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흥과 한은 어떻게 외국인들을 들썩이게 하나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란 말은 상투어가 돼 버렸다.
그만큼 우리 것에 열광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류 콘텐츠의 근간이 되고 있는 전통문화의 무엇이 전 세계인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걸까?
자료 정덕현 문화평론가
K팝-전통문화, 전통 민요-팝이 융합되는 시대
방탄소년단은 2018년 ‘아이돌(Idol)’이라는 곡에서 마치 마당극에서 들을 법한 추임새와 장단을 노래 중간에 집어넣었다. “얼쑤 좋다!”, “지화자 좋다!”, “덩기덕 쿵 더러러” 같은 추임새와 장단은 영어로 된 랩과 가사 사이사이에 들어가 한껏 흥을 끌어올리는 본래의 기능을 발휘했다. 또 ‘아이돌’은 노랫말만이 아니라 춤과 의상 등에서도 전통문화 요소를 삽입해 넣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봉산탈춤이 연상되는, 어깨를 들썩이고 몸을 날려 풍차 돌리듯 돌리는 춤동작이 들어갔고, 뒷부분에 가면 아예 실제로 북청사자놀이가 등장한다. 게다가 디지털로 그려놓은 한옥의 실루엣 속에서 춤을 추는 방탄소년단은 실크 소재로 만든 개량 한복을 입었다. 마고자 형태로 제작한 한복은 방탄소년단의 다이내믹한 춤동작에 부드러운 선을 만들어주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곳곳에 우리 전통문화의 흔적이 보이지만, 전체 뮤직비디오의 콘셉트는 글로벌 축제로 맞춰져 있다. 그 밖에도 아프리카나 중동 같은 다양한 문화권의 아이콘이 잘 어우러져 있다. 한류에 우리 전통문화가 융합되는 방식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민족의 흥을 더해줄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준 사례다.
방탄소년단의 아이돌이 K팝에 국악을 접목한 형태라면, 경기민요 전수자 이희문이 이끌었던 퓨전 민요 그룹 ‘씽씽밴드’ 같은 경우는 아예 국악을 팝(pop)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주목받은 사례다.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초대된 씽씽밴드가 선보인 무대는 우리에게조차 충격적이었다. 빨갛고 하얗게 머리를 염색한 펑키한 스타일을 한 채 무대에 오른 씽씽밴드는 민요 메들리를 들려줬는데 이 10여 분간의 콘서트는 미국인들을 우리네 민요 가락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뉴욕 타임스>는 이들의 음악을 “한국의 전통 민요와 창법을 글램록, 디스코, 사이키델릭 아트의 조합으로 탈바꿈한 불경스러우면서도 매우 흥미로운 혼합체”라고 표현했고,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 밥 보이렌은 “여러분이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밴드”라며 이들을 소개했다. 씽씽밴드는 미국 케네디 센터에서도 공연했으며 전 세계 투어 스케줄이 꽉 차 있는 해외에선 매우 잘 알려진 밴드다.
전통 문화가 더해진 콘텐츠, 세계로 뻗어나가다
최근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들어오면서 우리 콘텐츠도 글로벌을 지향하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 콘텐츠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이다. 이 작품은 조선 시대에 창궐한 좀비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데, 전 세계의 보편적인 좀비 장르에 우리 전통 사극이 절묘하게 결합돼 있다. 한복을 입은 좀비들이 낮이면 대청마루 밑으로 숨어 들어갔다가 밤이면 빠져나와 사람들을 공격하는 모습은 해외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작품으로 갑자기 드라마 속 인물들이 쓰고 나온 ‘갓’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다. 한때 드라마 <대장금>이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중동까지 한류 열풍을 이끈 것도 사극이 지닌 우리식의 독특한 전통문화에 음식이나 의학 같은 보편적 소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의 관건이 전 세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과 그 지역의 특수한 차별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사극 같은 장르가 지닌 글로벌한 가능성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전통문화의 유전자에서 빠지지 않고 지목되는 또 한 가지는 마당극 형태의 퍼포먼스와 결합한 코미디다. 예를 들어 남사당패의 줄타기는 지금도 해외 공연에서 늘 인기를 끄는 퍼포먼스다. 이 줄타기가 특이한 건 쌍둥이 빌딩 위에서 하는 줄타기 같은 스펙터클은 없지만, 우리 눈높이 위에서 줄을 타며 대중과 주고받는 재담의 묘미에 있다. 아슬아슬한 기예 사이에 툭툭 내뱉는 재담은 시대를 풍자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 짓게 한다.
남사당패의 줄타기는 그 자체로 해외에서 각광받는 한류 퍼포먼스이면서 기예화된 다양한 현대식 코미디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를테면 <난타>나 <점프> 같은 논버벌 퍼포먼스의 연원을 따라가 보면 바로 이 남사당패 줄타기식의 아슬아슬함을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요소가 극대화되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마당극 고유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공연 문화의 메카’로 불리는 영국에서 K코미디를 담은 공연 한류의 주역으로 지목되고 있는 옹알스의 무대에서도 우리 전통문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2017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아시안 아트 어워드 베스트 코미디 위너상’을 수상했고, 그해 말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의 초청을 받아 단독 공연을 한 옹알스의 무대에서는 전통 마당극에서 시작해 기예 코미디로 넘어간 우리의 전통적 희극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심광현 교수는 그의 저서인 <흥한민국>에서 프랙탈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를 흥과 한의 배접으로 풀어낸 바 있다. 그는 “한류의 성공 요인은 한국인의 몸놀림과 육성에 내재된, 다른 민족에는 없는 프랙탈한 역동성과 변주 능력, 즉 ‘끼’ 때문”이라고 했다. 마치 초상집을 축제 같은 분위기로 풀어내는, 울면서 웃거나 웃으면서 우는 한과 흥의 문화가 몸을 통해 다채로운 표현으로 나타나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에 담긴 흥과 한이 글로벌한 보편적 대중문화와 어우러질 때, 거기에 한류의 새로운 길이 탄생했던 건 그저 우연이 아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의 등장인물이 쓰고 나온 ‘갓’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