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얼빈 역사 여행
‘탕! 탕! 탕!’ 사내의 손에 들린 총구에서 푸른 불꽃이 인다. 적의 심장을 향해 쏜 단 세 발의 총탄, 그것은 한 나라의 독립 주권을 침탈하고 동양 평화를 교란한 죄인에 대한 단죄였다. ‘9시 30분’, 봉인된 시간 속으로 떠나는 여행, 그것은 어느 정도 각오가 필요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던 하얼빈으로.
글 엄용선(여행작가) wastestory@naver.com
중국 경제 개관(2017년 한국은행, The World Bank, 대만 통계청 기준)
•국내총생산: 12조 2,377억 47만 9,375달러, 세계 2위
•국민총소득: 12조 2,065억 4,554만 628.5달러, 세계 2위
•경제성장률: 6.9%, 세계 16위
•1인당 국내총생산: 8,826.99달러, 세계 65위
극동의 유럽, 국제도시 ‘하얼빈’
서울에서 북쪽으로 919km, ‘극동의 유럽’이라 불리는 중국 하얼빈(Harbin)에 왔다. 동서양의 문화가 조화롭게 혼재되어 도시를 가득 채운 이국적 풍경을 마주하니 지금 선 이곳이 과연 중국인지, 유럽인지 아리송하다.
유난히 붐비는 사람들, 드넓은 광장 한가운데 우뚝 솟은 건물은 오늘날 이 도시를 대표하는 하얼빈 성 소피아 성당(Harbin St. Sophia Church)이다. 촘촘히 쌓아 올린 벽돌, 아치형 기둥과 돔 모양의 지붕이 이국적 면모를 자아내는 건물은 1907년 하얼빈에 들어온 러시아 군대의 종군 성당으로 처음 건립됐다. 당시 목재로 지은 건물은 이후 꾸준한 확장과 재건축을 거쳐 현재의 화려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내부로 들어서니 천장이 아득하다. 벽체는 벗겨지고, 공허한 어둠 속에 아치형 창문으로 외부의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다. 이곳은 현재 하얼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실로 이용 중이다. 하얼빈 100년의 타임 슬립, 눈앞으로 ‘극동의 유럽, 국제도시’ 하얼빈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성당을 나온 걸음이 ‘중양다제(中央大街)’로 향한다. 하얼빈 최대 번화가, 중국과 러시아 문화가 혼재된 거리에는 걸음걸음 역사적 건축물이 즐비하다. 시간의 흐름 속에 도시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거듭된 변화 속에서도 이국적 풍경만은 여전하니, 도시를 걷는 재미가 이보다 특별할까 싶다.
공사 전 하얼빈역 전경.
하얼빈역 플랫폼. 사진 제공 연합뉴스
“카레야 우라(대한제국 만세)!” 안중근 의사, 이토를 저격하다
1909년 10월 26일(음력 9월 13일), 안중근 의사(장군)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은 우리가 타국의 낯선 도시 ‘하얼빈’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주권을 빼앗긴 망국의 국민으로 일평생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위대한 독립투사, 그 숭고한 정신을 찾아 하얼빈 구(舊) 역사에 왔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건물 한편에 자리한다. 출입문 위쪽으로 동그란 모양의 아날로그시계가 눈에 띄는데, 멈춰버린 바늘이 정확히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는 안중근 의사가 이곳 하얼빈 역사에서 민족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바로 그 시각이다. 무겁게 짓눌린 공기가 작은 전시장 안을 지배한다. ‘1879~1910’, 안중근 의사의 흉상 조각에 새겨진 숫자는 그가 살다 간 짧은 생을 나타낸다. 고작 31년 남짓한 세월이다.
기념관에는 안중근 의사의 잘린 손을 형상화한 브론즈 조각상, ‘거룩한 손’을 비롯해 손도장이 찍힌 유필 등 안중근 의사의 탄생부터 순국까지의 일생을 전시해놓았다. 특히 의거를 기획하고 달성하기까지 하얼빈에 머물던 11일간의 일들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토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하얼빈에 왔다.” 거사의 결심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바, 그 예정된 운명을 기다리는 안중근 의사의 맘이 어땠을까?
‘탕! 탕! 탕!’ 마침내 울려 퍼지는 세 발의 총성. 안중근 의사의 손에 들린 총구에서 푸른 불꽃이 발사된다. 45도 각도, 불과 열 발자국 남짓한 거리다. 그 역사의 현장에 발을 디디니 형언할 수 없는 먹먹함이 밀려온다. 수많은 투사의 목숨과 맞바꾼 독립, 지금의 우리는 그들에게 참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러니 반드시 기억하며 살아가자. 현재 하얼빈 역사는 공사 중이어서 조선민족역사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사진 제공 연합뉴스
비인도적 잔학 행위, 731부대 기념관
하얼빈 시내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20km, 일본이 인류 역사상 가장 극악무도한 악행을 자행한 역사의 현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세균전 부대(731부대)가 있던 곳으로, 일명 ‘마루타(통나무)’라 불리는 피실험자들을 잔인하게 희생한 인간 생체 실험의 현장이다.
2015년 8월에 완공한 전시관은 제법 번듯한 외형을 갖추고 있다. 흡사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건물은 중국 정부의 적극적 협조와 지원으로 건립했다고 한다. 그 세련됨이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번듯한 맹세로 다가와 그 안의 아픔을 들여다보러 가는 길에 작은 위로가 된다.
731부대의 보일러실. 사진 제공 연합뉴스
‘비인도적 잔학 행위’, 전시관 입구 커다란 벽면에는 단 하나의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각각 중국어, 영어, 일본어, 한국어, 그리고 러시아어로 새겨놓은 필체는 한 자, 한 자 피해국들의 분노를 담아 굵직하고 단단하다.
전시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기록들이 넘쳐난다. 탄저균·페스트·콜레라 등의 실험, 생체 해부, 생체 냉동, 생체 원심 분리, 가스 실험 등 어느 것도 그 고통의 무게를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피실험자들은 무기력했고, 일본군은 극악했다. 그러니 더더욱 ‘이시이 시로(石井四郞)’를 기억하자. 731부대의 창설자이자 지휘자, 흑백사진 속 지극히 평범한 그의 얼굴을 맹렬히 쏘아본다. 나도 모르게 차오르는 눈물을 훔친다.
패전 후 일본은 731부대의 생체 실험 사실을 영원히 묻기 위해 이시이히 시로에게 시설과 자료를 모두 없애버릴 것을 명령한다. 그 과정에서 남은 마루타 150명 또한 모두 사살하니, 인간의 잔혹함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731부대 죄증진열관. 사진 제공 연합뉴스
결국 731부대 피해자 중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다. 공식 기록만 3,000여 명, 비공식적으로는 수만 명에 육박한다. 피해자 대부분이 중국인이었고, 한국인과 러시아인 전쟁 포로가 있었다. 그들은 반제국주의, 항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이곳에 잡혀 왔다. 그 외 타국의 정보 요원과 민간인도 있었다. 이 모두가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이다. 하물며 종전 후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부대원들은 생체 실험의 연구 결과를 미군에 넘기는 조건으로 전범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니,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논리가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지도 모르겠다. 731부대의 만행은 이시이 시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진 국가 차원의 범죄 행위다. 외면할 수 없는 역사의 현장에서 울분을 삼킨다. 다시는 이러한 ‘반인도적 잔학 행위’가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니 역사를 공부하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으니까.
(왼쪽) 안중근의사상. 사진 제공 연합뉴스 / (오른쪽) 731부대 이시이 시로 준장. 사진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