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직선제 투표를 통해 총통을 뽑은 1996년 이후 국민당과 민진당은 8년 주기로 정권을 주고받았다. 라이칭더 후보의 승리는 대만에서 선거를 통한 3연속 집권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총통 선거에 당선된 최초의 현직 부총통이라는 기록도 만든 라이칭더는 1959년 한국의 경기도 격(格)인 신베이시 완리구의 광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탄광 사고로 두 살 때 부친이 사망한 라이칭더는 편모슬하에서 가난한 성장기를 거쳤지만, 대만의 명문인 건국고등학교와 대만대 의대, 성공대 의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라이칭더는 부친이 부유한 외성인(外城人·중국 본토에서 이주한 한족)인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달리 부모 모두 본성인이다. 선거 러닝메이트로 부총통에 당선된 샤오메이친(蕭美琴·1971년생)은 모친이 미국인으로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
민진당, 국민당, 민중당이 각축을 벌인 2024년 대만 대선은 총통 후보로 나선 라이칭더, 허우유이, 커원저 모두 본성인이라는 점이 특징이었다. 외성인 2세인 한궈위(韓國瑜)가 국민당 후보로 출마했던 2020년 대선과도 차별되는 지점이다. 2024년 대만 대선에서의 민진당 승리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민심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고물가, 실업 등 현실 문제에 민감한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의 실용주의적 접근을 주장한 민중당에 몰표를 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실제 이번 대만 총통 선거에서 20~29세 유권자들의 49.2%가 민중당 후보를 지지했다. 4년 전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운 친민당에 대한 젊은 유권자(20~29세)들의 지지율이 14.8%에 그쳤던 것과 대조된다.
민진당의 3연속 집권으로 대만과 미국의 협력은 한층 두터워질 전망이다. 1월 13일 선거 결과 확정 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미국과 대만의 관계는 다방면에 걸쳐 확장되고 깊어질 것”이라는 축하 성명을 냈고, 미국 대표단의 비공식 방문을 추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확인했지만,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칩(Chip) 4(미국·일본·한국·대만) 반도체 동맹 등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라이칭더 총통 당선인도 당선 후 외신 기자회견에서 “완전한 반도체 산업 공급망을 형성하기 위해 재료 및 장비 연구·개발(R&D), 집적회로(IC) 설계·제조·패키징·테스트 분야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라이칭더는 당선 전 “한국과 관계를 강화하고, 신(新)공급망 안보 대화를 열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중국과의 긴장 관계는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악화일로로 치닫지는 않을 전망이다. 중국의 대만 담당 기구인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은 1월 13일 대변인 성명에서 “이번 대만 지역의 선거 결과는 민진당이 섬(대만) 안의 주류 민의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라이칭더 당선을 평가절하했다. 대선 전 ‘독립 분쇄’라는 표현을 ‘독립 반대’로 바꾼 것도 세계 컨테이너선의 44%가 통항하는 대만해협이 막히는 극단적인 긴장 고조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