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지난 3월부터 법무법인 세종에서 대표변호사를 재임(再任)하고 있는 김두식 변호사는 공동 창립자로 출발해 법무법인 세종을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대형 로펌으로 키워온 이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일군 삶의 텃밭에서 빛나는 또 다른 수확물은 국내에서 통상법을 전공한 선구적 변호사로서 후배들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닦은 것이다. 국제사회가 통상을 법으로 가다듬어가는 WTO 태동기부터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치열한 법정과 협상장, 그리고 후배를 양성하는 학교와 로펌에서 ‘통상’이라는 외로운 싸움을 벌여온 그를 만나 통상 전문가 육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통상 전문가를 키우는 것은
오늘과 내일의 우리를 지키는 일
Q) WTO 일본산 수산물 분쟁 이후로 통상이 국민적 관심사가 됐는데, 어떻게 보나요?
A) 사실 통상은 국민이 체감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직접적인 분쟁 대상이 되는 정부나 기업과 달리 국민은 한 발짝 뒤에서 통상의 영향력을 느끼기 때문이죠. 이번 사건으로 국민이 통상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민간의 유능한 인재에게 사명감을 갖고 국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시스템이 왜 필요한지 이 사건이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법무법인 세종에서 동고동락했던 정하늘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분쟁대응과장의 활약이 반갑기도 하고요. 하지만 법정이나 협상장에서 언제나 승리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순 없어요.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패할 때가 있는데, 그렇다고 우리 실력이 갑자기 떨어진 건 아니거든요. 결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조금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볼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우리가 통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A) 보호무역주의의 파고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 크고 위협적이에요. 미국 등이 우리나라를 중국의 우회 수출로라고 인식하거나, 일본이 교묘한 방식으로 전방위적인 무역 보복 조치를 해온다고 할 때 중국의 사드 보복 이상으로 타격을 입을 겁니다. 우리 산업과 먹거리를 지키기 위해선 우리보다 통상 경쟁력이 큰 국가와의 마찰이 잦아질 것에 대비해 통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물론 민·관·학이 협력하는 시스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생태계를 갖춰야 합니다. 여기서 생태계란 민간 법률가가 공익적 필요에 따라 정부 공무원으로도 일할 수 있고, 공직을 수행하다 후학을 양성하기도 하는 등 통상 관련 여러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을 말하죠. 통상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고 실전에 투입할 훌륭한 실무자로 키워내는 것은 물론이고요.
2007년 수상한 대한민국 산업포장.
Q) 이번 협상 결과로 통상 분야의 민·관·학 협력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분도 많아졌습니다.
A) 로펌이 무역과 통상 분쟁의 실전에서 상대국과 법리를 두고 다툴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훈련하고 키우는 곳이라면, 정부 부처는 공익적이고 정무적인 판단에 따라 실제 정책과 대응을 수행하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또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통상에 관심 있는 학생이 전보다 늘어난 게 확연히 느껴지는데, 교수진은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로펌과 정부, 학교가 유기적으로 협력해 통상 인구 전체를 키우고, 기본적인 연구를 함께 하는 등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는 장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며, 법무법인 세종뿐 아니라 다른 로펌에서도 통상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기대합니다.
사명감을 갖고 더 디테일하게,
이 분야의 ‘사관학교’ 되겠다
Q) 통상 협상이나 WTO 분쟁 등에서 우리 산업을 지켜왔는데, 어떤 자세로 임했나요?
A) 통상 분야 사건에서는 주로 정부가 고객이 되거나 중소기업의 구제를 맡기도 하므로 수익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넉넉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굳은 신념과 사명감으로 서너 배 이상 뛰어야 우리나라와 기업을 위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니, 어지간한 마음가짐이 아니고서는 통상을 전문으로 하겠다고 나서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2003년 WTO 조선 산업 관련 보조금 분쟁 사례 때는 국내 조선 산업에 큰 피해가 예상됐고, 최근 일본과의 WTO 공기압 밸브 반덤핑 분쟁에는 자동차, 기계, 전자 분야 중소기업의 생존이 달려 있었습니다. 이런 분쟁에서 우리가 패소할 경우 입을 타격을 상상하거나 영세 업체의 사활이 걸렸음을 상기하면 절대 져서는 안 된다는 결의와 사명감이 생기죠. 또 그 피해가 국가 경제에도 파급을 미치니 국익이라는 더 넓은 관점에서 생각하게 됩니다.
Q) 통상 분야에 관심을 갖는 후배들에게 강조하거나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A) 제가 유학을 떠난 시기는 GATT 체제가 국제법적 면모를 갖춰가며 국제통상법에 대한 인식이 생기는 WTO 태동기였습니다. 학업 계획서에 세계적 통상법의 흐름을 연구해보겠다고 당차게 적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죠. 그런데 초기에는 통상 관련 일이 많지 않았고, 변호사 사이에서 통상만 전문으로 하면 힘들다는 인식도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세계를 무대로 국가를 위해 공익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변호사들이 있어 통상 전문 인력이 점차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분쟁에서 승소하려면 통상법 조문이나 법리를 잘 알아야 할 것 같지만, 이에 대한 이해는 기본 소양이라고 봐야 합니다.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잘 숙지하며, 아주 소소한 디테일을 챙기고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하죠. 다른 분야의 소송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통상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는 특히 해당 분야의 일에 흥미를 느끼고, 국익을 위한 사명감을 갖고, 디테일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 40여 년의 삶을 돌이켜보면 개인적으로 이루어야 할 부분에선 아쉬운 점이 없으나, 더 많은 후배를 양성하지 못한 점에서는 대학교수 못지않은 책임감을 갖고 있어요. 앞으로 통상 분야의 실무에서 활약할 주역을 키우는 사관학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인재를 대폭 확충하고 그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갈 계획입니다. 법률 전문가는 국가 경쟁력의 큰 축이며 집중해서 육성해야 할 인프라입니다. <통상> 독자 여러분도 이번 WTO 수산물 분쟁과 같은 사건을 계기로 뜻있는 이들이 오래 일하며 ‘통상’의 전문가층이 두꺼워질 때 국가 경쟁력이 향상되고, 이는 우리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