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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FTA

법률 전문가가 보는 통상
한미 세탁기 세이프가드 분쟁
과거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라는 기조 아래 미국 중심의 보호 무역 조치를 펼쳤다.
집권 초기부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철회를 선언하고 북미자유무역 협정(NAFTA) 재협상에 착수했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또는 종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안정혜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국제중재 및 국제소송팀 공동팀장
셔터스톡


뿐만 아니라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 특히 중국산 철강에 대해 관세법 337조 및 통상확대법 232조를 통해 조사를 개시하고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통상법 301조를 발동해 중국산 제품에 대해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프랑스의 디지털서비스세에 대한 보복 조치를 결정하기도 했다. 나아가 통상법 201조를 빈번히 발동하여 긴급수입 제한 조치, 즉 세이프가드1)를 발동하기까지 했다. 한미 세탁기 세이프가드 분쟁은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했다. 미국의 가전제품 생산 기업인 월풀은 2017년 삼성과 LG의 대형 가정용 세탁기 수입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미국 국제무역 위원회(ITC·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2)에 세이프가드 신청을 제기했다. 이에 트럼프 정부는 2018년 1월 22일 한국산 수입 세탁기에 대하여 통상법 201조에 따른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2018 년 2월 7일부터 적용된 이 조치는 수입 쿼터를 설정하고 쿼터를 초과하는 수입품에 대해 고율의 관 세를 적용할 뿐 아니라 쿼터 내의 수입품에 대해서도 상당히 높은 관세를 부과해 삼성과 LG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측됐다.



+ 미국의 세탁기 세이프가드에 따른 관세



기관

2018.2~
2019.2
2019.2~
2020.2
2020.2~
2021.2
2021.2~
2022.2
2022.2~
2023.2
수입 쿼터 120만 대 120만 120만 120만 120만
쿼터 이내 관세 20% 18 16 15 14
쿼터 초과 관세 50% 45 40 35 30
자료_법무법인 율촌

우리나라는 2018년 5월 14일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및 세계무역기구(WTO) 세이프가드 협정(이하 ‘협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WTO에 미국을 제소했다. 약 4년간의 치열한 공방 끝에 2022년 2월 8일 WTO 패널은 우리 정부의 손을 들어줬고, 이 판정은 2023년 4월 28일 채택돼 우리나라의 승소가 확정됐다. 우리나라의 승소는 WTO 절차를 이용해 미국의 세이프가드 남용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러나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세이프가드 발동의 결과다.


+ 미국 세탁기 세이프가드 사건의 쟁점 및 패널 판정



쟁점

패널 판정
예견하지 못한 발전 및 부담한 의무가
수입 증가 및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는지
미국은 GATT 제19조에서 규정한 ‘예견하지 못한 발전 (unforeseen development)’ 및
‘부담한 의무(obligation incurred)’를입증하지 못했으므로 협정 3.1조 위반
국내 산업이 적절하게 정의되었는지 미국은 ‘국내 산업’의 범위를 판단하면서 경쟁 관계가 없는 수입 세탁기 부품과 미국산 세탁기 부품의 동종성을 인정했고,
‘국내 산업’에 당해 상품뿐 아니라 관련 생산설비와 인력을 포함하는 ‘제품라인 접근법’을 적용했으므로 협정 4.1조(c)항 위반
산업 피해를 초래한 급격한
수입 증가가 발생했는지
미국은 수입 증가 관련 수치를 비공개 처리함으로써 수입 증가 입증에 실패했으므로 협정 2.1조 및 3.1조 위반
심각한 피해의 발생이 입증됐는지 미국은 벨트 구동 세탁기 생산자의 손익 정보를 국내 산업 수익성 판단 정보에서 제외한 점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해 협정 4.2조(a)항 및 3.1조 위반
인과관계가 입증됐는지 미국은 수입품이 봉돌이형 세탁기를 포함한 미국 내 동종 상품 전체의 가격 하락을 초래했음을 입증하지 못했고,
수입 증가와 산업 피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트렌드 분석도 부적절했으므로 협정 3.1조 및 4.2조(b)항 위반
협의 의무를 위반했는지 미국은 세이프가드 발효 2주 전에야 한국에 최종 통보를 함으로써 적절한 사전 협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으므로 협정 8.1조 및 12.3조 위반
자료_법무법인 율촌


ITC는 2023년 8월 세탁기 세이프가드의 가장 큰 수혜자는 월풀이 아닌 삼성과 LG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과 LG는 세이프가드 발동 이후 미국 내 생산을 시작했는데, 2018~2022년 기간 삼성 아메리카(America)와 LG USA의 세탁기 생산량 및 시장점유율은 계속 증가한 반면, 월풀, 제너럴일렉트릭(GE) 등 미국 기업의 세탁기 생산량 및 시장점유율은 감소했다. 이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따른 무역 제한 조치가 항상 자국 기업이나 산업 보호에 성공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한국 기업들은 현지 생산과 뛰 어난 기술력 및 가격 경쟁력으로 세이프가드라는 무역 장벽을 극복하고 오히려 시장점유율을 더욱 높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세탁기 세이프 가드 분쟁의 결과는 고무적이다.

용어 설명

1) 세이프가드
자국 산업 보호 수단의 하나로 특정 제품의 수입이 늘어나 자국 기업이나 산업에 중대한 손해가 있을 경우 일시적으로 그 품목의 수입을 제한하는 긴급수입 제한 조치. 제한 조치의 수단은 정량적 수입 제한이나 관세 인상 등으로 구성할 수 있다.

2)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대외무역이 미국 내의 생산, 고용, 소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모든 요인을 조사하는 미국 대통령 직속 독립기관으로, 국제 통상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1916년 관세위원회로 발족해 1974년 통상법에 따라 현 기구로 개편됐다. 보조금을 받거나 덤핑으로 미국에 수출된 외국 상품이 미국 업체에 피해를 주었는지 여부를 판정한다. 미국 상무부가 먼저 외국 수입품에 대해 덤핑 및 상계관세율을 매기면 ITC는 이 수입품으로 인해 미국 업계가 피해를 입었는지 여부만을 예비 및 최종 판정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판정하게 된다. 최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부상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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