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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FTA

ESG 포럼
자국의 경제적 이해와 연결된 노동과 통상의 상관관계
노동은 오래전부터 통상의 의제로 들어왔다. 이를 노동과 통상의 연계라고 한다. 선진국들은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저임금으로 생산된 제품을 수출하는 것은 사회적 덤핑이며 불공정 무역행위라고 보아 노동을 무역과 연계하기 시작했다. 노동권 보호를 목적으로 내세우지만 자국의 경제적 이해와도 연결돼 있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ESG센터 센터장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통상협정은 국가 간 협약이므로 국가에 의무를 부과할 뿐 개별 기업이 당사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점차 개별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더욱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사이의 FTA인 USMCA(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는 노동규정을 크게 강화했다. 협정당사국은 상품의 생산·가공·수선 과정에서 ‘강제노동’이 활용된 경우 해당 상품의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 특별한 노동분쟁 해결절차인 ‘특정사업장 신속대응 노동 메커니즘(Facility-Specific Rapid Response Labor Mechanism)’도 도입했다. 개인·단체·노동조합이 조사 및 구제 등을 청원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됐다. 이러한 흐름은 계속 강화돼 미국이 주도하고 우리도 참여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서는 ‘높은 노동기준을 충족하는 무역’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제안되고 있다.

법률로 노동과 통상 연계

개별 국가의 법률로 노동을 통상과 연계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이 법률들은 기업에 직접 법적 효과를 미친다. 미국의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과 유럽연합(EU)의 ‘EU 시장에서의 강제노동 결부상품 금지에 관한 규정안’이 그것이다.
포문을 연 것은 미국의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이다. 그동안 언론과 인권단체들은 중국의 신장 지역에 세워진 직업기술교육 훈련센터가 소수민족을 구금해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2021년 12월에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고, 2022년 6월 21일부터 시행된 이 법은 그야말로 초강경의 법이다.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이하 ‘신장 지역’)에서 채굴·생산·제조된 모든 상품을 강제노동에 의해 생산됐다고 추정해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한다. 기존에도 미국 관세법 제307조에 따라 강제노동과 결부된 상품의 통관을 금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관세법에서는 강제노동의 입증책임을 당국에 부과하고 있다. 당국은 조사를 거친 후 혐의가 인정된 경우에 한해 인도보류명령(Withhold Release Order, WRO)을 통해 반입을 금지할 수 있다. 그런데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에 따르면 신장 지역에서 전부 또는 일부라도 생산된 상품은 원칙적으로 미국 반입을 금지한다. 관세당국의 조사나 처분(WRO)도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수입업자가 예외 요청을 하면서 당해 상품 또는 부품이 강제노동으로 채굴·생산·제조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EU도 2022년 9월 ‘EU 시장에서의 강제노동 결부상품 금지에 관한 규정안’을 발표했다(이 규정안은 유럽의회 및 이사회의 승인을 남겨두고 있어서 2023년 하반기 이후 입법절차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EU 법률안은 미국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과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적용대상부터 보면 EU 법률안은 상품의 원산지, 기업이 설립된 국가, 산업 분야 또는 상품 종류와 무관하게 강제노동이 결부된 상품에 모두 적용된다. 중국뿐 아니라 다른 지역이라도 해당된다. 강제노동이 공급망의 어느 단계라도 부분적으로 결부된 경우라면 대상이 되는 것이다. 특정 국가, 특정 기업에만 효과가 미치는 것이 아니므로 EU 안에서 상품을 출하하거나 EU 역내로 상품을 수출입하는 모든 개인과 기업에 적용된다.
강제노동에 관한 입증책임은 관세당국에 있다. EU 회원국은 예비단계를 거쳐 조사를 한 이후에 강제노동이 결부됐다고 인정되는 경우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조치는 통관보류, 수출입 금지뿐 아니라 상품의 역내 유통을 금지하고 이미 유통 중인 상품의 회수 및 폐기 명령도 가능하다. 행위자가 관련 규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벌칙도 내려진다. EU 집행위는 강제노동의 실효적 금지를 위해 (1)관련 가이드라인 및 강제노동 위험도 지표 제공 (2)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유지 (3)강제노동 상품에 반대하는 연합 네트워크(Union Network Against Forced Labour Products) 플랫폼 구축 등을 함께 추진한다.

한국의 FTA 중 노동 의제가 포함된 것은 10여 건이다.
대표적으로 한·미 FTA에는 노동 챕터가, 한·EU FTA의 지속가능성 챕터 안에는 노동규정이 있어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 강제노동 철폐, 아동노동 폐지, 고용상 차별 철폐 등을 요구한다.

점점 확대되는 강제노동의 범위

통상 강제노동이라고 하면 폭행·협박을 통해 노동을 강제하는 것으로 좁게 생각한다. 그러나 국제규범의 정의는 생각보다 넓다. 폭행·협박 외에 조작된 부채, 신분증 압수, 이민당국에의 고발 위협과 같은 간접적인 위협에 의한 비자발적 노동도 강제노동에 해당한다.
노동과 무역을 연계하는 시도는 강제노동 외에도 아동노동, 고용상 차별, 그 밖의 노동권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당장 불똥이 떨어진 강제노동 또는 아동노동은 한국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 공급망 전체에 강제노동 또는 아동노동이 사용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른바 실사(due diligence)가 필요하다. EU는 ‘사업장 및 공급망 내에서의 강제노동 식별을 위한 실사 가이던스’를 2021년 7월 발표했다. 여기서는 아래와 같은 방법론을 제시한다.
강제노동의 위험에 맞춰 정책과 관리 시스템을 조정한다. 여기에는 강제노동에 대한 무관용 정책, 내부고발자 보호 등이 포함된다. 국제노동법이 준수되지 않는 국가와 거래하거나 강제부채의 위험 요인이 있는 공급망에서 조달할 때는 ‘위험신호’에 주의해야 한다. 독립적인 공급망 평가가 이루어지고 특히 안전한 환경에서의 근로자 인터뷰 등을 통해 위험평가를 강화해야 한다. 재정적 지원을 포함해 공급업체가 노동조건을 시정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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