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는 화웨이가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지목하고, 이후 2018년 화웨이의 멍완저우 부회장이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캐나다에서 체포되는 등 화웨이에 대해 국가안보를 사유로 하는 수출통제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후 2019년 미국은 중국 화웨이를 포함, 전 세계의 화웨이 지사를 대거 우려거래자 목록에 등재하고 미국산 품목의 수출을 제한한다.
그리고 2020년에는 미국산 기술이나 장비로 제조된 외국산 품목에 대해서도 미국의 통제를 적용하는 “해외직접제품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 FDPR)”을 수정해 특정 기업을 표적화할 수 있는 규칙을 추가하고 화웨이를 그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반도체 제조기업들도 화웨이에 납품하지 못하도록 차단해버렸다. 이러한 미국의 독자적 수출통제는 다자간 수출통제체제와는 차이가 있는데, 가령 바세나르체제(WA)는 특정 국가나 기업을 표적화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으며 다른 다자간 수출통제체제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국은 특정 기업이나 국가를 표적화할 수 있도록 세분화된 수출통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해외직접제품규칙은 미국산 장비나 기술을 사용해 제조된 품목이라면 세계 어디서든 미국의 통제를 받도록 하고 있어 전 세계의 반도체 제조기업들은 미국 수출통제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수출통제가 해외 기업에게도 적용되는 것을 역외적용(Extraterritorial Application, Extraterritoriality)이라고 하는데, 미국의 독자적 수출통제임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다자적 수출통제 현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경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전면적 수출통제를 단행하면서 더 뚜렷이 나타나는데, 당시 미국은 러시아를 표적화한 해외직접제품규칙을 신설하고, 미국이 대러 수출통제에 동참하는 국가에 대해 동 규칙의 적용을 면제해주면서 37개국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이들 37개 국가는 미국의 대러 수출통제와 유사한 수준의 수출통제 조치를 시행하면서 다자간 수출통제체제에서 정한 통제품목 이외에도 미국의 독자적 통제품목까지 수출제한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후 2022년 10월 7일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분야를 대상으로 수출통제 조치를 부과하면서 또 다른 해외직접제품규칙을 발표했다. 미국은 어떤 기술을 통제하느냐, 그리고 누구에게 통제를 부과하느냐라는 두 가지 축을 변경해가면서 다양한 해외직접제품규칙을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미국산 기술이나 장비를 사용하는 외국 기업들이 미국의 독자적 수출통제에 참여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미국의 수출통제가 다자화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미국 정부는 미국 단독의 일방적 수출통제가 다른 나라들의 기술 개발 또는 회피 노력을 강화해 오히려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음을 인지하고 최대한 미국의 수출통제를 다자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와 맞물려 3개 국제수출통제체제의 회원국인 러시아로 인해 미국의 다자화 노력이 국제수출통제체제에서는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만장일치제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국제수출통제체제의 속성상 특정 회원국이 반대할 경우 결론에 이르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근 미국은 기존 4개 국제수출통제체제 외에 다른 복수국 간 협의체(plurilateral regime)에서 수출통제를 논의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가령 미국은 유럽연합(EU)과 미·EU 무역기술이사회(Trade and Technology Council, TTC)를 통해 양측의 수출통제를 조화시키는 논의를 하고 있으며, 최근 일본과 네덜란드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분야에 동참해 새로운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소위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ies)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미국과 입장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수출통제를 조율하고 공동으로 조치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또 하나의 새로운 경향은 수출통제 사유가 단순히 국가안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 안보 사유 외에도 대외정책, 인권탄압, 지식재산권 탈취 등 다양한 사유가 수출통제의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가령 과거 미국은 타국의 인권 탄압을 사유로 금융제재 또는 비자거부 등의 조치를 부과하는 입법을 해왔는데 최근에는 인권 탄압에 연루된 단체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도 부과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인권 탄압이 발생함을 근거로 관련 단체나 기관을 수출통제 대상 명단에 등재하고 있다. 사실 미국이나 영국은 아예 타국의 인권 탄압이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인권이나 부패를 안보 사유에 편입시키기까지 했다. 2021년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는 미국, 호주, 덴마크, 노르웨이가 권위주의 정부의 기술 오용을 막기 위해 수출통제를 사용하자는 “수출통제 및 인권 이니셔티브”에 대한 공동성명서를 발표했고, 2023년에는 다수 국가가 동참한 “수출통제 및 인권 행동강령”이 발표됐다. EU는 2021년 사이버감시품목에 대한 수출통제를 도입함으로써 인권 사유의 수출통제를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최근의 수출통제 경향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각국에 몇 가지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예컨대 미국은 2022년 일련의 대러 수출통제 조치를 부과하면서 기존 4대 수출통제체제에서 정한 전략물자 외에도 일반 상업용 품목을 대거 포함시켰다. 대부분의 국가가 대개 4대 수출통제체제에서 정한 품목을 자국의 전략물자 목록에 반영하고 있는데, 전략물자 외에 일반 상업용 품목에 대해서까지 통제 대상인지를 판정하고 허가하려면 수출통제 조직의 자원 보강이 필요하다. 또 국가안보를 넘어 수출통제의 사유가 인권보호 등으로 확대됨에 따라 수출통제의 법적 근거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방 주요국들이 인권보호를 이유로 하는 수출통제를 지속 도입하고 있는 것을 예의 주시하며, 우리의 수출통제 제도를 더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수출통제의 법적 근거의 확대 필요성을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이 기존 중국 수출통제목록에 없었던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통제를 발표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수출통제는 이전보다 더 빈번하게, 다양한 사유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수출통제의 법적 근거를 강화하는 것은 향후 이러한 국제적 동향에 대응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기존 다자간 수출통제체제를 넘어 일부 기술보유국 혹은 유사입장국 간에 별도의 수출통제 조율 내지는 공조가 논의되는 상황에 유의해야 한다. 최근 수출통제는 기술리더십 유지 또는 기술보호라는 목적하에 투자심사 제도와도 연계되고 있다. 미국은 2018년 수출통제개혁법과 외국인투자 위험심사 현대화법을 제정해 신흥 및 기반 기술을 신규 통제하기로 하는 한편, 이들 기술을 포함해 수출통제 대상이 되는 기술을 취급하는 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는 안보심사를 강화해 비지배적 투자에 대해서까지 의무적으로 심사하도록 하고 있다. 즉 민감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수출통제와 투자심사를 모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안보적 위험이 낮은 국가들의 투자에 대해서는 투자심사를 면제해주는 등 일종의 제도 완화책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유사한 통제제도를 구현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신뢰를 부여해 미국 수출통제 또는 투자심사에 관해 일종의 혜택을 제공하는 셈이다. 만일 기존 다자간 수출통제체제 외에 새로운 복수국 간 수출통제체제가 설립된다면 그러한 체제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지 또는 선진국 수준의 통제제도를 구현하고 있는지 등이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체제의 설립 단계에서부터 참여하려면 우리나라의 입장을 반영하고 규칙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수출통제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를 확보해 수출통제에 있어서 선진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