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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FTA

ESG 포럼
그린뉴딜과 녹색보호주의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2019년 9월 <그린뉴딜(The Green New Deal)>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의 부제는 “2028년까지 화석연료 문명이 무너지는 이유와 지구 안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대담한 경제계획”이다. 2019년 2월 미국 의회의원 103명은 그린뉴딜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 결의안은 하원을 통과했으나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부결됐다. 그러나 이후 미국발 그린뉴딜은 세계적 흐름이 됐다.
임성택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그린뉴딜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환경정책이자 경제성장을 위한 재정정책이지만, 한편으로는 통상정책이다. 그린뉴딜이 추구하는 탄소중립과 경제성장은 국제경제질서 및 무역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문제는 그린뉴딜이 보호무역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보호무역주의의 정점에 선 법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IRA는 북미지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지급한다. 미국에서 생산된 배터리에 광범위한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을 노골적으로 유도한다. 리쇼어링은 해외에 생산기지를 옮긴 기업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자유무역으로 형성된 국제적 분업체계를 깨뜨린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반발하고 있다. 유럽의회 무역위원장은 “EU가 IRA를 시행한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자국의 친환경산업 육성을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추진하는 미국을 비판했다. “기후변화에는 전 세계적 대응이 필요하지만 반드시 공정한 접근법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이 추진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도 아시아의 여러 나라로부터 “개발도상국에 대해 차별적이며, 국제통상법과는 정반대의 움직임으로,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흐름”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과거 엄청난 온실가스 배출로 성장한 선진국들이 이제 와서는 환경을 이유로 개발도상국을 차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녹색보호주의로 흐르는 그린뉴딜

그린뉴딜이 녹색보호주의로 흐르는 경향은 온당한가? 녹색보호주의(Green Protectionism)란 기후변화 대응이나 환경정책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우며 새롭게 등장한 보호무역주의를 말한다. 그린뉴딜의 상당수 정책은 외국 기업의 자국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자국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도모한다. 스위스 세인트갈렌대 사이먼(Simon Evenett) 교수는 녹색보호주의를 “환경정책을 교묘히 이용해 외국 기업의 상업적 이익 획득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IRA의 보조금 규정처럼 자국산 소재·부품 사용을 조건으로 국산품을 우대하는 조치는 시장의 경쟁질서를 왜곡시키고 수입산을 불리하게 대우한다는 점에서 ‘내국민대우’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 GATT 제3조는 수입상품이 국내 상품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내국민대우 원칙). IRA가 인센티브 제공 요건을 북미지역 내 생산 또는 조립으로 한정하는 것은 북미지역 외의 수출국들을 차별하는 것으로 ‘최혜국대우’ 원칙과도 충돌할 소지가 있다. GATT 제1조는 수입 또는 수출과 관련해 어떤 국가의 상품에 혜택이 부여되면, 그 혜택은 WTO 회원국의 동종 상품에 대해서도 즉시, 무조건적으로 부여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최혜국대우의 원칙). IRA가 ‘수입품 대신 국내 상품의 사용을 조건으로 지급하는 보조금’은 WTO 보조금 협정상 금지 보조금인 ‘수입대체 보조금’에 해당할 가능성도 있다.
녹색보호주의는 환경보호라는 ‘명분’ 때문에 다른 형태의 보호주의보다 국제사회의 비난 가능성이나 WTO의 제재가능성이 낮다. GATT 제20조는 의무위반을 정당화할 수 있는 예외사유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인간, 동물 등의 생명 또는 건강보호에 필요한 조치”, “고갈될 수 있는 천연자원의 보전과 관련된 조치”가 포함된다. 또한 “자의적이거나 부당한 차별이 아닌 경우”에도 예외에 해당할 수 있다.

국가와 산업의 탄소경쟁력을 강화하고, 환경산업으로 발 빠르게 전환하는 것만
이 국제무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탄소경쟁력 강화하고, 환경산업으로의 전환 급선무

기후변화는 국경을 넘는 전 지구적 이슈다. 어느 한 지역이나 국가의 노력으로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아울러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국제경제와 생산 네트워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공급망이 전 세계에 걸쳐 있고 가치사슬이 복잡하게 연결된 세계경제 구조 속에서 무역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성공적인 탄소중립을 이뤄낼 수 없다. CBAM은 그 대표적인 산물이다. CBAM은 이른바 탄소누출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탄소누출이란 탄소 규제가 심한 지역의 기업들이 규제가 느슨한 역외 국가로 이전하거나 역외의 탄소집약적인 수입품으로 상품이 대체되는 것을 말한다. EU의 CBAM은 수출국에서 탄소세나 배출권거래제에 따라 탄소 가격을 부담한 경우에는 이를 고려한다. 탄소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수입품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탄소 규제가 없는 국가의 상품을 차별하는 것을 자의적 차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계 각국에서 추진되는 그린뉴딜은 국제무역질서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세계는 이른바 탄소전쟁을 펼치고 있고, 녹색보호주의는 뚜렷한 흐름이 되고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자유무역의 흐름 속에서 성장했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녹색보호주의는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국가와 산업의 탄소경쟁력을 강화하고, 환경산업으로 발 빠르게 전환하는 것만이 국제무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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