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 년 동안 자동차는 기계공학 중심으로 설계, 생산돼 왔다. 내연기관으로 차량 구동이 이뤄졌고 1970년대에는 전자제어장치(ECU)가 도입되며 다양한 차량 기능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후 각종 전자기술로 자동차의 여러 기능이 자동화되고, 모빌리티는 계속해서 지능화했다.
그리고 현재, 세계 자동차 산업은 전례 없는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내연기관과 하드웨어 중심이었던 자동차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Software Defined Vehicles)와 탈탄소화 방식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로 전환은 전통 자동차 제조 업체에 매우 어려운 과제다. 기존 자동차 생산 기업(OEM)은 하드웨어 중심의 자동차 개발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자동차 산업 전환을 위해 자동차 업체는 소프트웨어 기반 연구개발(R&D) 능력을 확장하고 빠르게 등장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생태계에 맞춰 핵심 공급 업체와 관계를 재설정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전환은 한국 주력 수출 산업의 도전과 기회로 다가온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3년 연간 자동차 산업 동향'에 따르면 2023년 자동차 수출액은 709억달러로 사상 최대였던 2022년(541억달러을 뛰어넘었다. 한국의 전체 수출 품목 가운데 반도체를 제치고 처음 1위에 올라선 것이다.
SDV는 기존의 하드웨어 대신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바퀴 달린 컴퓨터’ ‘바퀴 달린 스마트폰’처럼 기능하는 미래 지향적 모빌리티다. PC나 스마트폰처럼 소프트웨어가 인간의 두뇌 역할을 하여 보다 향상된 기능을 제공한다. SDV로 전환은 이미 시작됐고 그 확산세도 매우 빠르다. 딜로이트 분석 결과 연간 글로벌 SDV 차량 보급률은 2021년 2.4%에서 2029년 90% 이상까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SDV는 더 이상 기계와 전기 시스템이 탑승자의 주행 경험을 결정하지 않으며, 차량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소프트웨어의 역량이 계속해서 향상되는 모빌리티 시대를 앞당길 것이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도 차량의 보행자 혹은 도로 주변 장애물 탐지 기능이 개선될 수 있다. 개인 맞춤형으로 지역 기반 서비스와 운전자의 선호를 결합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정 운전자가 탑승하면 자동적으로 시트와 미러, 차내 조명, 온도, 오디오 등을 설정한 방식대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 기능을 탑재할 수 있고, 증강현실(AR) 기능을 활용해 악천후 여건에서도 선명한 주행 시야를 보조하는 영상을 추가할 수도 있다.기존 자동차 산업은 제조 차량에 대한 무결성 및 내구성에 기반해 진화해 왔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에 비해 각종 오류와 버그가 발생하기 쉽다. 자동차 내 소프트웨어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이제는 온라인상에서 소프트웨어 버그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차량 개발 과정에서 최대 효율화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이 됐다. 전통적인 자동차 수리는 오프라인 AS센터에서 이뤄져 왔지만, ‘상시적으로’ 무선(OTA·over-the-air)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성능 수정이 가능한 세상에서 소프트웨어 오류를 작업장에서 고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시대적 변화는 글로벌 자동차 OTA 시장 규모가 2022년 기준 33억달러 수준에서 2030년 14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이란 전망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소프트웨어 중심 패러다임 내에서 생존하려면, 기존 자동차 생산 기업(OEM)은 차량 내·외부의 첨단 기능을 항상 갱신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 가능 차량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결국 모빌리티가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중심 디자인 프로세스로 전환돼야 함을 의미한다.차량 전 주기에 걸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의 신속한 공개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드웨어 개발에도 변화가 필수적이다. 하드웨어의 가상화와 고도의 시뮬레이션 능력이 SDV, 특히 초기 소프트웨어 테스트 및 검증 시점의 판도를 결정하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는 가능한 한 개발 초기부터 테스트 활동을 배치하는 ‘시프트 레프트(shift-left)’ 접근 방식이 빠르게 수용되고 있다.
대다수 OEM은 2030년까지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크게 확대할 것이란 의지를 천명하고 있지만, 불확실한 경제적 여건은 이런 계획을 실행하기 어렵게 한다. 게다가 다양한 소비자의 요구가 혼재해 디지털화된 차량 내 서비스에 대해 일회성 지불 방식 혹은 월간 구독 방식을 어떻게 적용할지 조율하는 것도 쉽지 않다.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늦추게 하는 포트폴리오 조율 의사 결정, 번거로운 기업 투자 관리 절차, 긴 시간을 소요하는 비즈니스 사례 분석 등으로 새로운 기능 도입이 가로막히는 경우도 많다.
글로벌 주요 OEM 기업들은 2025년을 SDV 개막 원년이 될 것이라 발표하고 있다. SDV로 모빌리티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했으나 패러다임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산적해 있다. OEM 기업들과 모빌리티 관련 기업들은 SDV 전환에 필요한 해결 과제를 탐색하고 미리 준비해야만 미래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다.SDV 시대로 전환은 OEM과 부품 공급 기업, 기타 모빌리티 관련 기업들에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혁신은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중심 원동력이다. 디지털 혁신을 위해 모빌리티 기업들은 ‘테일러리즘1)’기반 조직 구조에서 벗어나 민첩하고 유연해져야 한다.
기존의 틀과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에 대한 접근 방식, 조직 구조, 조직문화, 비즈니스 모델, 전략적 투자 및 파트너십 등을 변화시켜야 한다. SDV 전환을 위한 과제와 딜로이트가 제안하는 솔
루션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시스템 아키텍처 및 핵심 청사진 설계가 필요하다. SDV 아키텍처 설계와 그 요소 및 인터페이스를 잘 구현하는 것이 성공적인 SDV 운영의 핵심 요소다. 소프트웨어 중심 연구와 운영도 중요하다. 자동차를 설계하고 개발하는 과정에서 하드웨어가 중심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 새로운 구조, 강력한 소프트웨어 플랫폼, 더 효율적인 개발 방법론, 지속성 있는 운영 모델 및 연구 개발 거버넌스 등이 필요하다. 데이터 중심 커넥티드 서비스 개발도 주요 과제다. 데이터 중심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은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에서 데이터 수익화를 가능케 한다. 또한 사용자 중심 경험 제공, 파워트레인(동력 장치) 및 차량 구동 전략 수립, 자율주행기술 투자 등이 필요하다. 특히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는 규제 및 기술 전문 지식을 토대로 차량 및 도로 안전을 향상시켜 완전자율주행차 시대를 여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력도 필수다. 동맹(alliance)과 생태계(ecosystem)는 서로 다른 시장 참가자가 역량과 자원을 모으고 전문 지식을 공유하며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하다.
동맹 결성과 생태계 구축으로 모빌리티 관련 기업들은 차별화된 고객 서비스와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다. 복잡한 규제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필요하다. 유럽연합(EU), 미국 및 중국 시장은 무선 업데이트, 사이버 보안 및 자율 주행과 관련해 다른 규제 조건을 갖고 있다. 상이한 규제에 대응하고 각종 승인을 받는 절차는 매우 까다로운 해결 과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각종 규제를 면밀히 분석하고 그 변화를 예측하는 사전적 대비가 필요하다. 복잡한 규제 대응에 있어 미래 지향적 프로세스도 채택해야 한다. 아울러 국가별 소비자 선호도 분석 역시 중요한 과제다. 국가별로 SDV 수용 속도와 선호 차량 구조가 다를 수 있고, 사이버 보안 이슈에 대한 민감도가 다를 수 있다. 이는 OEM 기업의 혼란을 가중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별 소비자의 성향·트렌드 변화를 항시 추적해야 한다.
완성차 제조 기업 (OEM) |
자동차 부품 공급 기업 |
기술 기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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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V 아키텍처를 어떤 형식으로 설계할 것인가? |
SDV 전환이 조직 구성 및 거버넌스에 어떤 영향을 줄것인가? |
플랫폼 개발자들을 어떻게 훈련·성장시킬 것인가? |
SDV 차량 규모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 OEM 기업의 SDV 아키텍처가 자사의 상품 포트폴리오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
자동차 산업 노하우를 어떻게 쌓을 것인가? |
전 세계에 흩어진 차량을 어떻게 24시간 내내 제어할 것인가? |
SDV 전환이 OEM 기업과 협력을 어떻게 바꾸는가? |
자사 플랫폼 트래픽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
상업용 차량과 개인 차량 활용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
SDV 가치 사슬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는 무엇인가? |
사용량·사용률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 |
SDV 시장 포지셔닝에 있어 핵심 차별점은 무엇인가? |
SDV로부터의 수익 창출원은 무엇인가? 상품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하는가? |
어느 국가 시장을 공략할 것인가? |
어느 국가·지역의 규제를 따라야 하는가? | 어떤 역량을 쌓아야 하는가? | 특히 어떤 자동차 운영 서비스가 개발돼야 하는가? |
애프터마켓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인가? | 미래 성장 전략은 무엇인가? | |
개발해야 하는 기술 플랫폼은 무엇인가? | ||
규제 이슈는 무엇인가? (IT 보안, 탄소 발자국 등) | ||
서비스 기능을 어떻게 더 다양화할 것인가? |
SDV 시대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자동차 산업 기업들이 집중해야 할 우선순위 해결 과제는 △제품 개발에 있어 소프트웨어 중심적인 마인드셋 채택 △소프트웨어 플랫폼 단순화 △지속적인 전환 추진과 품질 유지 △생태계의 모든 측면을 연결하기 위한 클라우드 환경 활용 등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자동차 산업 내 여러 기업은 SDV 기술에 빠르게 적응하고, 자신의 역할과 비즈니스 모델을 재구상해야 한다. OEM 업체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구축해야 할 것이며, 새로운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갈수록 증가하는 SDV 차량군에 통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품 공급사들은 새로운 첨단 솔루션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나서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주행 기술 발전에 필요한 규제 승인을 획득하면서도 안전과 신뢰성에 대한 자동차 업계의 까다로운 기준을 유지할 수 있는 전략적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파트너십이 필수적이다. SDV 시대에서 OEM, 기존 자동차 부품 공급 기업, 기술 기업 간의 긴밀한 협력은 상당한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아울러 보안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법률 및 테스트 절차도 도입돼야 할 것이다.SDV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동 수단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풍부하게 제공하는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기업들은 생태계를 활용해 새로운 디지털 트렌드를 수용하고 SDV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1) 테일러리즘 테일러리즘은 1910년대 미국의 기계 엔지니어이자 경영학자였던 프레데릭 테일러가 만든 과학적 관리 기법이다. 테일러는 저서 ‘과학적 관리법’에서 경영의 기본은 노사 공동 번영에 있으며 생산성 향상을 위해 과거의 방식을 버리고, 가장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