 우월적 지위를 적극 활용해 국제표준화 영향력 강화와 더불어 기업 대상의 표준화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국제표준으로 제정되려면 제안된 표준안 자체의 기술적 사항이 중요하나, 각국의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다수 국가와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국제표준기구 내에서 자국의 기술적·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각국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1년부터 국가표준기본법에 따라 5년 단위의 국가표준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가 및 국제 표준화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20년이 지난 2020년대에는 매년 80여 종의 국제표준을 제안하는 글로벌 표준강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ISO에서는 국제표준화 활동에서 공식적인 국가별 경쟁력 순위를 발표하지 않는다. 다만, 이사회에 참여할 20개 국가를 선출하기 위해 국제표준을 개발하는 기술위원회의 임원 수, 분담금 등을 종합해 국가별 활동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2023년 우리나라는 124개국 중에서 8위를 차지했다.
우리 기업의 기술혁신과 세계시장 선점 지원을 위해선 산업정책과 표준화 전략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추진돼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3월 ‘산업대전환 초격차 프로젝트’를 수립하고 공표했다. 이는 11개 핵심투자 분야 및 40대 초격차 프로젝트를 설정하고 집중적 정책지원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계획이다. 한편 미국도 ‘국가표준전략’에서 8대 핵심기술과 6대 응용 분야에서 기술표준 주도권을 확보해나간다고 공표했다. 이에 국가기술표준원은 국내 정부정책과 표준강국의 전략 등을 종합 검토해 첨단산업 지원을 위해 14대* 중점 표준화 분야를 선정했다. 또한 분야별로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표준포럼을 구성하고 전략수립과 표준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7개 표준포럼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말까지 표준포럼의 구성·정비를 완료하고 분야별 표준전략을 수립할 예정이다. 또한 국가 표준화 역량을 결집하고 효율적 정책 이행을 위해 국회, 산·학·연 표준리더들이 참여하는 총괄 포럼도 새롭게 구성·운영할 계획이다.
우리 기술의 국제표준화를 위해서 기술과 표준화의 영향력이 높은 표준강국과의 전략적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미국과는 한·미 정부 간 표준 분야 고위급 협력채널을 신설하고, 8대 핵심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표준협력을 강화한다. 이의 첫 행보로 지난 8월 한국에서 ‘한·미 표준협력대화 및 표준포럼’을 개최해 미국국립기술표준원(NIST)과 미국표준협회(ANSI)와 표준화 전략 공유, 국제표준화 주요 이슈에 대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향후 중점 14개 기술 분야로 점진적 표준협력 확대, 상호 우호적인 국제표준안 마련을 위해 작업반 신설, 국제표준안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개발(R&D) 추진 등 양국 간 전방위적 표준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유럽연합(EU)의 표준 선도국인 독일과는 독일 표준화기관(DIN·DKE)과 배터리·스마트 제조·미래차 분야 등을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한다. 오는 12월에 독일에서 ‘한·독 표준협력대화 및 표준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관련 전문가를 통해 구체적인 세부 협력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은 국제표준기구(ISO·IEC) 상임이사국이자 많은 핵심 원천기술을 보유한 국가다. 첨단 제조역량을 보유한 우리나라와의 표준협력으로 다양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국제표준기구에서는 우리나라의 ISO 회장(현대모비스 조성환 대표) 수임을 계기로 우리의 영향력을 한층 더 높일 계획이다. ISO는 표준 수 기준으로 세계 최대 국제표준기구이며 전기전자(IEC·국제전기기술위원회), 통신(ITU·국제전기통신연합)을 제외한 기계, 화학, 조선, 자동차 등 다양한 영역에서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ISO 회장은 ISO를 대표하며 총회, 이사회 등 정책 결정을 위한 모든 회의에 참여한다. 국가기술표준원은 ISO 회장의 직무수행과 공약이행 지원을 위해 올해 2월 ‘국제표준화기구 전략대응팀’을 신설했다. 이를 통해 국제표준을 통한 글로벌 위기대응, 표준보급 촉진, 표준화 교육 강화 등의 정책적 지원을 추진한다. 또한 ISO 회장에 이어 ISO, IEC 등 국제표준기구의 이사회 및 정책위원회 임원 수임을 확대한다.
아울러 국내에서 개발된 우수 기술에 대해서 다양한 국제표준화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국가 연구개발을 통해 개발된 표준안에 대해 국제표준으로 제정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한다. 또한 중소기업이 보유한 우수한 기술 중에서 국제표준화가 필요한 기술을 발굴하고 국제표준 전문가를 활용해 국제표준에 해당 기술이 반영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앞두고 있다.
또한 국제표준 전문가를 집중 양성하기 위해 표준전문 학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신산업 기술 분야의 석·박사급 전문인력 양성도 추진하고 있다. 이제 중장기적으로 국제표준화 역량 강화를 통해 기술패권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신기술에 대한 국제표준 선점이 곧 기술패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가기술표준원은 국가표준정책을 총괄·조정하고 있으며 ISO, IEC 등 국제표준기구에서 정부 대표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에 국가의 표준화 역량을 모아 AI, 이차전지,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신기술 분야의 국제표준 선점을 통해 국가경쟁력 강화에 일조하고자 한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국제표준화 경쟁력이 우리 기업의 수출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도록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표준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해외인증, 기술규제 등에도 효율적으로 대응해 우리 기업의 원활한 수출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