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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허윤·김양팽·안기현 통상·반도체 전문가 3人 “美·中 반도체 통상 전쟁…
韓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제조 경쟁력 강화”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통상 전쟁 속 한국은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 반도체는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한국 경제 엔진으로, 인공지능(AI)·자율주행차 등 미래 신산업 발전의 핵심 역할을 한다. 한국은 반도체 경기 불황 여파로 2023년 9월까지 12개월 연속 수출 감소를 겪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등 반도체 전문가와 통상 전문가인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3인에게 현 반도체 패권 경쟁과 한국의 대응 방안을 물었다.
박용선 조선비즈 기자  

미국의 대중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중국 시장 비중 축소에 따른 미국과 우방국 기업의 반발과 불만 해소 문제다. 둘째는 반도체 전문 인력의 기술 보안 문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제학 박사, 현 서강대 세계무역연구소장, 전 한국국제통상학회장, 전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전 세계은행 경제자문역, ‘역사의 시작’ 저자

우리 정부는 국내 반도체 클러스터에 국내외 반도체 제조 장비, 소재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는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

니혼(日本)대 경영전략 전공 박사, 전 주일본 한국대사관 경제과 전문연구원

미국, 일본, 유럽이 첨단 반도체 제조 시설을 구축하고 있는데,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유지할지, 주목해야 한다. 이는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제조에 주력하고 있는 한국과 경쟁으로 이어진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성균관대 산업공학 학·석·박사, 전 SK하이닉스 반도체기술기획 담당, 전 KAIST 나노종합기술원 수석 연구원

2023년 9월까지 12개월 연속 한국의 수출 감소가 이어졌지만, 대(對)미국 수출은 지난해 9월 사상 최대 수준인
100억달러(약 13조5800억원)를 돌파했는데, 그 배경은 무엇인가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이하 허윤)
“달러 강세와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에 따른 기업 내 무역 증가, 이자율 인상에도 잘 버티는 미국 시장의 활력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수출 상위 품목인 석유나 선박, 무선통신기기, 가전 등도 선방했지 만 2023년 상반기만 해도 전년 동기 대비 88%에 이르는 전기차(EV)의 폭발적인 수출 증가세가 눈에 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요건을 적용받지 않는 리스 차 위주의 전기차 수출을 늘리면서 현대차·기아는 미국 전기차 시장 내 점유율 2위를 기록했다. 배터리나 양극재, 태양광 셀·모듈 수출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무역 상대국의 정책 변화를 우리 정부와 기업이 잘 읽고 함께 대책을 세운 결과로 분석된다.”

한국이 중국 의존적인 수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허윤
“우리 전통 시장인 미국과 유럽연합(EU) 및 일본, 신흥 시장인 중동과 인도, 동남아 및 중남미 등으로의 수출을 늘려 중국 수출 비중을 줄여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이미 2023년 12월 월간 수출액 기준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2003년 6월 이후 처음으로 다시 역전된 것이다. 수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수입원을 다변화해서 높은 대중 의존성을 오히려 무기화하는 중국의 경제적 강압(coercion)에 대비해야 한다. 최근 중국의 흑연 수출 통제 발표에서 보듯이 중국은 주요 자원을 무기화해 서방에 타격을 가하고 있다. 공급망 재편, 독립성 강화가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상황이다. 특정 자원을 인조 광물로 대체하거나 여타 물질로 대체하는 기술 개발, 새로운 공급원 모색 및 수직 계열화 가능성 타진 등이 절실하다.”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 제한에 나서는 등 반도체를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왜 반도체가 글로벌 통상 전쟁의 중심에 있나.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이하 안기현)
“반도체는 자동차, 휴대전화 등 전기로 움직이는 기기의 핵심 부품으로, 반도체가 없으면 전자 기능이 필요한 제품을 만들 수도 운영할 수도 없다. 나아가 반도체는 경제 안보와도 연결된다. 2021년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가 인프라 인스트럭처(기반 시설)다. 오늘날 새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반도체가 경제 안보에 직결된 품목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2021년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 사태로 미국 GM의 자동차 공장 가동이 중단된 걸 보면, 반도체가 왜 경제 안보와 연결되는지 잘 알 수 있다. 반도체는 국가 산업, 경제 존폐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이하 김양팽)
“반도체는 첨단 무기 개발에도 사용된다. 미국은 G1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타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을 견제하고 있으며, 중국은 기존 산업뿐만 아니라 첨단산업 발전을 위해 반도체 자립화를 추구하고 있다. 반도체는 AI, 자율주행차 등 신산업 발전에 필요한 핵심 부품이다. 특히 미국은 중국이 첨단 기술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걸 우려하고 있다. 반도체가 군사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허윤
“중국은 수요 시장의 강국일 뿐 반도체 산업의 첨단 기술과 생산 영역에서는 아직 변방에 서 있다. 미국이 첨단 미래 기술 국가로 도약하려는 중국의 사다리를 끊어놓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반도체 수요는 현재 컴퓨팅 및 데이터 저장, 무선통신 등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지만 향후 자동차 및 산업용 전자기기 등에서 빠른 성장세가 예상되는 만큼 기술패권 경쟁의 중심에 반도체가 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료_산업통상자원부

한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은 미국, 중국 등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가.

김양팽
“반도체는 우리나라 수출 1위 품목으로 전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생산액과 부가가치 비중도 15% 이상으로,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다. 메모리 반도체 대표 품목인 D램과 낸드플래시는 모 두 우리 기업이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시장점유율도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모두 시장점유율이 낮다. 파운드리는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시장 점유율이 아직 높지 않다. 미국, 중국 두 국가와 비교해서 공통적으로 우리가 우수한데, 설계력은 뒤처진다.

미국은 반도체 종주국이고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모든 공정의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다. 반도체 전체 경쟁력은 미국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최근 반도체 굴기 선언 이후에 막대한 투자를 통해 반도체 자립화를 추구하고 있으나 미국의 제조 장비 수출 규제로 인해 여전히 자체 생산 능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다만 설계 분야인 팹리스는 기업 수도 많고 우수한 인재가 몰리며 우리보다 경쟁력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은.

안기현
“중국의 경우 미국이 통제하고 있는 반도체 장비를 스스로 개발해 반도체 제조 기술을 구축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이 얼마만큼 성공을 거둘 것인지가 중요하다. 미국, 일본, 유럽이 첨단 반도체 제조 시설을 구축하고 있는데,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유지할지, 주목해야 한다. 이는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제조에 주력하고 있는 한국과 경쟁으로 이어진다.

김양팽
“반도체 산업 역사를 보면 제조업이 아시아 지역으로 이전됐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시스템 반도체는 대만이 제조의 중심이 됐다. 그런데 최근 미국을 비롯해 EU, 일본이 다시 반도체 제조업 부활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해외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생산 기지 본국 회귀)이다. 반도체 제조 부문에서 각국이 경쟁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비용을 줄이고 반도체를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분업화된 글로벌 공급망이 경쟁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허윤
“미국의 대중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중국 시장 비중 축소에 따른 미국과 우방국 기업의 반발과 불만 해소 문제다. 예를 들어 세계 반도체 장비 회사 1위와 3위인 미국의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램리서치(Lam Research) 등의 중국 매출 비중은 30%다. 우리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40%, 홍콩을 포함하면 55%에 이른다. 따라서 단계적이고도 유연한 중국 압박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는 반도체 전문 인력의 기술 보안 문제다. 실제 중국 주요 반도체 기업에는 엔지니어가 포진해 있다. 대만 TSMC 엔지니어의 10% 이상이 중국 기업으로 이직한다고 들었다. 이들의 역할과 능력에 따라 중국의 반도체 기술 추격은 속도를 달리할 수도 있다.”






한국 정부는 2023년 3월 삼성전자 등 민간 기업과 함께 약 300조원을 투자해 2042년까지 경기도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클러스터에는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개, 국내외 우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및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을 포함해 최대 150개 기업을 유치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반도체 관련 대중 규제가 한국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은.

안기현
“미국의 수출 통제 제도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로, 한국 기업에 크게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있는 한국 반도체 공장을 더 이상 증설할 수가 없다는 것은 부정적일 수 있지만, 이로 인해 한국 내 반도체 공장 증설이 이뤄지는 것은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경기도 용인에 건설 중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반도체 제조 기술 관련 세계 최고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유지하고 있는 (반도체) 글로벌 협력 관계가 깨질 것이고, 한국 반도체 산업이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



+ 한국의 반도체 산업 수출구조

자료_관세청·한국은행, 2022년 수출 금액 기준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와 협의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공장에 대해 별도 승인 없이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김양팽
“한국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우리 기업이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Validated End User)1)’로 지정돼 미국산 반도체 장비 반입이 사실상 무기한 연장됐는데, 대만은 1년만 추가로 유예됐다. 그만큼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데 불확실성이 완화됐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협상에서도 우리 기업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허윤
“산업통상자원부 특히 통상교섭본부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눈에 띈다. 주요국의 입법 사항이나 정책 변화 및 대응책 모색을 위해 민관 공조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전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현안 해결에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결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계속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국내산 전기차의 미국 수출이 늘어난 것도 보조금 수혜 대상인 ‘리스 차 판매’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적극 권유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IRA 배터리 광물 부품 기준을 둘러싸고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만든 것도 정부 역할이 컸다. 이 밖에도 정부의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 경제동반자협정(EPA) 등을 통한 공급망 안정성 확보나 신시장 개척 및 기술 협력 등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도 지금의 글로벌 환경을 고려한 적절한 방향 전환이라 생각한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 속 한국의 업계가 나아갈 방향은.

김양팽
“코로나19 이후의 무역·통상 환경이 크게 변했다. 기존의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산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는 메모리 반도체 공급 국가다. 1983년 삼성전자가 64Kb D램을 처음 생산한 이후 지금은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 시장점유율이 모두 1위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지만 우리는 이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내 반도체 클러스터에 국내외 반도체 제조 장비, 소재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



용어 설명

1)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Validated End User) 미국 정부가 사전에 승인된 기업에만 지정된 품목에 대해 대중국 수출을 허용하는 일종의 포괄적 허가 방식. 미국이 반도체 등 핵심 기술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가운데, 글로벌 기업들의 피해를 경감하기 위한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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