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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VOL.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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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조명

통상 전문 인력 양성, 이제 국가적 과제 돼야

국제통상 체제가 급변하고 있다.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이 와중에 미·중 분쟁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게다가 브렉시트(Brexit)와 같이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로 새로운 사업 형태와 교역 방식도 속속 등장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통상 전문 인력 양성은 이제 지엽적인 접근법이 아닌, 국가적 과제로 삼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재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통상 파고 넘기 위해 특성 맞는 인프라 확충이 시급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전례 없는 통상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이 물결을 제일 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곳이 바로 산업통상자원부다. 통상교섭본부 담당자들은 밤낮없이 국익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2018년 이래 수많은 통상 현안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이 정도로 우리가 선방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이들의 헌신 덕분이다.
사실 우리 통상 담당자들의 우수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전 세계를 오가며 우리 기업의 이해관계와 국익 보호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나라가 세계 7위의 교역국으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이 국제교역의 주요국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통상 담당 공무원들의 열정과 노력이 결정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던져진 중요한 과제가 있다. 국제통상 체제가 새롭게 정립되는 변곡점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바로 통상 전문 인력을 앞으로 어떻게 더욱 확충하고 양성하는가 하는 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우리 통상 전문 인력의 국가적 인프라를 확충하고, 또 이들의 전문성을 더욱 함양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일단 이러한 방향성을 정하고 첫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인프라 확충 문제다. 무엇보다 통상교섭본부의 조직과 인력을 장기적으로 확충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인프라를 구축해야 이를 토대로, 필요한 전문성 함양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지금 통상교섭본부에 근무하는 소수의 인력으로는 현재 진행 중인 여러 현안과 앞으로 닥칠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지금의 조직과 인력을 늘려나가야 한다. 가령 5급, 7급 등 공개 채용 시험에서 통상 전문 인력을 별도로 채용하는 폭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통상 문제에 우리 국가적 사활이 걸려 있다면 국가 채용 시험에서도 이를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2019년 5급 채용 시험의 경우 모두 330명을 선발하는데, 국제통상직은 10명에 불과하다. 7급 채용 부문에서는 관세직과 외무영사직은 있지만, 통상직은 별도로 없는 실정이다. 세계 7위 교역국이라는 지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최소한 매년 30~40명 내외의 신규 인력을 통상 분야에 계속 공급해야 한다. 이들은 산업통상자원부뿐 아니라 다른 부서로도 배치돼 통상 문제를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는, 전문성 확보를 위한 체계적 지원이다. 통상 전문 인력에 대한 지속적 관리와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가령 다양한 재교육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2~3개월간 국내 교육기관에 위탁해 통상 현안과 최신 문제를 교육하는 방안도 그 중 하나다. 해외 교육기관 연수 기회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중앙 부처 예산 및 파견 인원상 제약이 있다면 통상 분야 담당 직원에게 해외 연수의 우선권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통상 업무는 고되고 힘들지만 빛이 나지 않는다. 담당자들은 잘되면 당연하고 잘못되면 비난받는 위치에 있다. 아마 대부분 이러한 평가에 공감할 것이다. 국가를 위해 힘든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배려를 해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공무원 체제상 급여를 통한 보상은 불가능하므로 다른 방식이라도 모색해야 한다. 그러므로 통상 분야에 종사하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교육과 연수 문제에서 우선권을 주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하다. 해외 연수 등과 관련해 지금과 같이 다른 분야의 공무원들과 동일 선상에서 평가하는 것이 아닌, 통상 분야 담당자의 특성을 고려한 제도적 우대가 필요하다. 국내외 교육기관을 통한 재교육은 향후 이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를 배출하는 데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실질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능력 있는 인재들의 지원도 이어질 수 있다.



장기적 로드맵 설계와 민관 교류 통한 시너지도

지금의 통상환경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 틀에서는 상정하기 힘든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전문성 함양이 선행돼야 이를 토대로 창의적 해법도 따라올 것이다. 현재 전개되는 새로운 통상환경의 특징 중 하나는 통상협정이 적용되는 영역이 대폭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적용되지 않던 영역에도 점차 이들 협정이 찾아가고 있다. 환율 문제, 국가 안보, 국영 기업 등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하던 영역으로 통상협정의 적용 범위가 지속해서 확장하고 있다. 나아가 때로는 통상 문제가 아닌 사안이 통상 문제화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중국과의 사드 배치와 관련한 갈등 역시 원래 통상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종당에는 통상 이슈로 비화한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현상을 쫓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이는 체계적 재교육과 재충전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통상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이들의 전문성 함양을 지원하는 방안에 대한 장기적 로드맵이 필요하다.

셋째, 민간 영역과의 지속적인 교류다. 이제 통상 분야에서는 정부와 민간 영역의 밀접한 협력이 없으면 성공적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다. 정부와 민간 분야가 서로 역할 분담을 하고, 상호 정보 교환을 통해 여러 현안에 대한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새로운 통상 현안은 과거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다. 이러한 새로운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정형화된 접근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새로운 접근 방식과 사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댈 때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갖지 못한 역량을 민간 영역에서 찾을 수 있고, 민간 영역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정부만의 노하우가 있기도 하다. 이들을 적절히 배합하고 연결해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 산업통상자원부의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민간 전문 인력이 정부 부처로 진출하고, 또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통상이라는 ‘환경 생태계’에서 일하는 우리 국내 전문가 풀(pool)을 구축하는 것을 국가적 과제로 상정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2014년 FTA활용 업종별 전문인력 양성사업 출범식. 사진 제공  산업통상자원부



다시 뛰는 통상, 달리는 말에 날개를 달아야

지금 우리 통상은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다. 미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우리의 1, 2위 교역국인 미·중은 지금 사활을 건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 기업에 대한 주요 부품 및 장비를 공급하는 이웃 나라 일본과의 관계 역시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그간 우리나라의 울타리가 됐던 WTO는 앞날이 불투명하다. 그야말로 전례 없는 위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전문 인력과 역량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책임감과 함께 자율성을 부여해 이러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이 문제는 앞으로 산업통상자원부의 장기적 과제로 고민해볼 만하다. 한편 어려울 때일수록 긍정적인 측면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작금의 어려움은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다. 새로운 통상질서가 형성되는 이 시점에 우리가 제대로 중심을 잡고, 역량을 결집해 앞으로 치고 나간다면 새로운 통상환경에서 앞자리를 선점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미·중 분쟁으로 양국이 주춤하는 사이 그 틈새를 우리가 파고들 여지도 있을 것이다. 분명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다. 그런데 아시아의 시대를 선도할 것으로 보이던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강력한 견제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대를 선도할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나라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고자 한다면 우리 스스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포착하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준비 작업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바로 이를 담당할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것, 그리고 이들이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제도로써 뒷받침하는 것이다. 우리 공무원들의 우수성은 이미 수없이 검증했고 확인했다. 제도적 뒷받침만 이루어진다면 ‘달리는 말에 날개를 달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통상환경이 악화하는 상황을 우려만 하지 말고,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이자 변화의 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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