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하게 팔아도 잘못?
싸게 파는 게 문제!
외국산 제품이 수입되어 국산 상품과 경쟁하고,
결과적으로 시장점유율에 따라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것은 잔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자유무역 시대의 숙명이다.
다만, 덤핑에 힘입은 불공정 경쟁은 논외다.
자료 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왜 싸게 파는가
“사장님이 미쳤어요”라는 문구가 여간 반갑지 않다. 업자에겐 폐업의 아픔이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이처럼 좋은 기회가 없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시장의 논리라는 게 그러하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얼마나 노련한지 가격이 내려가면 시장 논리에 따라 수요는 자연스레 커지게 마련이다. 당연히 경쟁사의 제품 수요는 줄어들게 된다. 그만큼 제품의 가격이 곧 경쟁력인 셈이다. 국가 간 무역에서도 이런 일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보통 기업은 제품을 만들어 국내에도 유통하고 해외에도 수출하는데, 이때 해외에 수출한 제품이 국내에서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될 때가 있다. 바로 ‘덤핑(dumping)’이다.
경제적으로 보면 딱히 나쁘지 않다. 특히 좋은 제품이 낮은 가격에 판매되는 경우라면 소비자 복지는 크게 증대한다. 그러나 덤핑이라는 불공정한 무역 행위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시장점유율을 확대한 기업은 경쟁사의 도태를 초래하며 종국에는 독점(monopoly)적 지위를 갖는다. 이 경우 해당 기업이 가격을 선정하는 데 주도권을 갖고 소비자로서는 낮은 가격의 기쁨도 잠시, 해당 기업의 가격정책에 종속되고 만다. 물론 꼭 이런 전략적 계산에서만 덤핑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기업은 국내 재고 처리나 외화 확보를 위해 덤핑을 하기도 한다. WTO 회원국은 기본적으로 시장 개방의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에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품의 무분별한 덤핑에 대비한 일종의 보호책이 필요하다. 반덤핑(anti-dumping) 관세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덤핑 피해로부터 구제해줄 무역구제제도의 하나로, 낮아질 대로 낮아진 덤핑 가격에 관세를 더해 정상 가격으로 유도하는 방식이다.
국제무역체제에서의 반덤핑 논의
1948년 발효된 최초의 국제무역협정 GATT는 제6조에서 반덤핑 관세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으로 1960~1970년대 케네디라운드와 도쿄라운드에서 이를 발전시키게 되었고, 1995년 WTO가 설립되면서 별도의 반덤핑 협정이 최종 탄생한다.1 2016년 12월까지 WTO 회원국에 의해서만 5,000건 이상의 반덤핑 조사 절차가 시작되었고,2 2019년 9월 기준 총 587건의 WTO 분쟁 중 반덤핑 협정이 관계된 경우만 132건이다.
반덤핑 조치의 발동 요건과 과정
덤핑으로 수출한 국가와 그 제품에 대해 반덤핑 조치를 취하기 위해선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① 정상 가격(수출국의 국내 가격)과 수출 가격을 비교해 수출 가격이 더 낮아 덤핑이 존재할 것, ② 국내 산업에 덤핑으로 인한 실질적 피해가 발생하거나 그러한 우려가 있을 것, ③ 덤핑과 피해(우려) 간 인과관계가 성립할 것’이다. 원칙적으로 특정 기간 동안의 해당 제품 거래에 대한 가격을 바탕으로 덤핑 마진율을 계산하고 그 여부를 결정하는데, 그 식은 ‘(정상 가격-수출 가격)/수출 가격×100’과 같다. 여기서 나온 덤핑 마진율이 2% 이하인 경우에는 반덤핑 관세 부과 대상이 아니다.
위 세 가지 상황이 모두 확인되면 마침내 덤핑 조사가 수출국을 대상으로 진행되는데, 이 조사 또한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반덤핑 조사에 대한 질의서 응답을 서면 형식으로 증거와 함께 30일 이상의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제출하게 된다. 필요한 경우엔 현장 조사도 진행한다. 조사 기간은 통상적으로 1년 이내로 1년 반을 넘을 수는 없다. 결과에 따라 예비 판정과 잠정 조치, 최종 판정과 그에 따른 조치로 귀결되는데 반덤핑 관세의 지속 부과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부과일 기준 5년 이내에 해당 조치를 종결하도록 하는데 이를 ‘일몰 조항(Sunset Clause)’이라고 한다.
반덤핑 협정의 향후 과제
1948년 발효된 GATT가 1995년 WTO 체제로 패러다임 시프트를 겪는 과정에서 반덤핑과 관련한 국제 통상 규범은 한층 정교화되고 고도화되었다. 그럼에도 각국의 덤핑 관행 역시 나름의 진화로 점점 더 교묘해지고 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부조리를 낳았다. 우회덤핑이나 미국의 제로잉(zeroing), 특별시장상황(Particular Market Situation, PMS) 및 불리한 가용 정보(Adverse Facts Available, AFA), 표적덤핑(Targeted Dumping) 등이 대표 사례다.3 이에 대해 반덤핑 제도에 과감하게 메스를 대야 하지만 WTO DDA 협상 표류도 쉽지 않은 과제다.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덤핑’과 관련한 각종 권모술수가 여기저기 ‘덤핑’되고 있는 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만 봐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1 심종선, <WTO 반덤핑 협정 해설>, p.21.
2 정찬모, <WTO 상품무역법>, p.164. 심지어 1995~2016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반덤핑 조치의 대상국임.
3 보다 자세한 설명은 박정준, ‘미국 국내 통상법의 주요 현안: 301조부터 PMS까지’, <함께하는 FTA>(2017년 6월 통권 61호)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