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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연구소
브릭스(BRICS)의 확장,
경제블록 가능성과 리스크
올해 8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구성된 브릭스(BRICS)에 세계의 관심이 쏠렸었다. 지난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간 남아공에서 개최된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아르헨티나, 에티오피아, 이란, 이집트의 가입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신입 6개 국가의 면모 때문에 세계가 브릭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확장된 브릭스가 세계경제에 가져올 충격을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강선주 국립외교원 국제통상경제안보연구부 교수

유망 투자국으로 시작

2001년에 미국의 금융업계는 유망한 투자 대상으로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을 지명하고 브릭(BRIC)으로 명명했다. 당시에 브릭 4개 국가는 경제 규모(GDP)가 크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향후 세계경제를 주도할 잠재력을 가졌다고 보았다. 이러한 금융업계의 명명에 자극받아 브릭 4개 국가는 2009년 러시아에서 1차 정상회의를 개최했고, 2010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Republic of South Africa)이 가입해 현재의 브릭스(BRICS)가 됐다.
브릭스는 단순히 투자 유망 국가들의 집합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국제사에서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브릭스는 자신의 집단적 경제력을 이용해 미국과 서방이 지배하는 국제질서와 유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orld Bank)과 같은 국제기구를 개혁하고 개도국의 발언권을 확대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하여 브릭스는 2013년부터 여타 개도국을 옵서버로 참여시켰고, 2017년에는 브릭스와 개도국의 협력을 위한 ‘브릭스 플러스(BRICS Plus)’ 프레임워크도 론칭했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국제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는 브릭스가 확장을 실행에 옮길 모멘텀을 제공했다. 미·중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된 중국과 러시아가 자신들이 처한 국제적 상황을 타개하고 세계 주요 7개국(G7)에 대항하기 위해 브릭스의 확장이 긴급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11개 국가로 확장 후 세계경제의 3분의 1 차지

브릭스의 경제적 규모는 상당하다. 2022년 기준 브릭스 5개 국가는 세계 육지의 27%, 인구의 40.9%, 국내총생산(GDP)의 25.77%(26조 달러, 세계 구매력 GDP의 33%, 57조 달러), 그리고 수출에서 18.28%를 차지했다. 브릭스는 경제연합(economic union)은 아니지만 다양한 협력기제를 갖고 있다. 그중 인프라 건설 투자를 위해 2015년에 설립된 신개발은행(BRICS New Development Bank, NDB)이 눈에 띈다. NDB는 지금까지 90개가 넘는 인프라 프로젝트에 320억 달러를 투자했다. 또한 브릭스는 외환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1,000억 달러 규모의 긴급유동성기제(Contingent Reserve Arrangement, CRA)도 운영하고 있다.
브릭스가 11개 국가로 확장될 때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로 3%p 증가에 불과하지만, 구매력 기준으로는 36%를 넘어 세계 경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브릭스 확장의 가장 큰 경제적 효과는 에너지 분야에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이란이 원유수출국이고,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UAE, 이란 4개 국가가 세계 원유 공급의 43.1%를 차지하게 된다. 이것은 글로벌 원유시장이 브릭스의 영향하에 있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금력을 보유한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NDB에 자금을 확충하는 경우, NDB는 글로벌 남부(Global South)에 개발자금 지원에서 IMF/세계은행과 경쟁하는 위치로 상승할 수 있다.

한·브릭스 통상 관계, 높은 수입의존도

브릭스가 단일 경제연합이 아니므로 한국의 대(對)브릭스의 통상 현황은 개별 국가와 상품 차원에서 파악될 수밖에 없다. 2022년에 한국의 상위 10대 수출국에 포함된 브릭스 국가는 중국(22.8%) 하나이고, 상위 25대 수출국으로 확대할 때 인도(2.8%)가 포함된다. 한국과 브릭스의 통상관계는 수입 측면에서는 상황이 바뀐다. 에너지는 한국의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26.6%)을 차지하는데, 확대된 브릭스(사우디와 UAE)에 수입의존도가 49%에 달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옥수수와 콩 공급처로서 중요성을 갖는다. 이들 국가에 대한 한국의 옥수수 의존율은 63%, 콩 의존율은 41%다. 그렇지만 한국의 최대 수입처는 중국으로서 전자제품에 집중돼 있다.

글로벌 경제 및 무역의 파워하우스로 발전할 잠재력

브릭스의 집단적 경제력은 인상적이지만 브릭스 내부(intra-BRICS)의 실질적 경제관계는 그렇지 못하다. 브릭스 내부의 불균형이 심각하다. 브릭스 내에서 중국은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 중국은 브릭스 전체 GDP에서 70%를 차지하며, 나머지 브릭스 국가들의 GDP 합계보다 2배 이상 많다. 중국은 인도를 제외한 나머지 브릭스 국가들에게 1위의 무역파트너다. 중국의 대(對)브릭스 수출은 제조업에 집중돼 있고, 나머지 브릭스 국가들은 중국에 1차 상품을 수출해 보완적 관계를 갖는다. 반면에 나머지 브릭스 국가들의 상호 무역은 비중이 크지 않다. 브릭스 국가들이 대규모 중산층, 천연자원, 현대적 인프라를 갖고 있는 만큼 내부 무역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브릭스가 FTA 체결, 제조업 공통 생산 표준 수립, 시장진입 장벽의 제거 등을 이룬다면 내부 무역 규모가 효과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또한 개별 브릭스 국가가 각자의 지역에서 맹주인 것도 브릭스가 글로벌 경제와 무역의 파워하우스로 발전할 잠재력을 말해준다. 브릭스 5개 국가는 EAEU(유라시아경제연합), SAARC(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 ASEAN+China FTA, MERCOSUR(남미공동시장), SACU(남아프리카관세동맹)를 통해 관련 지역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 브릭스 FTA가 체결된다면, 5개 지역 FTA들이 제도적으로 연결되어 글로벌 무역체제가 될 가능성이 발생할 것이다.
브릭스는 독자적인 통화·금융 체제도 수립하고 있다. 브릭스는 미국 달러화의 의존을 줄이기 위해 브릭스 국가 간 무역결제에 자국 통화 사용,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를 대체하는 지불체제, 공통 지불수단(소위 BRICS Pay), 브릭스 공동 통화를 창조하려고 한다. 브릭스 국가 간 무역결제에 자국 통화 사용은 제3국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브릭스 국가 통화의 불태환성, 환율 불안정성 등의 문제가 있고, 브릭스 공동 통화의 도입 가능성은 더욱 낮다.
대신 브릭스 국가 간 무역에서 디지털 통화의 사용은 유의미한 변화가 될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 인도는 2024년에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통화(CBDC)로 무역 결제를 준비하고 있다. 3국 간 CBDC 무역 결제는 서방의 관리하에 있는 SWIFT 네트워크를 거치지 않는, 브릭스에 기반한 플랫폼의 발전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브릭스는 집단적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력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러한 협력을 무효하게 만들 정치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 리스크는 브릭스의 확장으로 해소되기보다는 오히려 더 심각해질 수 있고, 이번 브릭스의 확장을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된다.
첫째, 브릭스는 내부 단결력이 약하고, 회원국 확장이 브릭스의 단결력을 강화할 것인가에 대해선 확실하지 않다. 브릭스는 특정 지역의 국가들로 구성되지 않았고, 공통의 문화를 가진 그룹도 아니다. 브릭스는 공통적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수립된 국제정치와 경제를 지배하는 규칙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기를 바라고 있지만, 각국의 구체적인 이익과 시각이 동일하지 않다. 그러한 브릭스에 경제규모, 거시경제 조건, 그리고 서방과의 관계에서 상당히 다양한 6개 국가가 추가된다. 다양한 회원국의 가입은 브릭스를 경제연합으로 만드는 데에 필요한 구체적인 사안에서 합의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둘째, 브릭스는 중국과 러시아가 추진하는 반(反)서방 어젠다 때문에 분열할 수 있다. 이번 확장에 이란의 포함은 중국과 러시아가 브릭스에 갖는 영향력을 반영한다. 회원국 확대에 브릭스 5개 국가가 합의한 것으로 발표됐지만, 인도, 브라질, 남아공은 이란의 가입을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이들 국가는 미국과의 관계 유지를 원하고 브릭스가 과도하게 반서방적으로 되는 것을 우려한다. 국경분쟁, 글로벌 남부에 대해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인도와 중국의 관계도 브릭스의 실질적인 진전을 저해할 수 있다.

탈달러화 경제블록 등장의 가능성

브릭스는 6개 국가의 가입 결정으로 신흥시장국들의 최고위 포럼으로 자리 잡았고, 더 많은 글로벌 남부 국가들이 브릭스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올해 8월까지 40여 개도국이 브릭스 가입에 관심을 보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향후 더 증가할 수도 있다. 브릭스가 확장을 지속한다면, 5년 후, 10년 후에 얼마나 더 큰 그룹으로 성장해 있을지 알 수 없다. 브릭스 그룹이 성장한다면, 현재는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탈달러화(dedollarization)도 진전되어 미국 달러화를 사용하지 않고도 무역이 가능한 블록이 등장할 수 있다. 브릭스의 블록으로서의 성장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대응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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