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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트렌드

통상의 세계 돋보기
불확실성과 단절 속에서 긴장감을 더해갈
2024년 글로벌 통상 환경
2023년 우리는 거친 대외 경제 환경을 헤쳐 나왔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은 완화되기는커녕 반도체와 이차전지를 포함한 첨단 전략 자산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으며, 여기에 유럽연합(EU)이 핵심 광물법(CRMA)과 해외 보조금 규정(FSR) 등 일련의 입법을 통하여 경쟁에 뛰어들었다.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2022년 2월에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져 소모전 양상을 보이며 지속적으로 세계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새롭게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교전은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운송로 타격이라는 새로운 위협으로 발전하고 있다. 2022년 중반부터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본격화한 금리 인상 기조는 끝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피벗(통화정책 전환)이라는 극적 반전을 보지 못하고 2024년을 맞이하였다.

코로나19 대응으로 추가적인 정책 대응 능력을 소진한 각국 정부와 민간은 더 깊어진 부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결과는 저성장이다. 2023년 세계경제 평균 성장률은 2.9%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와 코로나19가 강타한 2020년을 제외하고는 2000년 이후 최저치에 해당한다. 세계 교역은 어떠할까. 2023년 세계 교역량은 전년 대비 0.8% 정도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는 코로나19 위기가 지속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충격으로 공급망 압박이 크게 더해진 2022년의 1.7% 성장률보다도 더 낮은 수준이다. 우리는 이런 세계에서 지난 일 년을 보냈다.




2023년 11월 2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뉴스1


전망 어두운 새해 경제⋯통상 환경도 변수 많아

2024년 글로벌 통상 환경은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먼저, 거시 경제 전망을 통해 글로벌 통상 환경의 큰 그림을 살펴보기로 한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세계경제의 회복은 국가 간 통상 마찰을 줄이고 교역량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2024년 세계경제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여러 전망 기관에서 나오는 예상치를 종합해 보면 하나의 일관된 공통점은 올해 평균 성장률이 작년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24년 2.7~2.8%의 전망치가 나오게 된 배경은 전술한 2023년의 문제점이 해결되지 못하는 가운데 오히려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고,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의 성장세가 약화할 것이라는 예상에 근거한다. 게다가 높은 부채 비중으로 적극적 재정정책이 어려운 주요국들과 압박받는 국내 소비는 각국의 수입 수요 증가를 막아 교역량의 추가적인 증가를 억제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코로나19 이후 각국이 거의 동시에 실시한 확장적 재정정책은 내구소비재를 포함한 상품 수요의 동조화라는 특이한 현상을 불러 와 당분간 소비 수요의 급격한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올해 중반 이후 가능성이 큰 미 연준의 피벗이 가져올 경기 상승 기대감을 언급하는데, 이는 단기적으로 경기 회복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피벗이 단행된다면 그것은 미국 경기의 하강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증표이므로 피벗 또한 지속적인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속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금리 인하가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아직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뿌리가 다 해소된 것이 아닌 상황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결단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중국 경제는 작년보다 낮은 4% 초반대의 성장률이 예상되는데,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부동산 부실 문제와 미국의 압박에 의한 해외투자 감소 및 첨단 전략 자산의 교역상 제한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중국 특수에 기대어 성장한 세계는 다른 도움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일본과 유럽이 미국과 중국의 저성장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세계무역기구(WTO)는 2023년 12월 보고서에서 G20(주요 20개국) 국가가 2023년 5~10월 중순 사이에 무역 제한적 조치를 무역 촉진적 조치보다 더 많이 도입했다고 밝혔다. 각자도생의 세계 질서에서 ‘인근 궁핍화’ 정책이 더 늘어난 셈이다. 이러한 추세가 2024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에 세계는 우려하고 있다.

※ 2023년은 추정치, 전년 대비 성장률 기준 | 자료_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4년 WTO에 가장 중요한 행사는 2월 26~29일(현지시각) 아부다비에서 개최되는 제13차 통상장관회담(MC-13)이다. 한 차례 연기되어 2021년 6월에 작은 합의(mini deal)로 간신히 결과를 도출한 MC-12에 이어서, 수산 보조금과 분쟁 해결 절차를 중심으로 회원국 간 집중적인 협의가 계속되고는 있으나, 비교적 쉽게 합의될 수 있는 부분을 이미 지난번에 합의했기 때문에 2월 말까지 새로운 합의가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분위기다. 다만, 항소 기구(Appellate Body)에서 합의가 이루어져 분쟁 해결 절차에서 어떠한 진전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 전자상거래 임시 무관세 조치(모라토리엄)가 계속 연장될 것인지, 복수 국 간 협정으로 진행되는 환경 상품 및 서비스에 관한 관세 및 비관세 조치 철폐 문제에서 어떤 진전이 있을 것인지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MC-13과 현재 진행 중인 일련의 복수 국 간 협상에서 담대하고 극적인 합의안이 도출될 것이라는 희망이 줄어드는 현실에 직면해서 WTO는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쉽지 않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은 2023년에 이어 올해 지속적으로 양국 및 제삼국의 공급망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올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는 상황에서 첨단 반도체에 관한 미국의 중국 봉쇄는 더욱 촘촘히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가 단행한 차량용 반도체의 상류 부문에 대한 대(對)중국 제한은 더욱 발전된 형태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다.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미국, 중국 등의 경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최근 유럽연합(EU)이 세계 최초로 AI 법안을 공표함으로써 AI에 관한 국제적 규제 조화의 첫 단계가 시작되었다. 2024년 AI 분야에서는 한편으로는 AI에 사용되는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기술의 국제적 전파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AI에 대한 규제의 정도에 대하여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무역과 기술 분야가 국제 통상 협상의 핵심 분야로 자리매김하여 새로운 추세로 자리 잡을 것으로 관측된다.

※ 2023년은 추정치, 전년 대비 물량(volume) 증감률 기준 | 자료_세계무역기구(WTO)


하지만 AI의 파괴적 부정적 효과를 제어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확인하는 한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을 포함한 14개국이 협상했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관련해서는 2023년 11월 APEC 정상회담에서 무역 분야(연결 경제)를 제외한 세 분야를 타결했다. 노동, 환경, 디지털 무역 등 무역의 핵심적인 분야를 규율하는 무역 분야를 타결하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겼으나 올해는 미합의 분야에 관한 집중적인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노동과 환경 분야에서 많은 이견이 있고, 디지털 무역과 관련해서는 추가적인 조율이 필요한 단계라서 완전한 합의를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무엇보다도 IPEF와 관련하여 가장 큰 위험성은 만약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같이 미국이 탈퇴하는 가능성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협상에 참여한 여타 13개국에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통상 규범을 확정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23년 10월에 시작된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탈탄소·친환경 정책과 글로벌 통상 규범의 조화로운 동거가 가능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현재 글로벌 환경 협약이 글로벌 통상 규범과 양립할 수 없을 가능성에 대하여 지속적인 지적이 있는바, 올해도 이 제도에 의하여 피해를 보게 되는 러시아, 인도 등 당사국에 의한 문제 제기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 제기와는 별개로 글로벌 통상 규범의 핵심인 내국민 대우와 최혜국 대우를 위배할 가능성이 있는 다양한 탈탄소·친환경 정책을 각국이 앞다퉈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다자간 자유무역의 기본 원칙을 이용하여 타국의 보호무역주의적 탈탄소 정책을 저지한다’는 일견 아름답지 못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WTO는 현재로서는 이러한 논란으로부터 이견을 수렴하여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여유와 여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세계무역기구(WTO)는 2023년 12월 보고서에서
G20(주요 20개국) 국가가 2023년 5~10월
중순에 무역 제한적 조치를 무역 촉진적 조치보다 더 많이 도입했다고 밝혔다.
각자도생의 세계 질서에서‘인근 궁핍화’ 정책이 더 늘어난 셈이다.





韓 통상 정책이 유의할 다섯 가지

종합해 보면, 2024년 글로벌 통상 환경은 높은 불확실성하에서 점차 더 진행되는 파편화와 단절을 경험하는 지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각국이 리쇼어링(reshoring·생산 기지 본국 회귀)과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우방국끼리 공급망 구축)이 더욱 진전되고, 당분간 효율성은 제쳐두고 공급망 안정화와 회복력 제고를 위해 노력하지만, 지속적인 도전이 계속되는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통상 정책의 원활하고 순조로운 추진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 더욱 유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첫째, 공급망 다변화 정책이 공급망 안정화 및 회복력 강화에 항상 기여하지는 않을 수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급망 다변화가 단시일 내에는 어려운 일이지만, 다변화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다수의 공급원으로의 분산으로 말미암아 다양한 위험에 더 자주 노출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믿을 만한 소수의 공급원으로부터의 조달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

둘째, 프렌드쇼어링의 위험성도 특정한 조건에서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믿을 만한 파트너 국가와 공급망을 구축하더라도 그 국가가 공급하는 상품이 해당국의 내수와 수출에 동시에 기여하고 있다면, 해당국의 국내 공급 상황에 따라 수출은 얼마든지 제한될 수 있다. 특히 공급망 불안에 따라 국제 가격이 국내 가격을 상회할 경우 해당국이 수출 제한 조치를 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셋째, 외부적 충격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민한 통상 조직을 가동하고 유지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품목이 여러 나라와 얽혀 있기 때문에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기민한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넷째, 글로벌 거시 경제 상황이나 외국의 제도 변화에 따른 영향을 항상 주시해야 한다. 부채나 해당국 국내 상황에 의해 억압된 해외 소비가 가져오는 영향, 투자 심사 제도 강화에 따른 투자의 국가 간 양극화 증대, 해외 보조금 규제의 강화에 따른 국내 기업 피해 가능성에 대해 항상 유의해야 한다. 올해 이러한 위험성은 더 커졌다. 다섯째, 국가 간 분쟁과 제재 효과가 가져오는 영향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예컨대 현재 대러 제재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제재국의 제재 강도가 더욱 강해지고 있으면서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는 다른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의존도가 더 커짐으로써 제재가 무력화하고 새로운 대안적 공급망이 구축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용어 설명

1) 인근 궁핍화 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
다른 나라의 경제를 희생, 즉 궁핍하게 만들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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