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리나라의 첫 자유무역협정(FTA)인 한·칠레 FTA 발효 15주년이면서 FTA 정책 20년이 되는 해다. FTA를 통해 우리가 이뤄온 성과를 제대로 살피고 이를 토대로 더 큰 도약을 하기 위해 FTA 15주년을 돌아보고 평가하며, 보완할 점을 살펴본다.
글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결코 쉽지 않았던 FTA의 첫걸음
1999년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칠레와의 FTA 공식 협상에 돌입했고, 수많은 난관과 시행착오를 겪은 후 2002년 말 협상을 공식 타결했다. 하지만 국내 비준은 협상만큼 힘들었다. FTA에서의 농업 개방을 저지하려는 농업인 단체의 조직적 반발과 농민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눈치 보기로 2003년 한 해를 보내야 했다.
2004년 4월 한·칠레 FTA가 발효됐고, 8월 말에는 우리나라의 ‘FTA 로드맵’이 확정됐다. 당시 국내외 상황을 고려해 FTA 추진 목표를 단기와 중·장기로 구분하고, ‘동시다발적 추진 전략’을 채택했다. 칠레와의 FTA 외 별다른 추진 실적이 없었고, FTA 추진에 대한 국내 반발이 컸던 시기에 FTA 협상 목표를 의욕적으로 설정하기도 어려웠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와의 FTA 추진에 관심을 보이는 국가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싱가포르, 일본, 멕시코 등과의 FTA 협상 논의가 가능했고,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은 우리나라와 FTA를 논의하는 것 자체를 기피하는 상황이었다.
동시다발적 추진 전략은 단기간 내 FTA 협상 추진 성과를 높이기 위해 복수의 FTA 협상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었다. FTA 로드맵 추진 과정에서 ‘외곽 때리기’ 전략도 추가됐다. 예를 들면 한·미 FTA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나라는 캐나다와의 FTA 논의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현재 52개 국가와 15개의 FTA를 체결함으로써 FTA 로드맵에 설정한 목표 이상을 달성했다.
전략적 통상정책으로 앞서나가다
우리나라가 칠레와의 FTA 협상을 시작하자 일본은 WTO 다자무역체제를 중시하며 ‘스파게티볼’ 손실을 초래하는 FTA 지역주의를 경계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얼마 안 가 기존 입장을 바꾸고 싱가포르 및 멕시코와의 FTA 체결에 나섰다. FTA보다는 WTO 가입을 최우선적인 통상정책 목표로 설정해놓은 중국은 2001년 말 WTO 정회원국이 된 이듬해부터 FTA 정책에 착수해 아세안과의 FTA를 첫 목표로 설정했다.
지난 15년 사이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FTA 네트워크를 확충한 국가가 됐다.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입에서 FTA 체결국과의 무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수출 73%, 수입 63%로, 이는 전체 무역의 68%에 해당한다. 전체 무역에서 FTA 체결국 무역 비중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국가는 칠레와 멕시코다. 이들 국가의 경우 제조업 기반이 취약하고 경제 규모가 작다는 점에서 FTA 실익은 우리나라가 훨씬 더 클 것이다.
2010년 이전에 우리나라는 아세안, 인도, 미국 및 EU와의 양자 간 FTA를, 2015년에는 중국, 영연방 3개국(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과 FTA를 체결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타결한 일본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FTA 정책을 부러워하고 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TPP를 탈퇴하면서 TPP가 ‘포괄적이고 점진적인 TPP(CPTPP)’로 위상이 약화했고, EU와의 FTA도 지난해 타결했을 정도로 FTA 추진이 느린 편이다.
2007년 5월 23일에 열린 한·미 FTA 기업전략 워크숍. 사진 제공 산업통상자원부
한·미 FTA로 또 한번 성장하다
우리나라의 FTA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협정은 한·미 FTA다. 무역자유화 폭이 넓고 속도도 빠르며, 협정 범위 역시 포괄적이어서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협정으로 평가됐다. 실제로 국내외 다수 FTA 협상에서 기본적인 참고 자료로 활용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TPP 협상 초기 참가국들은 한·미 FTA를 교재로 사용했다. 협정 내용이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채택함으로써 큰 경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고, 한·미 FTA 이후 우리나라는 EU, 호주, 터키 등 주요 교역국들으로부터 FTA 추진 러브콜을 받게 됐다.
2003년 말 일본과의 FTA 협상을 시작했으나 협상이 진행될수록 양국 간 주요 의제에 대한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농업을 제외한 제조업 위주의 시장개방 전략을 수립한 일본은 매 협상에서 FTA라는 일반명사 대신 ‘경제동반자협정(EPA)’ 명칭 채택을 제안했고, 제조업에서 균형적인 시장개방안을 도출하는 데 애로를 겪던 2004년 말 6차 협상 전체 회의에서 양국 관계자가 서로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만큼 입장 차이가 컸다는 것을 시사한다. 긴밀하게 협력해도 원만한 결론을 도출하기 어려운데, 상호 불신하는 상황에서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FTA를 접고 대안으로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한·미 FTA의 경제성과 중요성이 큰 만큼 비용도 많이 들었다. 300여 개 단체가 한·미 FTA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이슈에 따라 국론 분열적인 상황이 협상 기간 내내 이어졌다. 이는 협상 당국이 미처 검토하지 못한 점을 지적해주고 미국의 요구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으나, 미국과의 FTA 자체를 반대하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 반대론자들은 주로 농업에 대한 피해를 거론하며 미국과의 FTA를 반대했지만, 미국보다 우리 농업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국과의 FTA에서는 농업계를 제외한 사회단체의 조직적 반발이 없었다.
통상정책에 걸맞은 인프라 갖춰
우리나라가 단기간 내에 FTA 선도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FTA 추진 인프라를 적절한 시점에 구축 및 정비했기 때문이다. 2004년 FTA 추진 절차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만들었고, 2011년 통상절차법을 도입해 FTA 협상에서 주요 시점별 여론 수렴 및 정보 제공을 체계화함으로써 통상정책에 대한 반발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또한 농업과 같은 취약 산업에 대한 대책으로 반발을 완화했다. 2004년 수립된 119조 농업 분야 중·장기 투자 및 융자가 10년 동안 지속됐고, 주요 FTA 발효 시점에 맞춰 FTA 보완 대책이 마련됐다. 칠레와의 FTA 1.4조 원, 한·미 FTA 대책으로 23.1조 원이, EU와의 FTA 발효 시점에 10.8조 원, 캐나다 및 호주와의 FTA 11.6조 원 등 총 39조 원의 재원이 농업경쟁력 강화 및 FTA 취약 업종 피해보상에 지원됐다.
또한 한·미 FTA 협상이 논의되던 시점에 무역조정지원제도(Trade Adjustment Assistance, 이하 TAA)를 도입해 시장 개방과 수입 증가로 인해 피해를 보는 제조업과 서비스 기업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당초 매출의 25% 이상 감소가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TAA 지원을 받을 수 있게 설정했으나, 기업 지원의 원활화를 위해 25%에서 10%(컨설팅의 경우 5%)로 하향 조정했다.
한편, FTA 경제효과 극대화를 위해 2010년 우리나라는 FTA 활용 종합 대책을 수립했고, 수정 보완을 거쳐 지금까지 추진해오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FTA 활용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관세율, 원산지 기준 등을 체계적으로 검색할 수 있는 인터넷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FTA 통상 전문 인력 육성을 위해 학부 강좌 및 대학원 과정을 지원한 바 있고, 연간 4,000여 중소기업에 FTA 활용 컨설팅을 제공 중이다. 심지어 2015년에는 FTA 콜센터를 구축해 FTA 활용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대부분 세계 최초로 시행한 지원 대책이다.
우리나라의 FTA 로드맵, 국내 보완 대책, FTA 활용 종합 대책 등은 일본, 대만, 아세안 국가 등에서 벤치마킹해 자국에 적합한 제도를 도입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 특히 일본과 대만은 통상 분야 연구자를 한국으로 파견해 우리나라의 제도를 분석해 우리나라와 유사한 지원 제도를 수립하고자 했다.
바이어 초청 수출 상담회에서 한국 농식품을 살펴보는 해외 바이어. 사진 제공 연합뉴스
2018년 9월 24일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 사진 제공 청와대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더욱 발전시켜야
FTA의 경제 효과를 사후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FTA 회원국에 대한 수출이 증가하거나 무역수지가 개선되면 FTA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곤 하지만, 많은 변수가 수출과 수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다양한 경제 모형을 이용해 정밀하게 분석해야만 정확한 효과를 추정할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연구에 따르면, 발효 이후 FTA 체결국으로의 수출 증가율이 대(對)세계 수출보다 대체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FTA 발효 이후 5년간 FTA 상대국에 대한 총수출에서 작게는 15.6%, 많게는 86.2%가 FTA 덕택인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특히 EU 재정위기로 FTA 발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대(對)EU 수출이 크게 감소했지만, EU에 대한 전체 수출에서 한·EU FTA 기여도가 86.2%인 것으로 나타났다. EU와 FTA를 체결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대(對)EU 수출은 실제 수출액의 13.8%로 크게 줄어들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FTA 추진 실적은 상당히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FTA 발효 15주년에 우리나라 FTA 정책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먼저 미·중 통상마찰 등 대외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FTA 정책과 산업-통상 연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산업 변화의 흐름에 맞는 통상 정책이 시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세안 개별국가와의 FTA 추진 외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국제적 추세와 산업적 환경에 부합하지 않은 디지털에 대한 법규 손질을 위한 노력 없이 국제규범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바뀐 느낌이다.
FTA 활용 지원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많은 중소기업이 FTA 활용 애로를 겪고 있으므로 기존 컨설팅을 유지하되, 컨설팅 내용을 고도화해야 한다. 저가(무료) 컨설팅은 사실상 동일한 내용을 제공함에 따라 수혜 기업의 니즈와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아직도 건수 위주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자부담을 대폭 늘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고품질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FTA 취약 산업에 대한 국내 보완 대책의 영향을 평가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존 농업 지원 외에 39조 원의 예산을 FTA 농수산 분야 개방에 대한 조치에 투입했지만, 지금도 농업계는 개방 취약 업종으로 남아 있다. 농업 구조조정 및 경쟁력 지원에 기여하도록 예산의 효율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FTA 활용률은 선진국 수준에 육박하고 있으나, FTA별로 활용률 격차가 크다. 선진국과의 FTA 활용률은 80%대이지만 개도국 FTA 활용은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 기업의 문제보다는 개도국 FTA 자체의 문제가 활용률을 낮추는 요인이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기존 협정의 업그레이드를 추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FTA 시대 소비자 이익 실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농산물은 말할 것 없고 주요 소비재 국내 가격이 경쟁국에 비해 높다. 과다한 소비자 세제가 원인이 될 수 있고, 국내 복잡한 유통 체계가 높은 소비자가격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FTA 강국에서 소비자들이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통상환경 악화로 작년 말부터 수출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경쟁국들의 FTA 체결 확산으로 ‘FTA 선점 효과’가 희석되면서 우리나라의 수출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 등 새로운 FTA 파트너와 협상 개시와 더불어 기존 협정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우리 기업의 FTA 활용 기반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RCEP 협상 타결 및 CPTPP 등 메가 FTA 참여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우리나라 통상정책의 기반을 확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