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식품도 한류 열풍, 농수산식품 新수출유망품목 육성
한류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서특필되고 있지만, 사실 K푸드는 또 하나의 한류라고 얘기해도 될 만큼 최근 해외에서 다양한 가공식품이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라면부터 만두, 음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K푸드의 글로벌 성장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자료 정덕현 문화평론가
단순한 음식을 넘어 문화로 자리해가는 K푸드
지난해 K푸드 무역수지 실적은 3억5,493만 달러로 전년 대비 12%가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물론 농산물 자체의 수출도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이런 무역수지를 견인한 건 역시 가공식품이다. 라면, 제과, 김, 만두, 조제분유, 두부 같은 가공식품은 지금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K푸드에 세계인이 열광하는 이유는 K팝이나 드라마, 유튜브 먹방 같은 한류 콘텐츠가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을 높인 게 첫 번째고, 아시아 음식은 ‘건강하다’는 이미지가 서구권에서 자리 잡으면서 K푸드 역시 이 대열에 들어간 게 두 번째다.
K푸드가 전 세계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건 미국 시장만 봐도 단박에 드러난다. 라면은 미국에서 K푸드의 성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식품이다. 2017년 업계 최초로 미국 월마트 전 점포에 입점한 신라면의 경우, 매출이 비약적으로 늘어 기존 LA 공장 생산 물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매운맛을 대표하는 불닭볶음면은 2014년 유명 유튜버 ‘영국남자’가 시식 영상을 올리면서 화제와 함께 매출도 급상승한 식품이다. 2012년 출시되던 해 1억 원에 불과하던 수출액이 2015년에 100억 원 돌파, 2016년에는 660억 원, 2017년에는 1,800억 원을 달성하는 비약적인 K푸드의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최근 미국인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비비고만두 열풍은 2018년 식품업계 최고 히트 상품으로 꼽힐 정도로 글로벌 매출이 2배 이상 뛰어올랐다. 2015년 1,240억 원이던 것이 지난해 3,420억 원으로 성장한 것. 이 실적을 견인한 것이 바로 미국 시장이다. 지난해 전체 글로벌 매출 3,420억 원 중 2,400억 원이 미국 시장에서 벌어들인 액수다. 본래 중국 만두가 차지하고 있던 미국 내 만두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은 비비고만두가 이렇게 선전할 수 있었던 건 중국 만두에 비해 얇고 쫄깃하면서도 현지인의 입맛에 맞춘 풍부한 만두소 덕분이다. K푸드는 ‘건강식’이라는 이미지가 작용하면서 비비고만두는 미국에서 ‘원더풀 헬시(healthy) 푸드’로 불리고 있다.
미국은 물론, 러시아·남미·중국·동남아로 뻗어나가는 K푸드
이 밖에도 미국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K푸드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풀무원 두부와 메로나다. 미국 내 두부 시장에서 무려 73.8%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풀무원 두부는 단백질 함량을 높인 ‘하이 프로틴 두부’, 햄버거 패티처럼 먹는 ‘패티 두부’ 등 현지화가 그 성공의 비결이다. 또 빙그레 아이스크림 메로나는 지난해 하와이 편의점 판매 수입 아이스크림 매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브라질의 경우 한 끼 식사비(약 2,500원)에 가까운 고가지만, 이를 모르면 트렌디하지 않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메로나가 브라질의 디저트와 기호식품 문화에까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미국만이 아니라 K푸드는 이제 러시아, 중국, 동남아까지 뻗어나가는 글로벌 식품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팔도에서 나오는 ‘도시락’ 라면이 러시아 용기면 시장점유율 60%를 넘는 인기를 끌고 있는데, 여기에는 독특한 그들의 식문화가 이 음식과 맞아떨어진 면이 있다. 즉 1990년대 초 부산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선원들 사이에서 먼저 이 도시락 라면이 화제가 된 것은 그것이 러시아 선원들이 사용하는 휴대용 수프 용기와 비슷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흔들리는 배에서도 먹기 편한 데다 칼칼한 맛이 러시아의 전통 수프와 유사했다는 것. 게다가 기름기 있는 음식을 선호하는 러시아인에게 우리 마요네즈의 러시아 점유율은 무려 70%에 달하는데, 러시아인들은 라면에도 마요네즈를 넣어 먹는다고 한다. 중국의 국민 간식이 된 초코파이는 이제 베트남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에게 ‘정(情)’의 이미지로 마케팅된 초코파이는 베트남에서도 ‘Tinh Cam(정감)’이란 이미지로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다. 박항서 신드롬과 함께 지난해만 베트남에서 5억 개가 넘게 팔려 베트남 파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밖에도 캄보디아에서 국민 피로회복제가 된 박카스, 인도네시아에서 대히트를 친 어린이 음료 ‘귀여운 내친구 뽀로로’, 중동 껌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스파우트껌’ 등 K푸드의 글로벌 영향력은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다.
K푸드 가공식품이 가진 현지화의 힘
2018 식품산업 주요 통계에 따르면 세계 식품 시장은 6조1,280억 달러로 세계 자동차 시장의 4.4배 규모라고 한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국제정세의 불안함 속에서도 굳건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게 바로 K푸드 분야다. 정부는 지난 6월 12일 농수산식품 분야를 신수출유망품목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분야의 약 82%가 가공식품이다. 그만큼 우리 K푸드가 원재료보다는 새롭게 가공해 상품화한 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렇게 가공식품의 성장이 눈에 띄는 것은 기존의 식품이라도 현지 입맛에 맞게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라면의 경우 이슬람교도 무슬림이 많은 동남아시아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할랄(Halal)푸드’ 개발이 필수적이다. 신세계 푸드가 말레이시아 라면, 스낵류 전문 기업과 합작해 설립한 ‘신세계마미’를 통해 내놓은 ‘대박라면’이 대표적이다. 말레이시아 할랄 인증을 받은 이 라면은 말레이시아에서만 400만 개를 팔아치우며 말 그대로 ‘대박 K푸드’의 반열에 올라섰다. 또 채식주의자가 많은 인도 시장을 겨냥해 오뚜기가 채식주의자용 진라면 ‘베지진라면’을 개발해 수출하고, 삼양패키징이 인도네시아에 할랄 인증 음료 루왁 화이트 커피를 내놓는 것. 이것이 가공식품이 갖는 현지화 가능성의 힘이다.
K푸드의 해외 진출 방식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미국의 월마트 같은 대형 매장에 농심 신라면과 풀무원 김치를 입점하게 된 건 미국인들에게도 라면과 김치 같은 K푸드에 대한 인지도가 이미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CJ제일제당이 미국의 냉동식품 기업 슈완스를 인수한 것은, 이 기업이 갖고 있는 미국 내 3만여 개 판매망을 통해 만두, 햇반 같은 가정 간편식 판매를 보다 공격적으로 전개해나가겠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