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미국 백악관에서 1.5km 떨어진 곳에 대한제국의 외교 거점이던 대한제국공사관이 자리를 잡았다. 독립국 보장을 위한 지원 요청과 대미 외교 정책 등을 펼치는 공간인 동시에 조선에 근대 문물을 소개하는 통로로 사용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활동하던 사람들과 이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그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한다.
글 김현경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미국공사왕복수록>, 1888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월남 이상재 선생과 딸능돈, 그리고 경인선
월남 이상재 선생(1850~1927)은 서재필 등과 독립협회를 창립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그의 후손이 그가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하 미국공사관)에서 근무할 당시 작성한 문헌 자료들을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하면서 다시 한번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월남 선생은 1887년 미국공사관 2등 서기관으로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를 수행하며 1년 동안 미국 워싱턴 D.C.에서 근무했다.
기증한 문서 중 대표 사료인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은 최초로 공개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문서는 당시 미국과 협상 중이던 중요 현안과 공사관의 운영, 공관원들의 활동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존 유일의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공개된 문서의 내용으로는 특별히 조선과 미국 간 사업 중 뉴욕 법관 ‘딸능돈(달링턴의 음역(音譯)으로 추정) 등이 ‘조선기계회사’를 설립해 철로, 양수기, 가스 설치 등 3건을 추진하기 위해 제안한 규칙과 약정서 초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조선 기계 회사가 경인선 설치를 제안한 사실과 계약서인 ‘철도약장’ 초안도 눈에 띈다.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가 당시 “우리에게 불리한 조건이니 거절해야 한다”라고 고종에게 보고하며 무산됐고, 이후 조선은 1896년에 이르러서야 미국인 모스에게 경인선 부설권을 허가했다. 그러나 모스가 이듬해 이를 다시 일본에 넘겨 1899년 일본이 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인선은 산업화의 초석인 동시에 일제가 수탈의 도구로 활용한 뼈아픈 역사적 흔적이기도 하다. 이번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이 세상의 빛을 보면서 경인선을 일본이 아닌, 미국과 먼저 추진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당시 미국과 협상 중이던 중요 현안, 공사관 운영, 공관원 활동상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존하는 유일한 외교 자료이자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최초의 자료”라며 “조선은 청나라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에 공사관을 세우고 철도 부설권을 협의했을 정도로 자주독립 국가였다”라고 평가한다.
(왼쪽) 주미공사관 재직 시절 월남 이상재 선생, 1888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오른쪽) <미국서간>, 1889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한성부 도시 개조 사업의 모델이 된 워싱턴 D.C.
19세기 후반 개항 후 한성을 찾은 외국인의 눈에 조선은 벌거벗은 산, 기울어진 초가, 허물어진 성벽, 거리를 가득 채운 오물과 악취 등 후진국으로만 보였다. 한성부와 경무청의 관원들은 도시 경관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1896년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내부대신으로 박정양, 한성판윤으로 이채연, 한성소윤으로 이계필, 경무관으로 이종하 등이 임명됐고, 이들은 기존 도로를 정비하고 확대하는 한편, 전등과 전차 그리고 각종 기념비와 공원 등의 공공시설을 설치한다.
박정양, 이채연, 이종하 등은 대조선주차미국화성돈공사관(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원래 이름)의 관원으로 미국 워싱턴 D.C.에 체류한 적이 있다. 곳곳을 다니며 한성에서 볼 수 없었던 ‘도시’를 경험한 것이다. 박정양의 워싱턴 견문기를 살펴보면, 미국의 도로·전등·전차·공원 등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어 언젠가 한성에도 이런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고자 한 그의 염원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이 다시 한성으로 귀국했을 때, 워싱턴 D.C.는 그들의 영감의 원천이 됐다.
이상재 선생의 편지를 모은 <미국서간(美國書簡)>에도 이때의 견문과 감상 등이 남아 있어 그의 활동과 미국관, 세계관을 짐작케 한다. 미국 파견 이전 인천에서 우정국 사사로 일한 그는 1년 남짓한 미국 생활이었지만, 개항된 인천의 모습과 근대화된 미국의 모습을 이후 조선에서 보기를 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