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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VOL.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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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지식인

지금까지 이런 재판은 없었다 : 이것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자유무역 수호하는 솔로몬의 지혜, ‘GATT·WTO 분쟁해결제도’

성 아우구스티누스(Sanctus Augustinus)는 4세기의 기독교 신학자다. “자유는 법률의 보호를 받아 처음으로 성립하고, 법 밖에 자유가 있을 수 없다”는 그의 혜안은 20세기 중반부터 본격 확산된 ‘자유’무역과 이를 지켜주는 ‘법(GATT·WTO협정)’에 대한 회원국의 합치 여부를 따져주는 분쟁해결제도에서도 그 빛을 발한다. “자유무역은 GATT·WTO 분쟁해결제도의 보호를 받아 성립하고, 그 밖으로 벗어나면 자유무역이 있을 수 없다.”

  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무역전쟁 막아주는 국제무역 재판소

WTO의 핵심역할인 분쟁해결제도는 쉽게 말해 회원국 A국과 B국이 서로 무역을 하다가 GATT·WTO협정의 위반 소지가 보이는 행위가 발견될 시 이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고 최종적으로 승소·패소국을 가려내 이상적인 해결책을 찾는 국가 대 국가의 창구다. 분쟁해결 전 과정을 명문화해 본 협정의 부속서 형태로 ‘분쟁해결규칙 및 절차에 관한 양해(Dispute Settlement Understanding, DSU)’로 포함했다. 해당 협정의 제23조에는 국가 간 무역마찰이 있을 땐 무조건 이 제도만을 활용해서 이를 해소하도록 하고 있다.1

분쟁해결절차를 알아보기 위해 가상의 상황으로 미·중 무역전쟁을 들어보면, ① 우선 중국의 행위에 불만을 가진 미국(complaint)이 중국(respondent)을 분쟁해결제도에 공식 제소하게 되고 협의(consultation)를 요청한다. ② 그러면 중국은 10일 내에 이에 대한 답변을 제출, 30일 내에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③ 비공개로 진행되는 이 협의가 보통 60일 소요되는데, 합의에 실패할 경우 패널 절차(panel procedures)로 불리는 1심 재판과정에 들어가게 된다.2 물론 60일 내 합의에 성공하면 분쟁은 그걸로 종결된다. 분쟁에는 사안에 이해관계가 있는 제3국(third party, 예를 들어 한국)도 자신의 입장을 개진할 자격을 가질 수 있는데 어디까지나 서면입장 표명 등 한정된 재량만이 주어진다.
1심 재판인 패널은 보통 총 3명이 재판관이 참여하는데, 이들은 정부나 비정부 기관 등 소속에 무관하며 일정 수준의 자격이 필요하다. 회원국 대표, WTO 이사회·위원회 대표, 국제무역법·정책 강의·저술자, 회원국의 고위급 무역관료 등이 주로 임명된다. 보통은 분쟁해결제도를 관할하는 분쟁해결기구(Dispute Settlement Body, DSB)가 후보명단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 추천한다. 단, 자국이 분쟁국(제소국·피소국)이거나 제3참여국일 경우엔 패널이 될 수 없다. 즉, 위 예에서 미국, 중국, 한국 출신 패널은 참여할 수 없다. 재판의 공정성을 위해 당연한 법규이다.

④ 법규상 1심 절차는 재판 보고서(panel report) 회람 포함 재판 개시 후부터 6개월을 넘길 수 없다. 1심 패소국이 항소하지 않으면, 거기서 재판은 종결되지만, ⑤ 항소하면 분쟁해결절차는 2심 최종심인 상소심(appellate review)으로 이어진다. ⑥ 이 절차는 사실심인 패널과 달리 1심 판결에 대한 법률심에 한정되며 법규상 60일(최대 90일)을 넘기지 않고 ⑦ 보고서(appellate body report)를 회람해야 한다. ⑧ WTO의 패널이나 상소기구 판결은 패소국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승소국이 패소국의 이행까지 무역보복을 하거나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 구속력이 매우 강하다. ⑨ 패소국에게 주어지는 판결이행기간은 최대 15개월 정도다.

 

 

 

 

7인의 최고재판관

1심과 달리 2심은 최종심으로 재판관의 전문성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여러 후보 명단에서 추려 뽑는 패널과 달리 상소기구 위원은 7명을 정해 상설로 운영하고 있다. 하나의 재판에는 역시 3명의 위원이 참여하고, 7명으로 한정해 운영하기 때문에 2심에서는 자국 재판에도 참여할 수 있다. 각 임기는 4년이며, 1회에 연임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제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각 위원은 법·국제무역 등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특정 국가의 정부 소속일 수 없고, 마치 월드컵 대륙별 티켓 분배처럼 7명의 상소기구 위원이 회원국 전체를 폭넓게 대변한다. 보통 미국, 중국, 유럽 출신 1명씩에 나머지 4명은 대륙별로 비교적 골고루 분배된다.3
이렇게 164개 회원국 전체의 무역마찰 최종심을 담당하는 영광의 재판관직에 우리나라도 무려 2명의 위원을 배출했다. 서울대 법대의 장승화 교수(2012~2016)와 현 정부 국가안보실 김현종 제2차장(2016~2017)이 그 주인공이다.

 

 

(왼쪽) 김현종 차장. (오른쪽) 장승화 교수. 사진제공 연합뉴스

 

 

GATT·WTO 분쟁해결제도의 위기

2019년 3월 초 기준 총 578건의 분쟁이 본 제도에 회부됐다. 이 제도가 1995년 WTO 설립과 동시에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을 고려하면 매년 20건 넘는 국가 간 무역전쟁을 막아준 셈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앤티가바부다라는 조그만 나라에게 패소하기도 하는 등 이 제도는 늘 공정한 재판을 위해 노력해왔다.4
그러나 최근의 GATT·WTO 분쟁해결제도는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미국이 WTO체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임기가 만료되는 상소기구 위원의 연임과 신규 선임에 제동을 건 탓이다. GATT·WTO와 DSU협정은 기본적으로 전원 합의(consensus)방식으로 의사를 결정하기에 미국이 반대하면 나머지 163개 회원국 모두가 찬성해도 위원들의 공백을 메우기 어렵다. 이 때문에 현재 상소기구 위원은 분쟁 한 건에 필요한 최소 인원인 3명만이 남아 있다.5
이에 따라 WTO 체제의 개혁을 논의하고 있는 EU와 캐나다, 한국 등도 분쟁해결제도에 대한 내용을 핵심으로 다루고 있으며, 주로 임기를 마친 위원의 역할 범위나 분쟁해결 절차의 기간 및 내용 간소화, 기존 4년 이상의 임기 보장 및 신규 위원 선임 절차 자동개시 등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6 미국의 몽니가 WTO 개혁이라는 전화위복이 될 수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1  무역 마찰 발생 시 분쟁해결제도로의 회부할 것을 의무화한 조항의 원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회원국은 대상협정상의 의무위반, 이익의 무효화 또는 침해, 또는 (중략) 장애의 시정을 추구하는 경우 이 (중략) 규칙 및 절차에 호소하고 또한 이를 준수한다.
2   GATT·WTO분쟁해결제도는 보통의 국제법 체계와는 달리 단심제가 아닌 이심제로 운영된다. 전신(前身)인 GATT체제(1948~1994)에서는 단심제로 운영했다.
3  현역 포함 1995년부터 현재까지 총 27명의 상소기구 위원이 배출됐는데, 남미(2), 북중미(5), 아시아(11), 아프리카(4), 오세아니아(2), 유럽(3) 등 출신이 다양하다.
4  산업통상자원부 <함께하는 FTA> 2017년 11월호 참고.
5   Thomas R. Graham (미국), Ujal Singh Bhatia (인도), Hong Zhao (중국)
6  WTO, WT/GC/W/752, WT/GC/W/753, 12-13 Dec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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