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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아이켄그린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경제학 교수 "美 IRA ‘리스’로 공략한 韓 대응 영리해…EU 그린딜 계획 참고해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목표는 청정에너지 품목의 미국 내 생산을 늘리는 것이지만, 미국이 한국산 제품을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적 경제 석학 배리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UC 버클리) 경제학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2022년 8월 시행에 들어간 IRA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이주형 조선비즈 기자
▲ 배리 아이켄그린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경제학 교수
예일대 경제학 박사, 현 전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정책 자문위원

실제로 IRA가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것이라는 초기 우려와 달리, 최근 미국에서 한국의 전기차 등 친환경차 판매 실적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IRA 시행 1년이 되는 2023년 8월 기준 미국내 한국의 친환경차 판매량은 1만4000대로 전년 동월 대비 153% 증가했고, 미국 내 시장점유율은 2.9% 포인트 상승한 10.9%로 2위를 차지했다. 이는 정부가 2022년 말 렌트, 리스 등 상업용 차량 판매에 대해서는 ‘북미 조립’ 등 요건과 관계없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미국과 협의한 덕분이다. 또 현대자동차는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전기차 공장 건설에 착수하기도 했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IRA는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효과를 중시하고 있는 만큼 한국에 불이익을 주는 법안이 맞다”라면서도 “한국의 대응이 영리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바람직한 IRA 대응 사례로 유럽연합(EU)이 추진하는 그린딜 산업 계획(Green Deal Industry Plan)을 꼽으며, “한국이 유럽의 대응을 참고할 것을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린딜 산업 계획은 2023년 2월 1일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계획으로, EU 내 친환경 산업 역량을 강화하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업에 친환경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이러한 EU의 대응은 세계 무역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모범적”이라며 “유럽은 보조금뿐 아니라 품질을 기반으로 경쟁하고 있으며, 친환경 산업 경쟁력도 약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자문위원을 지낸 아이켄그린 교수는 1997~98년 외환 위기 때부터 한국 경제를 연구한 대표 지한파(知韓派) 경제학자다. 외환 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자문위원을 지냈고, 2012년에는 1987년 이후 한국 경제의 변화를 다룬 책 ‘기적에서 성숙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을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나는 미국이 무역 분쟁의 한가운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럽을 비롯한 다른 국가가 각자 버전의 IRA로 대응하면서
보조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2022년 미국이 IRA 법안을 제정한 이유는.

“IRA의 이름 ‘인플레이션 감축(Inflation Reduction)’만 보면 알 수 없겠지만, 이 법안의 목적은 미국 전체,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한 민간 기업의 친환경 기술 투자를 장려하는 것이다. 법안을 제정하게 된 계기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많은 공화당 의원과 달리 기후변화가 국가의 번영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여긴다. 탄소 배출은 외부성을 지니고 있고, 그 가격이 구체적으로 책정되지 않는다. 게다가 민간 부문에서는 기후변화를 예방할 녹색 기술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친환경 기술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와 보조금 지원이 필요했다.

둘째로 미·중 경쟁의 심화다. 미국 정부는 배터리, 태양 전지판 등의 수입을 중국에 의존하지 않으려 한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공급망 충격은 이 같은 상품의 국내 생산을 늘려 공급망 안정을 이뤄야 할 필요성을 알게 해줬다. 셋째로 배터리 공장, 태양광발전소, 기타 친환경 부문 공장을 국내에 건설하는 것은 평균 소득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빈곤 지역에 도움이 된다. IRA가 실업률이 높은 지역에 청정에너지 투자를 유치하면 ‘보너스’를 제공하는 이유다. 내 동료인 패트릭 클라인(Patrick Kline)과 엔리코 모레티(Enrico Moretti) 등 경제학자들은 최근 연구에서 이러한 ‘장소 기반 정책’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IRA 법안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는데, 그 효과는 법안 취지에 부합했나.

“아직 효과를 말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다. 확실히 미국의 기업 투자는 이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기업 투자는 IRA뿐만 아니라 반도체 제조·투자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으로도 촉진됐다. 또 미국 경제의 호조도 영향을 미쳤다. IRA의 효과를 따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IRA가 ‘장소 기반 측면’에서 효과적인 법안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효과적이었다고 해도 그 효과가 얼마나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현재로서는 말하기 어렵다. 초기 분석에 따르면, IRA의 세금 혜택을 받는 투자는 고용률이 낮고 빈곤율이 높은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는 초기 단계의 분석이다.”

▲ 배리 아이켄그린

한국에서는 미국 IRA가 ‘자국 보호주의 법안’이라는 인식이 있다. 앞으로 IRA는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앞서 말한 것처럼 IRA의 목표 중 하나는 전기차가 포함된 청정에너지 품목의 미국 내 생산을 늘리는 것이다. 한국에서 수입하는 자동차가 아닌 미국산 자동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분명 한국 생산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내 생산을 늘리는 것이 자급자족을 고집하며 한국산 자동차를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여기서 수십 년 전 미국이 일본에 자발적으로 대미 자동차 수출을 제한하도록 했던 조치가 떠오른다. 이 조치는 혼다, 도요타, 닛산 같은 일본 기업이 북미에 생산 시설을 확장하도록 장려했다. 한국의 전기차 생산 업체들도 IRA에 대해 같은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가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전기차 공장 건설을 착공한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초기 사례다.”


일각에서는 세계 신기술 혁명을 위해 IRA 같은 보조금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IRA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탄소 배출량에 대한 가격이 제대로 책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 기능만 믿는다면 친환경 제품이 덜 생산되고, 덜 소비될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친환경 제품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보조금은 정당화될 수 있다. 전 세계가 과도한 탄소 배출로 고통받고 있다는 점에서 친환경 제품은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보조금을 받는 미국산 전기차와 그렇지 않은 한국산 전기차를 차별하는 것은 자유무역에 대한 왜곡이며, 이는 전 세계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가 오로지 기후변화에만 관심이 있다면, 차별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은 공급망 충격과 (IRA로 창출될) 제조업 일자리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소외된 지역도 중시한다. 따라서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IRA를 시작으로 총기 없는 ‘무역 전쟁’이 시작된 것 같다.

“나는 미국이 무역 전쟁의 한가운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럽을 비롯한 다른 국가가 각자 버전의 IRA로 대응하면서 보조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주요 광물에 대한 수출 통제로 ‘맞불’을 놓았다. 이런 주요국 간 대립이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중국이 희토류 및 기타 광물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행한 것은 IRA에 대한 대응이 아니다. 칩스법과 중국 첨단 반도체 생산과 관련된 기술 수출 규제 등에 대한 대응이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든 중국의 광물 수출 규제든, 글로벌 무역과 성장에 좋지 않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무역과 성장을 고려하고 시행하는 것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우 국가 안보를 이유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규제가 ‘정당한지, 효과적인지’ 여부다. 중국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AI 등 첨단 기술을 사용한다면, 이러한 규제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는 경제학자에게 물어볼 질문이 아닌 안보 전문가에게 물어볼 질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측면에서, 미국의 규제는 효과적으로 작용할까. 화웨이가 차세대 스마트폰용 칩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은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가 중국의 AI 기술 개발을 늦추는 데 일시적인 효과만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은 IRA로 전기차 경쟁력에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리스 판매 차량의 보조금 적용’ 틈새를 노려 대미 수출을 늘렸다.

“이는 일부 한국산 전기차에 대해 최대 7500달러(약 992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영리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세계 주요 경제국의 IRA 대응 중, 한국이 참고할 만한 모범 사례를 소개하자면.

“미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 중 하나인 EU의 대응을 살펴볼 수 있겠다. EU의 대응은 무역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이뤄졌다. EU는 그린딜 산업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IRA 보조금 정책에 대응하고, 유럽 내 친환경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 보조금 규정을 완화하는 등 넷 제로 산업법(Net-Zero Industry Act)⒧을 제정한 것이다. 이러한 대응 덕분에 유럽의 친환경 산업 경쟁력은 쇠약해지지 않았다. 그들은 가격과 보조금뿐만 아니라 품질을 기반으로 경쟁하고 있다.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유럽의 대응을 참고할 것을 조언하고 싶다.”

용어 설명

(1) 넷 제로 산업법(Net-Zero Industry Act)
EU 집행위원회가 2023년 3월 그린딜 산업 계획의 일환으로 발표한 법안으로, 미국의 IRA와 유사하게 구성돼 있다. 유럽 친환경 산업 육성과 2050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달성을 목적으로 한다. 2030년까지는 EU 내 에너지 보급 수요의 40%를 자체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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