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통상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온 한국은 지난 1월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통상 협정인 ‘한국·싱가포르 디지털동반자협정(KSDPA)’을 발효한 데 이어 지난 6월 최초의 복수국 간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의 최초 가입국이 돼 디지털 경제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글로벌 디지털통상 네트워크 확대를 본격화했다. DEPA는 16개 모듈(module)로 구성돼 있는데, 주요 내용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수준의 데이터 이전 자유, 로컬서버 금지 등 디지털 규범을 도입하는 한편, 디지털 이슈 관련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규범 내용은 정당한 정부 정책 목적을 위한 데이터의 국경 간 이전 예외, 로컬서버 금지 의무의 금융 분야 적용 배제 등이 포함돼 있다. DEPA는 대표적인 복수국 간 디지털 단독협정으로 종이 없는 무역, 온라인 소비자 보호, 전자적 수단에 의한 국경 간 정보 전송 등 기존 FTA 전자상거래 장(chapter) 또는 디지털무역 장(chapter)에서 다루고 있는 규범에 더하여 전자송장·전자결제 상호운용성이 새롭게 도입된 만큼 이 분야의 디지털 신기술·혁신 분야 협력을 확대해 한국 기업의 해외진출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핀테크, 인공지능(AI) 거버넌스, 공공정보 개방 등 새로운 디지털 트렌드에 관한 국가 간 협력이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DEPA 자체가 ‘개방형 복수국 간 협정’을 지향하고 있으므로 회원국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국은 핀테크, AI, 디지털 포용성 분야에서 DEPA를 통해 글로벌 디지털 협력을 강화할 수 있으며, 특히 중국 가입 시 디지털 교역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he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 회원국인 싱가포르, 뉴질랜드, 칠레 3국은 디지털 경제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DEPA를 체결했다. 협정체결 경과를 보면 2019년 5월 16일 협상 개시 후 6개월 만인 2020년 1월 21일 타결됐으며, 그해 6월 12일 서명을 거쳐 2021년 1월 7일 뉴질랜드·싱가포르 간 발효됐고 칠레에서는 2021년 11월 23일 발효됐다.
한국은 CPTPP를 바탕으로 한 디지털 신규범이 발전되고 있으므로 이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와의 기술협의를 통해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igital Economy Partnership Agreement, DEPA) 가입절차 등을 논의했으며, 2021년 9월 DEPA 가입을 공식 신청했다. 그해 10월에 의장국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한국의 가입절차 진행을 위한 가입작업반(Accession Working Group)이 구성됐고 올해 6월 8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를 계기로, DEPA 3개국 통상 장·차관과 함께 한국의 DEPA 가입 협상의 실질적인 타결을 선언했다. DEPA는 비즈니스와 무역의 촉진, 디지털 제품의 취급 관련 이슈, 데이터 이슈, 기업과 소비자 신뢰, 사이버 보안 관련 확대된 신뢰 환경, 디지털 신원, 핀테크,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트렌드와 기술, 혁신과 디지털 경제, 중소기업, 디지털 포용 등을 포함해 16개 모듈(module)로 구성돼 있다. 주요 내용은 CPTPP 수준의 데이터 이전 자유, 로컬서버 금지 등 디지털 규범을 도입하는 한편, 디지털 이슈 관련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규범 내용은 정당한 정부 정책 목적을 위한 데이터의 국경 간 이전 예외, 로컬서버 금지 의무의 금융 분야 적용 배제 등이 포함돼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즈니스·무역 원활화다. 종이 없는 무역(paperless trading)에 대한 기존 규범의 의무수준을 높이고 전자송장(e-invoice)·전자결제(e-payment) 등 기존 자유무역협정(FTA) 대비 신규범을 창출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전자적 무역행정문서의 제공·수용 의무화, 전자송장의 호환 지원을 위한 조치 설계, 결제시스템 간 상호 운용성 확보와 국제적으로 인정된 결제기준 고려 등을 통해 안전하고 효율적인 국경 간 전자결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자송장 시스템의 상호 운용성 및 연동성을 갖춘 전자송장 시스템 채택을 위한 협력은 ‘한국·싱가포르 디지털동반자협정(Korea-Singapore Digital Partnership Agreement, KSDPA)’과 DEPA 등에 포함돼 있는데, DEPA는 전자송장 체계 간 상호 운용성 지원보장을 ‘의무조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둘째, 소비자 권익 보호다. 전자상거래 분쟁 해결을 위한 메커니즘, 개인정보보호 법제 호환성 증진 메커니즘 개발에 노력하는 한편 소비자 보호를 위한 국가 간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협정과 같이 개인정보보호 관련 국내법 채택 및 유지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셋째, 디지털 비즈니스 자유화다. 디지털 제품 비차별대우, 자유로운 국경 간 데이터 이전, 컴퓨터 설비 현지화 금지는 CPTPP와 동일하게 규정돼 있다.
넷째, 기타 핀테크, 디지털 분야의 경쟁 정책, AI 거버넌스, 공공정보 개방 등 새로운 디지털 트렌드에 관한 국가 간 협력 증진 내용도 포함돼 있다. DEPA는 KSDPA와 같이 ‘디지털 경제에 관련된 경쟁’을 별도의 독자 조항으로 두고 있다. 디지털 경제 관련 경쟁법의 집행, 정책 개발 및 이행 경험 공유, 특히 디지털 시장의 경쟁 촉진 및 보호 관련 정책, 경쟁법 집행에 대한 정보교환 및 우수 관행 공유, 상호 연수를 통한 협력강화 등을 포함하고 있다.
DEPA 이전에도 미·일 디지털통상협정 등 독자적인 형태의 디지털통상 협정은 존재했다. DEPA는 당초 FTA의 전자상거래 장(chapter) 디지털무역 장(chapter) 등에서 일부 다뤄졌던 디지털무역에 관한 통상규범에 더하여 신흥 분야 협력 및 디지털 경제 이슈에 관한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독립된 디지털무역협정으로 발전했다.
DEPA는 최초의 복수국 간 디지털 단독협정으로 CPTPP에서 도입한 것과 동일한 데이터 이전 및 컴퓨터 설비 현지화 금지 등 규범에 더하여 전자송장, 전자결제 상호 운용성 규범을 신규로 도입한 것이 의미가 있다. 전자송장·전자결제 상호 운용성이 새롭게 도입된 만큼 이 분야의 디지털 신기술, 혁신 분야 협력을 확대해 한국 기업의 해외진출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핀테크, AI 거버넌스, 공공정보 개방 등 새로운 디지털 트렌드에 관한 국가 간 협력이 강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다루어지지 않았던 AI 및 디지털 포용성과 같은 문제를 다루면서 디지털무역 협정의 다음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DEPA 자체가 ‘개방형 복수국 간 협정(open plurilateralism)’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회원국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캐나다의 가입작업반 협의가 진행 중이며, 코스타리카와 페루도 DEPA 가입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한편 싱가포르는 인터넷 경제의 중요성을 반영해 디지털무역에 대한 협정을 수립하는 선구자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까지 싱가포르는 DEPA, 싱가포르·호주 디지털경제협정, 영국·싱가포르 디지털경제협정, KSDPA 등 4개 디지털경제협정을 체결할 정도로 디지털 분야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이 KSDPA에 이어 다시 DEPA를 통해 디지털통상 협정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는 싱가포르와 협력을 확대한 것은 긍정적이다.
디지털 기술이 가진 초국경성·초연결성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전 세계는 인터넷을 통해 하나로 연결돼 있지만 각국은 자국 이익을 고려해 각기 다른 디지털 정책을 규범화하면서 ‘규범의 파편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통상 협정이 글로벌 디지털 시장에 통일된 거버넌스 도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방과 혁신을 통해 성장한 한국 입장에서 디지털통상은 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어젠다다. 글로벌 디지털 규범 정립에 한국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디지털통상 네트워크를 전략적으로 확장하며, 디지털통상 규범 논의와 연계해 국내 제도 개선에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내 기업이 국내 규제로 인해 글로벌 사업자와 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국내 규제를 개선하고, 나아가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을 촉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 핀테크, AI, 디지털 포용성 분야에서 DEPA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특히 중국이 가입하는 경우 중국과의 디지털 교역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DEPA가 추후 여타국까지 확장될 경우 협력 시너지는 더욱 극대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