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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VOL.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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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사 속 그날

바닷길 향한 마애불,
상인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다

충청남도 내포에 있는 가야산은 일찍이 백제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인도를 비롯해 중국 그리고 일본의 불교 및 문화 교류를 위한 해상 교역로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특히 백제 마애불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서산 마애삼존불’(국보 제84호)이 가야산에 있어 마애불과 교역의 연관을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애불은 무엇이며, 어떤 배경으로 조성됐는지 살펴보자.

  김현경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염원을 담다

불상을 조성하는 것은 공덕을 쌓는 일로 고대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불상의 수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전국 곳곳에 안치돼 있다. 마애불(磨崖佛)은 암벽에 새긴 불상으로, 한반도에서는 약 7세기 전후에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서산 마애삼존불과 태안 마애삼존불이 있는데, 서산 마애불은 가야산에, 태안 마애불은 백화산에 자리한다. 서산과 태안은 백제 웅진 시기의 주요 거점이며 해상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이다. 특히 백화산 정상은 서해안의 수많은 섬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요지로, 물자를 교류하고 안전하게 처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서해안의 많은 섬과 암초는 해상교역에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하기도 했는데, 어지러운 바닷길은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그 결과 서해안에서 수많은 무역선이 침몰해 지금까지 발굴되고 있으니 말이다. 발굴된 배들은 당시 해상 교류가 얼마나 성행했는지 증명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6세기 중반경 중국 북제 양식 불상과의 영향 관계를 짐작케 하는 태안 마애불과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서산 마애불은 해상교역의 요충지에 자리해 찾아오는 이들의 뱃길이 평안하기를 염원하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 만큼 많은 상인이 부푼 꿈을 안고 교역에 참여함과 동시에 무사히 물자가 오고갈 수 있기를 빌었던 것이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   품목: 국보 제84호 / 시대: 백제 / 소재지: 충남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로 65-13  사진 제공 문화재청

 

 

해양 강국, 백제

그동안 백제는 선진적 문화국가, 일본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진 국가로 평가돼왔다. 특히 중국과 지리적으로 밀접해 해로를 통해 연결돼 있었다. 이 같은 지리적 이점은 백제 문화가 정립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중국의 선진 문물이 다른 국가에 비해 일찍 유입됐다. 또 내륙 수로가 있어 공주 혹은 부여까지 해로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지리적 이점뿐 아니라 백제의 선박 기술 역시 해양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전의 선박은 통나무를 가공해 사용하는 통나무배가 주를 이뤘으나, 점차 여러 가지 조립을 시도하면서 구조선의 단계에 이른다. 백제 시대에는 판목을 조립해 선박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했다. 또 노뿐 아니라 돛을 장착해 바람을 이용하는 기술 역시 백제 시대에 등장한 기술이다. 이런 선박의 기술은 활발한 문물 교류에 기여했고, 백제를 오가는 사람들은 가야산의 마애불을 바라보며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염원했다. 이에 국보 제84호 서산 마애삼존불과 같은 걸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泰安 東門里 磨崖三尊佛立像)    품목: 국보 제307호 / 시대: 삼국시대 / 소재지: 충남 태안군 원이로 78-132  사진 제공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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