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상·FTA

FTA 활용하기
한국의 FTA 발자취와
보호주의 파고 속 FTA 활용
FTA 상대국으로 수출하는 특혜 대상 품목에 대해 FTA 원산지 증명서가 얼마나 발급됐는지를 백분율로 환산한 통계.
수출 활용률이 높을수록 수출 과정에서 FTA를 많이 활용한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수출 활용률이 낮다면 활용 대상 품목이 적거나
원산지 증명에 어려움을 겪어 FTA 특혜관세 혜택을 적용받지 못한 기업이 많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

한국의 FTA 발자취

한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은 1999년 12월 칠레 수도 산티아고(한·칠레 FTA 1차 협상)에서 시작됐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전 세계 59개국과 21건의 FTA를 체결했고, 이 국가들과 무역은 우리나라 전체 무역의 79.1%(수출 82.3%, 수입 76.2%‧2022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우루과이라운드(1986~93)의 결실로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다. 이를 통해 상품 무역에 대한 개방과 규범만을 다루던 국제 통상 질서는 서비스와 지식재산권으로 확대됐다. 또 기존 상품 규범도 보다 상세한 내용을 다루며 체제의 안정성이 제고됐다. 많은 국가가 함께 관세를 낮추는 방식이 우리에게 더 유리하지만, WTO에서는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지금까지 대대적인 관세 인하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WTO 출범과 같은 시기에 북미에서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현 USMCA)이 발효되고, 유럽에서도 경제 통합이 가속화되며 다자주의와 지역주의의 공존이 지난 30년간 진행되어 왔다.

우리가 뒤늦게 FTA 체결에 뛰어든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당시 주변 국가인 중국, 일본, 러시아와는 FTA 체결이 불가하거나 어려웠기 때문에, FTA 체결 시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 작은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들과 FTA를 먼저 선택했다. 칠레(2004·발효 연도), EFTA(스위스·노르웨이·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 싱가포르(2006)와의 FTA가 그 결과물이다. 어느 정도 시장 개방에 대한 대내외 협상 경험을 한 뒤 다음 순서는 이른바 거대 시장이었다.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2005), 미국, 인도(2006), 유럽연합(EU, 2007)과 협상이 개시되면서 그야말로 본격적인 FTA 시대를 열었다.







IRA 등 자국우선주의 속 FTA의 효과는

동시다발적인 FTA 체결을 통해 수출 시장 선점 효과를 얻고, 안정적인 가치사슬 기반을 조성함으로써 수출 시장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원자재 및 중간재 공급과 해외투자 등 기업의 글로벌 비즈니스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통상 환경은 FTA의 효과가 크게 와닿지 않을 만큼 복잡하고 향방을 예측하기 어렵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후 단행된 다양한 미국 중심적 조치와 중국과의 마찰은 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 더욱 정교한 수출 통제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같은 산업 지원 정책으로 이어졌다. 최근 프랑스도 중국산 견제가 주목적이기는 하나 원거리 역외 국가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1947년 이후 국제 통상 질서의 근간이었던 비차별 대우 원칙이 훼손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렇다면 FTA는 더 이상 효과가 없는 것일까. 우리 무역이 21건의 FTA로부터 얼마나 혜택을 받고 있는지는 FTA 활용률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세청은 협정별, 품목군별, 지역별 FTA 활용률을 집계해 발표하고 있다. FTA 활용률은 FTA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품목(‘무관세 품목’이나 ‘양허 제외 품목’을 뺀 FTA의 실질적 개방 대상 품목)의 수출입 중 특혜 원산지 기준을 충족시킨 품목의 수출입 비중을 계산한 것이다.

+ 주요 FTA 체결국 상대 수출에서 FTA 활용률

자료_관세청, 2023년 2분기 수출 기준



한국 수출의 FTA 활용률 80.2%

지난 2023년 2분기 우리나라 수출의 FTA 활용률은 80.2%, 수입 활용률은 80.3%로 나타났다. FTA별로 수출 활용률이 높은 FTA는 캐나다(96.8%), EU(91.5%), 미국(89.7%), 호주(89.2%)의 순서로 나타났고, 수입 활용률은 페루(98.8%), 칠레(96.1%), 중국(89.5%), 콜롬비아(86.8%) 순서로 높았다. 이에 비해 캄보디아(31.5%), 뉴질랜드(37.0%), 중남미(38.3%) FTA는 수출에서, 캄보디아(25.5%), 인도네시아(30.0%),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일본·34.7%)은 수입에서 FTA 활용률이 낮았다.

활용률만으로 FTA를 평가할 순 없다. 낮은 FTA 활용률은 원산지 기준 충족이 어렵거나 다른 제도적 문제가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해당 FTA를 활용하지 않고도 거래할 유인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수출입 품목의 계절적 요인 등 통계상 확인되지 않는 변수도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에는 대상 시계열 확장, 품목별 분석 등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 활용률이 지속적으로 낮은 원인을 파악하고, 필요하다면 상대국과 협의해 개선 협상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아세안과 FTA를 체결했지만, 개별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과 양자 FTA를 추진하고 인도, 영국 등과 개선 협상을 하는 것도 이를 반영한 것이다.

비록 미국이 IRA를 통해 자국 산업 및 공급망 구축에 유리한 제도를 만들어 우리 기업과 수출에애로를 초래하기는 했으나, IRA에는 미국이 FTA를 체결한 국가에 대한 우대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IRA의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핵심 광물 요건이 있는데, 핵심 광물이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에서 채굴되거나 가공될 경우(해당국에서 50% 이상의 부가가치 발생) 이를 인정하고 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로부터 채굴된 핵심 광물일지라도 우리나라에서 반입·가공해 부가가치 기준을 충족시키면 그 배터리 구성 재료는 IRA의 핵심 광물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된다. 한미 FTA 덕에 우리 배터리 소재 기업의 부담이 한층 줄어든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추진된 한국의 FTA는 우리 기업에 경제적 이득을 제공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게 해줬다. 경쟁국이 우리의 FTA 체결국과 FTA를 체결하면 그 효과가 일부 상쇄될 수는 있으나, 그것으로 FTA 효과가 소멸했다고 볼 수는 없다. 기업과 시장은 상황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하고 있으며, 기체결 FTA는 이미 기업 경영전략의 상수로서 새로운 흐름에 대응하는 데 힘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우방인 우리와 FTA를 체결하고도 IRA로 뒤통수를 쳤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으나, 만약 한미 FTA가 없었다면 우리 기업은 대응 수단 없이 보호주의라는 망망대해에 던져진 일엽편주와 같았을 것이다. 격변하는 통상 환경 속 FTA의 무용론을 따지기보다는 이미 있는 제도를 잘 활용할 방안을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




관련 컨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