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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VOL.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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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개혁 최근 동향 및 향후 전망

WTO 설립 25주년인 2020년을 앞두고 다자무역체제를 개선·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더욱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에 그간 지적받아온 WTO의 문제점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고, 개혁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역할과 향후 전망을 논의하고자 한다.

  백지아 주제네바 대사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TO 본부.

 

 

1. 배경

세계무역기구(WTO)는 ▲국제 환경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무역규범을 도출하기 위한 지속적인 협상, ▲협상 결과물인 규범의 이행과 모니터링, 그리고 ▲규범 위반으로 발생한 분쟁 해결이라는 세 가지 주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기능들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촘촘히 맞물려 WTO가 지난 24년간 다자무역체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기반이 되어왔다. WTO가 세계무역의 98%를 차지하는 164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 22개 가입 신청국이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WTO의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WTO가 그 주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에 따라 WTO 개혁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WTO 설립 이래 이 세 가지 기능 전반에 걸쳐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항상 있어왔다. WTO 회원국들은 WTO의 적실성(relevance)을 유지할 수 있는 규범을 도출하고, 규범의 이행과 모니터링이라는 WTO의 기본적인 임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해왔다. 회원국 간 분쟁을 적시에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고민해왔음은 물론이다.
WTO 설립 25주년인 2020년을 앞두고 다자무역체제를 개선·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더욱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에 그간 지적받아온 WTO의 문제점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고, 개혁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역할과 향후 전망을 논의하고자 한다.

 

 

2. WTO의 주요 기능별 현황 진단

가. 다자간 무역협상 기능

1986년 개시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7년 반 동안의 긴 협상 과정을 거쳐 1995년 WTO의 탄생이란 세계무역체제 최대의 개혁을 도출해냈다. 이 협상이 타결되는 데에는 각국의 정치적 타협 의지가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도하개발어젠다(Doha Development Agenda) 협상 개시 또한 2001년 9·11테러 이후 위축된 세계경기에 대응할 필요성과 개발도상국을 다자무역체제에 편입시켜 개발과 평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한 정치적 의지가 촉매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18년 뒤인 오늘날, DDA 협상이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어 다자무역체제가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도 WTO 회원국들은 ▲정부조달협정 개정(2014년 4월), ▲정보기술협정 확대(2015년 12월), ▲TRIPS 협정 개정(2017년 1월), ▲무역원활화협정 발효(2017년 2월) 등 작지만 중요한 성과를 도출해온 것은 사실이다.
다만, WTO가 새로운 시장 개방과 공정한 경쟁을 위한 규범 제정을 협상하는 장으로서 기대만큼 충분히 역할하지 못했다는 평가와 우려가 있는 만큼, 회원국들은 2019년 말로 시한이 정해진 수산 보조금 협상을 활발히 진행하고 전자상거래 분야에서의 협상 개시를 위한 모멘텀을 착실히 쌓아가고 있다.

 

 

 

 

나. WTO 분쟁해결체제

WTO의 분쟁해결체제는 ‘왕관의 보석(Crown Jewel)’에 비유될 만큼 WTO 체제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WTO 분쟁해결체제는 과거보다 신속히 분쟁을 해결하고, 판정 결과의 집행력을 증가시켰으며, 상소기구 설치를 통해 법적 쟁점도 다룰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최근 오히려 WTO 분쟁해결체제가 WTO 위기의 정중앙에 자리 잡게 되었다.
분쟁해결체제에 대한 지적은 상소기구에 집중되어 있는데, 쉽게 설명하자면 상소기구가 회원국들이 정해준 규범과 조건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1이다. 미국은 이러한 문제가 우선 해결되어야 한다면서, 신규 상소기구 위원 선정 절차 개시를 막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2019년 12월에는 당초 7명의 상소기구 위원 중 단 1명만 남아 상소기구 마비 상태가 발생2하게 된다.
최악의 사태를 피하고자 회원국들은 상소기구 기능을 살려두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소수 주요국 간 논의와 더불어 분쟁해결기구(Dispute Settlement Body) 회의, 그리고 2018년 말부터는 일반이사회(General Council) 차원의 비공식 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상소기구 결원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회원국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문제 해결 가능성은 요원한 상황이다.

 

 

WTO 회의실 내부 전경.

 

 

다. 규범의 이행과 모니터링

회원국들이 서로의 규범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이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분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는 작업은 WTO의 가장 기본적인 정례 업무다. 하지만 이러한 정례 업무의 기반이 되는 회원국들의 통보 의무 준수율은 터무니없이 낮은 상황3이다. 농업협정만 보더라도 2016년 기준 누적 미제출 통보 건수가 총 200건이 넘는 상황이며, WTO 설립 이래 통보 의무 준수율 또한 62%에 그친다. 국가별로 상이한 제도적 역량 등을 감안하더라도, 회원국들의 3분의 1 이상이 기본적인 통보 의무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부 중견국은 WTO의 정례 업무 강화를 위한 노력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특히 작년 10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출범한 WTO 개혁 소그룹(우리나라 포함 총 13개국4 참여)이 이러한 논의에 앞장서며 규범에 기반한 다자무역체제(Rules Based Multilateral Trading System)를 존중하는 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선 위생및식물위생조치(SPS)위원회, 무역에대한기술장벽(TBT)위원회, 원산지위원회, 서비스 이사회의 정례 기능 강화를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이에 더 나아가 미국·EU·일본 등은 통보 기능을 보다 강화해 미통보 국가에 재정적 추가 부담을 주자고 제안5함으로써 WTO 개혁의 목표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백지아 대사(앞줄 왼쪽에서 세번째)와 주제네바 대표부 직원들.

 

 

3. WTO 개혁과 우리나라의 역할

우리나라는 71번째 GATT 체약국(1967)이자, WTO 설립(1995)부터 함께한 원회원국으로서 WTO가 개혁하는 데 활발하고 건설적인 역할을 해왔다. 최근 우리나라는 상품무역이사회 의장직(2017~2018)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으며, 현재 필자는 우즈베키스탄 WTO 가입 작업반 의장직 수임을 통해 WTO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무엇보다도 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무역체제의 강화를 위한 논의에 꾸준히 동참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앞서 언급한 개정정부조달협정(45개국), 정보기술협정(82개)에 참가한 소수의 WTO 회원국 중 하나이며, 무역원활화협정상 전체 의무 즉시 이행을 공약한 47개 회원국 중 하나다. 그뿐 아니라, 2019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75개 여타 회원국과 함께 전자상거래 협상 개시 의지를 천명했으며, 수산 보조금 협상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기여에 기반해 2020년 6월 카자흐스탄에서 개최될 예정인 제12차 각료회의에서 가시적 협상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에 건설적인 자세로 지속해서 참여해나갈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는 여러 회원국과 함께 상소기구 마비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6을 제시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아직까지 문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으나, 우리나라는 상소기구의 조기 정상화를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할 계획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90% 이상의 WTO 통보 의무 준수율을 기록(2016년 기준)하며 투명성을 높이는 데에도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뿐 아니라 WTO 개혁 소그룹이 추진 중인 정례 업무를 강화하는 노력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이 WTO 개혁 소그룹은 캐나다 측의 초청으로 2018년 10월(오타와)과 2019년 1월(다보스)에 두 차례 통상장관회의를 개최함으로써 다자무역체제가 직면한 전례 없는 도전에 대응하고 다자무역체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신속히 공조한다는 요지의 공동 성명을 도출했다. 현재는 13개국이 합의한 대로 서비스무역이사회 및 SPS, TBT, 원산지위원회 정례 업무 강화 작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추후 우리의 경험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해 논의를 주도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다보스포럼에서 발언하는 아제베두 WTO 사무총장. 사진 제공 연합뉴스

 

2018년 G20 정상회의에서 WTO 개혁을 지지하는 각국 정상들. 사진 제공 연합뉴스

 

 

4. WTO 개혁의 향후 전망

WTO 개혁 논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얽혀 있을 뿐 아니라, 회원국들의 입장도 각각 다양해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즉 ‘WTO 개혁’이라는 기치하에 구조적 사안, 전자상거래나 수산 보조금같이 현재 진행 중인 협상, 그리고 WTO 운영 방식 등 WTO가 직면한 모든 현안이 밀접하게 연계되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WTO 시스템을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한 새로운 경제·통상환경에 딱 들어맞도록 개선하고 강화해나가자는 현실적 필요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견국(이른바 ‘Friends of the System’)을 중심으로 ‘규범에 기반한 다자무역체제’를 지지하며 유지·발전시키려는 건설적인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WTO 개혁 논의는 WTO 설립 25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에 개최되는 제12차 WTO 각료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회원국마다 WTO 개혁에 대한 정의나 접근 방식이 달라 어렵고 복잡한 상황이며, WTO 개혁과 관련해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쉽사리 확신하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회원국들은 분쟁해결체제를 활발히 이용하고 있으며, 현재 22개국이 WTO 가입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WTO가 여전히 필요하고 또 유용하다는 데에 국제적 컨센서스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희망을 본다.
우리나라는 다자무역체제 속에서 혜택을 받아온 세계 9위 무역국이자 중견국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WTO 개혁 및 강화의 노력이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힘써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2020년 164개 회원국 각료들이 카자흐스탄에서 다시 만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국익에 기반해 WTO가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로서 핵심적 역할을 지속해나갈 수 있도록 힘을 더하도록 하겠다.

 

 

 

 


1   미국은 USTR 무역정책 보고서를 통해 상소기구 관련 아래와 같은 문제점을 지적함.
     - ① 상소 심리의 90일 시한 미준수 ② 상소위원 임기 종료 후 활동을 자체 승인하는 문제(Rule 15) ③ 분쟁 해결에 불요한 권고적 의견 제시 ④ 사실관계 분석이 허용되지 않음에도 회원국의 국내법을 새롭게 심사(De Novo Review) ⑤ 선례 구속 적용 ⑥ 상소기구가 WTO 협정에 따른 의무와 권리를 변경
     - 아울러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 USTR 대표는 3월 12일에 개최된 미국 상원 재무위 청문회에서 WTO에 대해 “(O)ver the last 20 years, it has migrated from a negotiation forum to a litigation forum”이라고 발언함.
2   상소기구 재임위원(2019년 3월 기준): 중국 자오훙(Zhao Hong, 임기 2016. 12.~2020), 인도 우잘 싱 바티아(Ujal Singh Bhatia, 임기 2011~2019. 12.), 미국 토머스 그레이엄(Thomas Graham, 임기 2011~2019. 12.)
3   WTO 문건(WT/TPR/OV/21)
4   캐나다, 우리나라, EU, 일본, 브라질, 멕시코, 뉴질랜드, 노르웨이, 싱가포르, 호주, 스위스, 칠레, 케냐
5   미국, EU, 일본, 호주, 대만, 코스타리카, 아르헨티나 등 공동 제안 WTO 문건(JOB/CTG/14 또는 JOB/GC/204)
6   우리나라 공동 제안 WTO 문건(WT/DSB/W/609/Rev.9 및 WT/GC/W/752/Re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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