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이에 세계 주요국이 신남방 지역에 대한 투자와 경제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아세안, 인도 등이 새로운 생산거점으로 등장하며 아시아 지역의 글로벌 가치사슬이 변화하고 있어,
신남방 지역 진출에 대한 한국의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글 한형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인도남아시아팀 부연구위원
정부가 신남방정책에 힘을 쏟는 이유
2019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은 라오스 순방을 마지막으로 아세안 10개국과 인도 순방을 모두 마쳤다. 이는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아세안과 인도 순방을 마친 것으로, 신남방 지역을 향한 현 정부의 노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은 남방 국가 아세안과 인도에 대한 협력 정책으로 경제협력 이외에 안보, 인적 교류, 상호 번영 등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신남방정책은 중국, 미국, 일본 등에 집중되어 있는 경제 파트너의 분산 필요성과 함께 아세안과 인도의 역동적 경제성장과 잠재력을 반영한 정책이다. 아세안과 인도는 꾸준한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2위 투자 교역국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아세안과 인도를 향한 정책은 사실 한국만의 독창적 정책이 아니다. 주요 국가에서는 이미 아세안과 인도의 풍부한 인적 자원, 폭넓은 소비시장, 경제성장 잠재력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외국인직접투자(FDI), 공적개발원조(ODA) 등을 적극 활용해 신남방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신남방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경제협력을 진행 중이며, 이는 아세안과 인도의 글로벌 가치사슬 구조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무역장벽 낮추려는 국제적 노력이 탄생시킨 ‘글로벌 가치사슬’
우선 글로벌 가치사슬의 의미를 되짚어보자. 글로벌 가치사슬은 글로벌 분업 연계 형태 또는 글로벌 공급망을 지칭한다. 한 상품이 생산 과정을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상품 구상, 디자인, 원자재, 중간재, 마케팅, 유통 등 여러 부가가치가 사슬처럼 연결되어 투입된다. 우리는 이러한 연결 형태를 ‘가치사슬(Value Chain)’이라고 부른다. 초기의 가치사슬은 주로 한 국가 내에 머물러 있었지만, 해외 중간재를 활용한 생산이 본격화됨에 따라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세계화된 생산 방식의 변화는 기술의 진보와 무역장벽을 낮추려는 국제적 노력에 기인한다. 기술의 발전은 해상과 항공 운송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했고, 이로 인해 다양한 상품이 국경을 쉽게 넘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무역장벽을 낮추려는 국가 간 공조는 국제무역을 빠르게 증가시켰으며 이는 생산 방식의 변화로까지 이어졌다. 현재 시장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대부분 국내 중간재와 다양한 해외 중간재를 활용해 생산한 것이다.
중국의 인건비 상승이 만든 ‘새로운 생산 거점’ 신남방
전 세계 글로벌 가치사슬은 미주, 유럽, 아시아의 세 지역으로 크게 분화되어 있다. 이 중 아시아 글로벌 생산 블록에는 최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중국은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생산 공장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는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중국 중심의 아시아 생산 네트워크는 최근 중국의 인건비가 상승함에 따라 아세안과 인도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인다. 신남방 지역 국가 아세안과 인도가 젊고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산 거점으로 등장한 것이다. 또한 빠른 경제성장과 중산층 비중의 증가 등으로 매력적인 소비시장으로 평가받으면서 이들 국가에 대한 글로벌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최종재 수입의존도가 높았던 신남방 지역의 무역구조가 변화되고 중간재를 수입·가공한 자본재 생산과 수출이 증가하는 중이다.
화학부터 자동차까지, 신남방 지역 수출 경쟁력 꾸준히 상승
변화된 신남방 지역 글로벌 가치사슬 구조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우선 신남방 지역 국가 간 가치사슬 연계도는 더욱 높아졌다. 전 세계 가치사슬 이용 대비 역내 가치사슬 이용 비중은 2007년 22.7%에서 2017년 25%로 증가했다.
역외 가치사슬 구조를 살펴보면, 주요국의 중간재 재수출 거점은 말레이시아 중심에서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인도 등으로 다변화되었다. 과거 한국의 중간재 수출과 재수출 거점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중심이었지만, 현재는 베트남과 인도로 변모했다. 일본의 중간재 수출과 재수출 기지는 말레이시아 중심에서 태국·베트남으로, 중국은 말레이시아에서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인도·캄보디아 등으로 변화되었다. 이에 비해 독일, 영국, 미국 등 주요 제조업 선진국의 신남방 지역 가치사슬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신남방 지역에 대한 한·중·일 공급 사슬을 살펴보면, 한국은 주로 전자부품, 화학, 자동차 산업 부품 소재를 공급한다. 분업 측면에서 보면 베트남을 주요 기점으로 하되 인도, 인도네시아와의 연계성이 증가하고 있다. 중국은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산업에서 전반적인 부품 공급을 담당함으로써 최근 베트남과 인도와의 분업 관계가 크게 증가했다. 일본의 경우 태국을 자동차 산업 등 주요 생산 거점으로 활용하며, 인도네시아와 인도, 베트남 등과의 연계성을 넓히고 있다.
상품 측면에서 신남방 지역의 수출품은 가치사슬 상위 품목으로 고도화되는 중이다. 초기 신남방 지역 수출은 해외 중간재를 이용한 조립 가공 형태가 주를 이루었다. 이렇게 생산 하위 단계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는 매우 적다. 하지만 최근 변화된 신남방 지역의 수출 구조를 살펴보면, 조립 가공을 통한 최종재 수출량에 비해 다른 국가의 생산에 이용되는 중간재 수출 비중이 증가했다. 수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신남방 국가의 수출 경쟁력 또한 꾸준히 상승 중이다. 화학 산업에서도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현시비교우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전자부품과 자동차 산업에서는 각각 베트남과 인도의 경쟁력이 높아졌다.
신남방 지역의 생산 거점을 활용한 전략적 진출 준비해야
그렇다면 신남방 지역의 글로벌 가치사슬 변화에 대응하는 한국의 전략은 무엇일까? 먼저 새로운 신남방 지역 국가와 산업별 전략에 따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의 신남방 지역 가치사슬은 베트남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최근 신남방 지역 가치사슬은 베트남뿐 아니라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 구축된 베트남의 생산 기지를 활용하되 다른 국가와도 전략적 협력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다음으로 한국은 자동차, 전자 부품, 화학 산업 등 전통적 비교우위 분야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최근 아세안과 인도의 수출품은 고도화되고 있다. 현재 연계된 한국과 신남방 지역의 가치사슬 구조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R&D를 통해 가치사슬 전방으로 한 발짝 더 이동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고도화가 진행 중인 신남방 국가 산업에 필요한 중간재와 소재를 개발하고 가치사슬 연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인도의 의약·바이오 산업에 필요한 정밀기계, 신약 물질 등 중간재 개발 및 공급을 통한 산업 연계성을 높이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신남방 지역의 심화된 분업 체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아시안 지역 내 관세장벽은 매우 낮아졌고, 아세안경제공동체(AEC)가 출범하면서 아세안 시장의 통합 움직임이 관찰된다. 최근 인도는 신동방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으며, 뱅골만기술경제협력체(BIMSTEC)가 창설되어 아세안과 인도의 경제협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은 베트남, 태국, 인도 등 신남방 지역 생산 거점을 활용한 우회 수출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역내 물류 이동 환경과 무역장벽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선제적 연구가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제조업의 자동화와 서비스화(Servicification)를 주시해야 한다. 최근 아세안과 인도의 생산 공정이 자동화되면서 인력을 이용한 조립 생산 비중이 줄고 자본재를 활용한 생산이 주를 이룬다. 또 제조업 생산 부문에서 물류, 마케팅, 기술, 금융 등 서비스업 투입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제조업 생산의 3분의 1 정도가 서비스업 부문에서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조업 생산 방식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자동화 솔루션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서비스 산업의 체질 개선과 함께 한국의 서비스 산업과 신남방 지역 제조업 산업의 연계성을 증진시키는 데 힘써야 한다.
2019 태국 제조업 박람회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