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양대 정당이 친미와 친중 성향으로 갈려 이번 선거는 미·중 대리전으로 불렸다. 대만 총통 선거를 하루 앞둔 1월 12일 라이칭더는 기자회견에서 “총통에 당선되면 한국과 관계를 강화하고 관광 교류, 경제·무역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을 확대하겠다”며 “신(新)공급망 형성을 위한 안보 대화를 열고, 인도·태평양 보호를 위해 협력하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강준영 교수는 대만국립정치대에서 현대중국정치경제학 석·박사 취득 후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는 중국·대만 전문가다.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 및 지역연구 센터장을 지낸 김한권 교수는 2023년 2월 ‘미·중 전략적 경쟁과 대만해협의 현황 및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집필한 바 있다. 박한진 소장은 중국 푸단대 기업관리학 박사 출신으로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을 지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이하 김한권) “이번 대선은 중국이 주장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두 개 체제를 보장한다는 뜻으로 중국의 대만 통일 원칙) 문제, 미국과 중국에 대한 전략적 관계 설정과 대만 경제 부양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슈가 혼재된 선거였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정치적, 경제적 요구가 이번 선거에 많이 투영된 것 같다. 그 결과 제3당인 민중당의 커원저(柯文哲) 후보가 20~40대 젊은 층에게서 큰 득표를 했다. 민진당이 총통 선거에선 승리했지만, 라이칭더가 과반 지지에 실패했고, 의회가 여소야대 상황이 됐다. 주요 현안 이슈에 대한 대만 내부 혼전 양상이 투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는 라이칭더 정부가 향후 계속해서 짊어질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이하 강준영) “대만의 중국 수출 규모가 크다. 대중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중국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당인 민진당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친미 성향의) 민진당이 집권했어도 중국과 관계를 극단으로 몰아가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적극 이전할 가능성도 크지는 않다고 본다. 대만은 최대한 미국에 공장을 늦게 만들려고 한다. 생산 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하면 본국으로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만에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대만에 반도체 뿌리를 확실히 내리겠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의도대로 대만의 반도체 공장이 미국으로 대거 이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형성되지 않으면 비용이 많이 들고 경쟁력을 잃게 된다. 생산능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만이 말을 아끼면서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다.”
강준영
“라이칭더의 이번 한국과 협력 확대 발언은 과거 대만 총통 후보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입장 표명이었다. 특히 우리는 라이칭더가 언급한 신공급망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대만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1) 의 핵심 역할을 하는 상황인 것을 고려한 발언으로, 대만이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과의공조 강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미국 주도의 칩4(미국·한국·대만·일본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한진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이하 박한진) “우리는 반도체 산업에서 대만 TSMC를 삼성전자의 경쟁 상대로만 보는데, 실제로는 경쟁을 하게 되면 아마 먼 미래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 현재는 두 회사가 주력하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에, TSMC는 파운드리에 주력하고 있다). 다만 TSMC가 앞으로 반도체 사업을 종합적으로 접근할 전망이긴 하다. 최근 대만 정부에서도 반도체 전 가치 사슬을 육성하기 위해 반도체(칩) 중심 국가 산업 전략계획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경쟁 영역이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서로 산업적으로 엮이게 되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중국의 테크 기업들이 미국 기업의 클라우드를 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박한진
“중국이 최근 중국과 대만 간 자유무역협정(FTA) 격인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2) 일부 품목에 대해 특혜관세를 취소했다. 중국이 당장 대만에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의 수준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민진당이 집권했지만) 중국이 이 정도 수준의 대만 제재를 한다면 경제적 불안정성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 같다. 대만이 반도체 같은 첨단 분야에서 협력을 다변화하고 있고, 수출도 중국 비중을 줄이고 있어서다. 특히 대만의 대(對)중국 투자도 줄고 있다. 2002년 39억7064만달러(약 5조3000억원)로 정점을 찍은 후 투자가 계속 감소했다. 이후 2020년 9억9529만달러(약 1조3200억원)로 10억달러 아래로 떨어졌고, 2022년 6억6110만달러(약 8800억원)를 기록했다. 중국이 당장 선거 결과를 가지고 크게 어떤 액션을 취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대만 내에도 깔려있는 것 같다. 결국은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 더 관심이 가는 분위기다. 미·중 관계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에 영향을 주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김한권
“글로벌 물류 관점에서 대만해협의 안전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에 영향을 준다. 이 해협을 지나는 에너지 통상 교통로가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어서다. 인도·태평양 지역이 미·중 경쟁과 갈등의 주요 격전지로 부상하면서 말라카 해협, 남중국해, 대만해협, 동중국해, 한반도와 일본에 이르는 해양로에 대한 안전이 중요해졌다. 한국도 조금 더 전략적인 대응 방안을 가지고 (해상로 안전 확보를 위한) 준비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강준영
“전적으로 동의한다. 원래 대만해협이 주요 해상 교통로라서 수송로 확보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목줄과도 같은 이곳을 안 거치면 우리도 수출과 수입을 못 하게 되므로, 이런 부분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위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다만, 우리가 목소리를 내면서도 중국하고 각을 세우는 것처럼 비치면 안 된다.”
강준영
“커원저의 민중당 등장으로 대만 정계가 3분화됐다. 앞으론 이를 어떻게 통합하느냐가 과제다. 그리고 대만 유권자는 정권 교체, 미·중 대리전은 물론 민생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대만은 고질적인 저임금 구조 문제가 심각하고, 이에 대한 젊은 층의 불만이 많다. 또 집값이 엄청 올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외 관계를 보면,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대만이 너무 가까이하려고 하면 싫어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대만과 적절한 거리를 두려고 할 것이다. 라이칭더가 당선된 1월 13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리는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이 대만 독립을 부추기지 않는다는 것으로, 중국이 대만 독립을 막으려 전쟁을 일으키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만이 미·중과의 계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대만 사회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느냐가 라이칭더 정부의 핵심 과제다.”
박한진
“에너지 문제도 중요하다. 8년 전 차이잉원(蔡英文)이 집권할 때 탈원전과 천연가스 전환 계획을 발표했는데,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등 구체적인 실천 내용이 없었다. 현재 대만은 정전 사태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이런 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또한 ECFA가 위축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중국이 강한 압박으로 돌아선다면 ECFA를 전면 취소할 수 있다. 전혀 새로운 차원의 무역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
김한권
“우선 중국이 강화하고 있는 대만의 국제사회 고립 외교정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중요하다. 라이칭더 당선 직후인 1월 15일 남태평양 섬나라 나우루는 대만과 단교를 발표하고 24일 중국과 수교를 회복했다. 일국양제에 대한 의문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연말 예정된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다. 이번 선거에서 민중당의 부상에서 나타났듯이 젊은 세대의 요구를 어떻게 충족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1) 파운드리 (foundry)
고객사로부터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설계도를 받아 반도체 위탁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 생산 설비 없이 반도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 독자적으로 칩을 설계하는 애플·구글 같은 빅테크들이 파운드리의 고객이다. 삼성전자는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종합 반도체 기업이지만 파운드리 사업부도 운영하고 있다.
2)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 (ECFA)
중국과 대만이 2010년 체결한 자유무역협정. 2013년 1월부터 대만산 267개, 중국산 539개 품목을 ‘조기 자유화’ 품목으로 지정, 관세감면·무관세 혜택을 적용해 왔다. 그러나 중국은 2024년 1월 대만산 화학제품 12개 품목에 대해 ECFA에 따라 적용하던 관세 감면을 중단하고 현행 규정에 따른 세율을 부과하고 있다. 또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대만 총통 선거를 나흘 앞뒀던 1월 9일 대만산 농수산물, 기계류, 자동차 부품, 섬유 등에 대한 관세 감면을 중단하는 추가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