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 1월 19일(이하 현지시각) 스위스 다보스에서 닷새간의 일정을 마치고 막을 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이 전 세계를 향해 던진 메시지다. 54회째를 맞아 ̒신뢰 재구축(Rebuilding Trust)’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는 정・재계, 학계 유명 인사 등 2800여 명이 참석해 열기를 더했다. 이들은 장기화된 전쟁, 인공지능(AI)의 급부상과 가짜 뉴스, 기존 세계 질서의 파괴, 신재생에너지 문제 등과 관련해 미래 사회를 위한 다양한 토론을 이어갔다. 다보스에 모인 지도자들은 우선 2년 가까이 이어지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한 고민을 많이 드러냈다. 또 가자 지구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까지 시작되며 전 세계에 이중 위기가 닥친 상황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전쟁의 여파는 세계경제의 전망에도 암운을 드리웠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등 경제 지도자들은 “정상화의 가닥을 잡아가던 세계경제가 너무나 많은 불확실성에 봉착했다”며 큰 우려를 드러냈다.
2024년 세계 각계 전문가들이 꼽은 인류가 당면한 최대 리스크는 무엇일까. WEF가 149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연령과 성별을 막론하고 ‘극한의 날씨(Extreme weather)’를 꼽은 응답자가 66%로 가장 많았다. 2023년 여름이 기상 관측 시작 이래 북반부가 가장 더웠으며, 올해도 지구 온난화를 가속하는 엘니뇨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 날씨 관련 우려를 키웠다. 엘니뇨는 적도 주변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
다 0.5도 이상 높은 현상을 말한다.
리스크 요인 2위는 응답자의 53%가 꼽은 ‘AI가 생성한 가짜 정보(AI-generated misinformation and disinformation)’가 차지했다. 2024년은 전 세계 76개국 42억 명의 유권자가 투표소로 향한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선거의 불확실성에 놓인 것이다. 1월 대만 대선에 이어 2월 인도네시아 대선·총선, 3월 러시아 대선, 4월 한국과 인도 총선, 6월 유럽의회 선거, 11월 미국 대선까지 올해 선거 스케줄이 빼곡히 차 있다. AI의 고속 발전과 선거가 맞물리면서 허위 정보가 난무할 가능성도 크다. WEF에 따르면 세계 인구 1위 대국인 인도가 가짜 정보로 인해 최대 고통을 받을 위험 국가 1위로 꼽혔다. 인터넷 보급률이 50%에 불과한 점이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수있는 요인이 됐다. 현재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모디노믹스’를 토대로 인도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디 총리의 최근 지지율이 70%를 넘어서며 3연임이 유력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장기 집권 및 언론 탄압, 실업률 증가 문제로 제기된 책임론 등이 3연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올해 11월 대선이 예정된 미국은 가짜 정보로 인한 위험 국가 6위에 올랐다.
이번 다보스포럼에서는 AI가 몰고 올 사회·경제적 충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리더들이 많았다. 생성 AI1) 챗GPT로 AI 혁명을 가속화하고 있는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포럼에서 “AI는 우리가 모두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덜(much less) 세상을 바꾸고, 훨씬 덜 일자리를 앗아갈 것”이라며 “AI가 모든 일을 인간보다 더 빨리, 더 정확히 처리하게 되리라는 전망은 ‘AI의 신비화’에 따른 부푼 기대일 뿐”이라고 부작용에 대해 선을 그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AI 산업 발전을 위해선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수”라며 “이를 위해 원자력발전소 투자 확대가 필요하며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사회·정치적 대립(social political polarization)’이 올해 인류가 당면한 위협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46%에 달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국가 정상의 참석으로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포식자(육식동물) 같은 푸틴의 속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인류 평화를 위해,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위해 전 세계가 힘을 모아달라”며 국제사회에 호소를 하기도 했다.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할 수 있는 중동 지역의 위협을 억제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은 자유 세계를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생계비 위기(cost of living crisis)’는 42%, ‘사이버 불안(cyber attacks)’도 39%의 응답자가 올해 위협 요인이 될 것으로 꼽았다. 다만 연령대별로 단기적 위기 전망을 두고는 차이를 보였다. 가령 60대 미만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에 대한 걱정이 당면한 최대 위협이라고 밝혔으나, 60대 이상은 ‘기술 격차’와 ‘인권 문제’를 꼽았다.
“전 세계 AI 격차 심각, 韓 기술 공유 힘쓰겠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월 16일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 참석해 한국 원전과 인공지능(AI) 기술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한 총리는 이날 ‘인공지능, 위대한 균형자인가(AI, The Great Equaliser)’ 주제 세션에서 패널로 참석해 “가까운 미래에 AI 격차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개발도상국들과 AI 혜택을 공유하는 방안을 국제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특히 우리 정부가 2023년 9월 ‘디지털권리장전’을 발표한 뒤 이를 토대로 디지털 기술 공유에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디지털 기술 발전을 선도해온 우리 기업들이 AI 분야에서도 선도적 역할을 발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 총리는 원자력 관련 세션에서도 발언자로 참석해 탈탄소 실현, 에너지 안보 강화, 지속 가능 발전에 원전이 기여할 수 있도록 원전 선도국으로서 한국이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 미래 무탄소 에너지원으로서 소형모듈원전(SMR)과 SMR기술 혁신을 선도하기 위한 한국의 연구개발(R&D) 정책, 국내외 기업들의 활발한 협업 촉진 현황 등을 소개했다.
1) 생성 AI (Generative AI)
글·문장·오디오·이미지 같은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