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더 호평받는 한국 문학과 남은 숙제
한류 하면 영화나 드라마, K-Pop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사실 그 원천적 힘이 되고 있는 한류 문학의 저력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해외에서 점점 입지를 넓히고 있는 한국 문학은 그 자체로도 주목받을 만하지만, 관련 콘텐츠 산업의 원재료로서도 의미가 적지 않다.
글 정덕현 문화평론가
2016년 맨부커 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우)와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좌). 사진 제공 연합뉴스
한강 이후 재점화된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의 관심
2016년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가 영국의 맨부커상(Man Booker Prize)을 받았다. 이 상은 스웨덴의 노벨상(Nobel Prize), 프랑스의 공쿠르상(Prix Goncourt)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힌다. 매년 발표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혹여 우리 문인들의 이름이 오르지 않을까 갈증을 느껴온 우리에게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은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채식주의자>는 수상 이후 독일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체코어·헝가리어·터키어로도 번역됐으며, 한강 작가의 또 다른 장편소설인 <소년이 온다>는 노르웨이어로도 소개됐다.
한강 작가의 수상은 개인적 성취를 뛰어넘어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혜민 스님이 2012년에 발표해 베스트셀러가 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영문판으로 번역되어 화제가 되었다. 영어 제목으로 <The Things You Can See Only When You Slow Down>인 이 책은 출간된 지 3일 만에 영국의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미국에서는 출간 2주일 만에 3만 부가 팔렸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잭 콘필드(Jack Kornfield)는 출판 전문지<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에서 이 책이 “현명하게 사는 삶의 보상이 무엇인지를 아름답게 알려주는 책”이라고 호평했다. 혜민 스님의 이 책은 현재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 스페인, 독일, 브라질 등 전 세계 26개국에 판권이 수출됐다.한류 문학에서 역시 중요한 건 번역이다. 한강의 소설이 맨부커상을 받게 된 데는 그의 작품을 좋은 문장으로 번역한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Deborah Smith)의 공도 적지 않다. 한강의 작품을 통해 한국 문학의 번역 작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이후 한유주, 은희경, 김영하 같은 국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속속 번역되었다. 영화로도 제작된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일본어로 번역되어 호평받았으며, 제4회 일본번역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을 번역한 요시카와 나기(吉川凪)는 현재 박경리의 <토지>를 완역하는 작업에도 참여 중이라고 한다.
영국 독자를 상대로 열린 <채식주의자>저자 간담회. 사진 제공 연합뉴스
장르 소설에 쏟아지는 관심이 특히 주목되는 건
이처럼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건 장르 소설에 대한 관심이다. 우리에게는 <7년의 밤>,<종의 기원> 등으로 문학적 장르 소설로 주목을 받은 정유정 작가에 대한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의 서평은 한국 독자들까지 놀라게 한 바 있다. 그는 일본 <요미우리신문> 서평에 “한국 문학계 흐름을 뒤엎을 장르 소설의 커다란 물결이 (일본에) 일고 있다”라며 “이 물결의 중심에 젊은 여성 작가 정유정이 있다. 그는 ‘한국의 스티븐 킹’이라고 불린다”라고 극찬했다. 국내에도 많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는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소개하며, 정 작가에 대해 “장르 소설계에서 여성 작가들이 활약함으로써 시장을 넓히고 작품 세계를 풍부하게 해온 것과 겹치는 모습”이라고 평했다.
정유정 작가식의 장르 문학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의미 있는 건, 이들 작품의 OSMU(One Source Multi-Use)가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이나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처럼 이미 영화화된 작품은 그래서 소설과 함께 해외에서도 한류의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장르 문학은 세계 공통의 장르적 문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우리 식의 정서와 결합하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공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미야베 미유키는 물론이고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 같은 일본 작가나 기욤 뮈소(Guillaume Musso) 같은 프랑스 소설가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건 바로 그 장르 소설이 지닌 국적을 뛰어넘는 공감대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국내의 장르 소설(특히 영화화될 정도로 스토리성이 분명하다면 더더욱) 또한 같은 공감대 속에서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해리포터> 시리즈와 어린 독자들. 사진 제공 연합뉴스
문화 원형의 관점에서 봐야 할 문학 한류의 길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 시리즈는 각각 영국 소설가 J. R. R. 톨킨(J. R. R. Tolkien)과 J. K. 롤링(J. K. Rolling)이 쓴 판타지 소설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신화가 소재로 활용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들 작품은 이런 여러 나라의 신화 소재를 영국의 콘텐츠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지금의 세계적 콘텐츠에는 국적을 넘나드는 다양한 소재를 끌어와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이 들어 있다. 이것을 스토리텔링 업계에서는 ‘문화 원형’이라고 부른다. 그 나라가 얼마나 많은 문화 원형을 발굴하고(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도) 보유하고 있느냐는 향후 콘텐츠 산업에서 중요한 관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 원형을 발굴하고 활용하는 데 문학만큼 중요한 장르도 없다. 하지만 국내 사정을 보면 문학 시장은 몇몇 베스트셀러 작가를 빼놓고는 전반적으로 침체기를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베스트셀러 작가들도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호평받는 경향이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웹 소설이나 웹툰 같은 새로운 콘텐츠가 치고 들어오고 있어 문학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 보인다. 이렇게 된 건 그간 국내 출판계를 이끌어온 이른바 문단 문학이 너무 순수 문학 중심으로 흐르다 보니 생겨난 경향이다. 그래서 국내 독자도 해외의 장르 문학 작가를 찾아보게 된 것. 심지어 장르 문학을 다소 낮게 보는 시선은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화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유정 작가나 <시스터>로 일본에서 주목받은 이두온 작가 같은 장르 소설 작가들이 늘고 있다는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해외에서 한국 문학 작가들은 충분히 인정받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시도가 필요하고, 그런 작가군이 순수 문학과 장르 문학을 나누지 않고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풍토가 절실하다. 해외시장도 국내 독자들도 어느 정도는 준비되어 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아우르는 문학작품이 더 많이 발굴되어 국내 출판계에 활력을 주고, 그것이 드라마나 영화 같은 다양한 영역의 원자재 역할을 해준다면, 그 영향력은 자연스레 해외로 이어져 문학 한류 또한 부흥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