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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VOL.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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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조명

WTO 일본 수산물 분쟁 이해하는 법

2019. 04. 11. WTO 상소기구 최종 판정이 발표된 일본산 수산물 및 식품 수입 제한 분쟁에서 우리나라는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일본은 당혹감에 가득 차서 ‘불만’ ‘유감’ 등의 단어를 쏟아놓기에 급급했고, 우리는 기대를 뛰어넘는 승리에 감격하는 모습이었다. 이날은 우연히도 일제강점기하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설립한 지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날이기에 승리가 더욱 뜻깊은 면도 있었다.

  정해관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협력관

 

WTO 일본산 수입 수산물 분쟁 상소에서 승소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정부. 사진 제공 연합뉴스

 

 


분쟁의 주요 경과

2011. 03. 14.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우리 정부는 일본산 식품에 대한 수입 규제 조치 실시(수입 시 방사능 검사, 일부 품목 수입 금지)

2013. 09. 09.
도쿄전력 원전 오염수 유출 발표(2013. 08. 08.) 후 우리 정부는 임시 특별 조치* 시행
*① 후쿠시마 주변 8개 현의 모든 수산물 수입 금지
  ② 일본산 식품에서 세슘 미량 검출 시 추가 17개 핵종 검사증명서 요구
  ③ 국내외 식품에 대한 세슘 기준 강화(370→100Bq/kg)

2015. 05. 21.
일본 정부, 우리 측 조치 중 일부*에 대해 WTO 제소
*① 8개 현의 28종 수산물 수입 금지
  ② 일본산 식품에서 세슘 미량 검출 시 추가 17개 핵종 검사증명서 요구

2018. 02. 22.
WTO 패널(1심), 판정 보고서 全 회원국 회람 및 대외 공개
* 일본 측 제기 4개 쟁점 중 불합치 3건(차별성·무역 제한성·투명성), 합치 1건(검사 절차)

2018. 04. 09.
우리 정부, 패널 판정에 대해 WTO 상소 제기

2019. 04. 11.
WTO 상소기구(최종심), 판정 보고서 全 회원국 회람 및 대외 공개
* 일본 측 제기 4개 쟁점 중 일부 절차적 쟁점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쟁점에서 1심 패널 판정 파기




밥상 안전을 건 전쟁에서 “와! 승리했다!”

일본과의 WTO(세계무역기구) 수산물 분쟁 얘기는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일본에서 대규모 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해 방사능 물질이 바다와 대기 중에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2013년에는 도쿄전력에서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에 유출됐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인접국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에서 처리하는 수산물을 전면 수입 금지하고, 다른 일본산 식품도 수입 시 미량의 방사능원소(세슘)가 발견될 경우 추가 핵종 검사 17종을 요구함으로써 미량의 방사능이라도 함유된 식품은 수입하지 않을 것임을 전달했다.
일본은 반발했다. 자연 상태에도 방사능이 있고 자기들이 후쿠시마 바닷물이 아니라 그곳의 수산물을 수출하는 것이니, 이 수산물에서 방사능이 소량 검출되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우리는 이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일본은 원전 사고로 방사능에 오염돼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므로 수입식품에 대한 검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일본이 우리나라를 WTO에 제소해 양국 간에 약 3년에 걸친 1심 패널심이 진행됐다. 결과는 우리나라의 철저한 패소였다.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객관적 상황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1995년 WTO가 출범한 이래 주요 식품위생검역 분쟁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피소국이 승리한 전례가 없었고, 더구나 1심에서 지고 2심에서 이긴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국민의 식품 안전 문제는 상황이 어떠하든 소홀히 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일. 전력이 불리해 대다수가 진다고 말하지만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싸움에 나가는 장수의 마음이었다. 2심이자 최종심인 상소로 가서 패널의 일방적 판정을 바꾸어보기로 했다. WTO 분쟁에서는 1심 패널이 한쪽으로 치우친 일방적 판정을 하는 경우, 판정 과정에서 무리한 논리가 개입돼 상소기구에서 오류로 지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WTO 규정상 상소심은 사실 관계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법률 사안만 다루게 돼 있다. 그래서 우리는 패널이 우리에게 불리한 판정을 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법적 기준의 문제점을 찾아내 집중 공략했다. 패널은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일본산 ‘식품’의 방사능 수치만 중시했다. 우리는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환경이 여전히 정상적이지 않으며, 이 상태에서는 제품 조사만으로 불충분하고, 오염된 환경의 잠재적 위험성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상소기구는 우리 손을 들어줬다.
아래에서는 1심 패널 판결의 주요 내용과 상소심에서 이를 번복하고 우리 측이 승소하게 된 과정과 시사점을 집중 조명해보기로 한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환영하는 시민단체. 사진 제공 연합뉴스

 

 

1심 패널 판정의 주요 내용

WTO 분쟁은 제소로부터 시작된다. 제소는 제소국이 양자 협의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피소국에 전달하고 이후 양자 간에 60일간 협의가 진행된다. 본격적인 재판 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대화로 합의할 수 있다면 굳이 소모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해결하고자 하는 취지다. 2015년 5월 21일, 일본은 우리나라를 WTO에 제소했고 양국이 협의했으나 합의에 이르기에는 양쪽의 입장 차가 컸다.
결국 3년이 소요된 패널 심리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WTO 분쟁에서는 재판관(패널위원)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사건마다 양국 간 합의로 재판관 3인을 선정하며, 양국이 합의하지 못하면 WTO 사무총장이 임명한다. 이번 분쟁에서는 양국이 재판관 임명에 대해 논의하기는 했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해 WTO 사무총장이 임명했다. 이렇게 선임된 재판부의 의장은 윌리암 엘레르스(Mr. William Ehlers, 우루과이), 위원은 에제딘 부트리프(Mr. Ezzeddine Boutrif, 튀니지/프랑스), 민 나잉 오(Mr. Minn Naing Oo, 싱가포르)였다.
재판 과정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은 각각 2번의 서면 입장서 제출, 2번의 구두 진술 회의 참석, 2~3차례의 질의서 답변 등을 통해 자국의 입장을 제시했다. 아래에서 양국이 주장하고 패널이 심리한 핵심 사항을 언급한다.

가. 일본산 수산물 등 식품에 대한 우리나라의 수입 안전 조치(2013년 9월 기준)
우리나라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및 원전 오염수 유출 이후 두 가지 중요한 조치를 했다. 동일본 8개 현(후쿠시마 포함) 수산물 전면 수입 금지와 일본산 모든 식품에 대해 적용되는 ‘추가 핵종 검사’ 제도다. 수산물 수입 금지는 쉽게 이해되지만, 추가 핵종 검사는 일반인에게 익숙지 않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이하 CODEX)에 따르면 식품으로서의 적합성을 판단하기 위해 검사해야 하는 방사능원소는 20개 종류가 있다. 그러나 수입식품에 대해 이를 모두 검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기간이 10주 이상 소요되고 비용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세슘·요오드(이하 세슘) 검사만 실시하는 것이다. 이 검사에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 1시간 내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비용이 저렴하며, 자연 상태에서는 식품에 세슘과 다른 방사능원소가 일정한 비율로 존재하므로 세슘이 일정 수치 이하인 것만 검증하면 다른 방사능원소도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분쟁에서 일본도 우리나라가 세슘 검사만 하면 충분한 것을 추가 핵종 검사까지 요구해서 수출에 큰 애로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방사능 검사 시 세슘 검사만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미국·유럽 국가 등 일본 이외의 국가에서 수입하는 식품에 대해서는 수입 전에 세슘 검사만 해서 일정치 이하(100Bq(베크렐)/kg)면 수입을 허용한다. 그러나 일본은 원전 사고로 세슘과 다른 방사능원소 간의 비율이 일정하다고 믿을 수 없으므로 추가 핵종 검사를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세슘 검사를 해서 100Bq/kg보다 200배 작은 0.5Bq/kg이라도 검출되면 17개 추가 핵종에 대한 검사를 요구한다. 이 검사는 시간과 비용이 꽤 소요되기 때문에 추가 핵종 검사가 요구되면 수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 일본에 대한 더 엄격한 조치의 정당성 여부 판정
WTO 패널 재판부는 우리가 일본산 수산물 및 식품에 대해서만 부과하는 더 엄격한 조치(예: 추가 핵종 검사 요구 등)가 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즉 미국,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 수입되는 식품과 일본산 식품의 방사능 위해성이 동일하거나 유사한데 이를 차별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은 원전 사고로 오염된 환경이기 때문에 차별적 조치가 정당화된다고 주장했으나, 일본은 후쿠시마의 오염된 환경이 아닌 수산물이나 식품을 수출하는 것이므로 수출품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패널은 일본 바닷물의 오염 정도가 낮으며, 일본 수출 식품의 방사능 수준도 다른 나라 제품에 비해 높지 않다는 점에서 일본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다. 일본에 대한 조치가 과도한 무역 제한적 조치인지 여부 판정
일본은 자국 수산물 및 식품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한 후 일정한 기준(세슘 100Bq/kg)보다 낮다는 것만 확인되면 추가 핵종 검사 등의 추가적 규제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 기준으로는 불충분하며, 최대한 사고가 없었던 상태에 근접하게 방사능 노출을 관리해야 하므로 현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즉 사고로 오염된 지역에 대해서는 세슘 100 Bq이 아닌 자연 방사능 수준에 근접한 기준(0.5Bq)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패널은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100Bq 기준만으로 충분한데 이보다 200배 적은 0.5Bq만 나와도 추가 핵종 검사를 요구해서 사실상 수입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무역 제한 조치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우리는 당연히 상소의 길을 택하게 된다.

이번 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들과 이낙연 국무총리의 기념 오찬. 사진 제공 이낙연 총리 SNS

 

 

상소기구 승소 전략 및 결과

WTO 규정을 고려할 때 상소심 전략은 분명했다. 1심 패널심에서는 법률 기준뿐 아니라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데 중점을 두지만, 상소기구는 법률심으로 1심에서 법률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했는지를 주로 본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산 식품의 위해성과 우리 조치의 정당성을 다시 주장하기보다 패널이 결정의 기초로 사용한 법적 기준을 공격해서 이를 무너뜨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가. 일본산 수입식품 차별 조치 여부 최종 판정
WTO 협정상의 법적 기준을 볼 때, 우리가 일본산 수입식품에 대해서만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는지는 방사능 위해성과 관련해 제3국과 일본 간의 상황이 동일하거나 유사한지에 달려 있다(SPS 협정 제2.3조). 즉 유사하면 차별하면 안 되고 유사하지 않으면 차별이 가능한 것이다. 상소기구는 이 유사 상황 여부를 결정할 때, 일본산 수입식품의 방사능 검사 결과뿐 아니라 다른 관련 조건(other relevant conditions)을 같이 검토하는 것이 법적 요구 사항이며, ‘일본 내 환경오염으로 인한 잠재적 위험’도 이러한 조건 중 일부라고 했다. 이에 따라 패널이 수입식품의 방사능 검사 결과만 고려하고 다른 환경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잘못됐다고 판정한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확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으나 생각할 수 있는 대표적인 근거를 소개한다. 패널은 일본에 원전 사고가 발생하기는 했어도 실제 수입식품을 검사해보면 방사능이 기준치 이하이며 세슘과 다른 방사능원소 간의 비율도 대부분 유지되고 있으므로 제3국산과 차별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우리로서는 ‘일본 내 환경오염의 잠재적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입증해야 했다. 약 2만 페이지 수준의 증거 자료를 재검토했다. 여러 근거를 찾았지만, 대표적인 것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대규모 스트론튬 유출로 세슘과 스트론튬(방사능원소의 일종)의 비율이 깨진 점이었다. 이는 양측 자료에서 모두 확인되므로 논쟁이 필요치 않은 공통 사항이었다. 우리는 이 깨진 비율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세슘 검사만으로는 다른 방사능원소 함유량에 대해 확신할 수 없으며, 이 점이 일본 환경의 잠재적 위험성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나타내고, 우리나라가 일본 수입식품에 대해서만 요구하는 추가 핵종 검사의 이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상소기구 위원들도 구술회의 당시 이에 대해 주의 깊게 들은 것으로 관찰됐다.

나. 조치의 과도한 무역 제한성 관련 상소 판정 내용
모든 주권국가는 자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보호 수준(Appropriate Level Of Protection, ALOP)’을 설정할 권한이 있다. 그래서 국제기구에서 제시하는 표준 기준은 있지만 각국은 이 기준을 조정해서 자체 기준을 마련하며 이는 국제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우리나라도 적정한 보호 수준으로 3개의 기준을 세웠다. 첫째는 정량적인 기준으로 CODEX에서 제시하는 국제표준인 1mSv(밀리시버트)/year다. 둘째는 정성적 기준으로 자연 상태에 최대한 근접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셋째도 정성적 기준으로 합리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ALARA)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패널은 우리나라가 제3국에 부과하는 100Bq/kg 기준의 세슘 검사만 해도 우리나라의 보호 수준을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패널은 정량적인 첫 번째 기준(1mSv/year)만을 사실상 고려했고, 2개의 정성적 기준은 첫 번째 기준에 부속된 것으로 간주해 무시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패널의 결정이 오류라고 제기했다. 즉 최근에 사고가 없었던 지역에서 가져오는 식품은 정성적 기준을 고려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최근 사고로 인해 오염이 발생한 일본에서 들여오는 식품은 정성적 기준도 같이 적용하는 것이 필수라는 것이다. 즉 사고가 발생한 지역에서 가져오는 식품에 대해, 사고가 없었을 상태에 근접한 최저 수준의 위험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더 엄격하고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며, 우리나라가 일본산 식품에 부과하는 조치가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상소기구는 결과적으로 우리 입장을 받아들였고, 패널이 우리나라의 적절한 보호 수준인 세 가지 기준 중 정성적 기준 두 가지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의 조치가 과도하게 무역 제한적이라고 판단한 점은 잘못되었다고 했다.

다. 상소심의 다른 판단들
위의 두 가지 점이 상소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다른 부분에서도 의미 있는 판단을 했다. 첫째는 SPS 협정 제5.7조로 우리나라의 일본 식품 관련 조치가 잠정 조치인지 여부다. 이 결정이 중요성을 갖는 것은, 잠정 조치는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임시로 취하게 되므로 일단 잠정 조치로 인정되면 그 조치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검토 기준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패널은 우리나라의 조치가 잠정 조치로서 인정될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우리에게 불리한 판정이었다. 상소기구는 일본이 우리의 조치가 잠정 조치인지를 가려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패널이 이를 판단한 것은 월권이며 법적으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기실, 패널 설치 시 일본의 잠정 조치 여부를 가려달라는 일본의 요청이 없었음에도 패널이 직권으로 이를 심사해서 우리에게 불리한 판정을 한 것이다. 이를 상소심에서 무효화한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승소 요인 중 하나다. 둘째로 상소기구는 패널 판정 중 일부를 인정해주었다. 즉 우리나라에서 일본 수산물 수입 금지와 추가 핵종 검사 조치를 하면서 이런 조치의 내용을 명확하게 공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우리가 일본의 방사능 누출 사고 및 오염수 방류 이후 서둘러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투명성이 부족했다. 예를 들어, 8개 현 수산물 전체의 수입 금지를 고지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수산물이 수입 금지에 해당하는지를 명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추가 핵종 검사가 요구되는 기준인 0.5Bq/kg도 당시에는 서류상으로 고지한 바가 없고 집행 과정에서 밝혀진 것이었다. 이는 우리가 이번 분쟁 결과로 이행해야 할 유일한 점이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향후 적절한 방식으로 구체적인 조치 내용을 공표할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산 수산물을 판매하는 수산시장의 모습도 한동안 보기 어려워진다. 사진 제공 연합뉴스

 

이번 분쟁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가.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막판에 극적으로 역전되는 경우에 주로 인용하는 말이다. 이번 분쟁의 결과도 이런 성격이 컸다. 올해 4월 초 상소심이 가까워오면서 일본 내에서는 승소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반면, 우리나라는 국내 언론을 중심으로 패소 우려가 기정사실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극적인 대반전이었다.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은 우리 국민의 일본산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와 관심을 익히 아는 분쟁대응단이 객관적으로 불리한 상황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당사자가 될 국제분쟁에서 객관적 상황이 불리하고 모두가 패소 가능성을 얘기할지라도 결과는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음을 가르쳐준 소중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이번 분쟁은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8개 관련 부처가 100여 차례가 넘는 회의를 거듭하며 분쟁대응을 수행했다. 1995년 WTO 출범 이래 우리나라의 당사자 분쟁이 제소 20건, 피소 18건이지만 이번 분쟁만큼 부처가 공조하며 공동으로 수행한 경우도 드물 것이다. 이렇게 대응하는 과정에서 담당자들이 때로는 공동 작업이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하며 오히려 부담만 된다고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협력을 통해 분쟁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끈끈한 팀워크가 생기고 서로의 생각을 보완해주며 우리의 전략도 점점 예리해져갔다고 생각한다. 모든 분쟁을 이렇게 수행할 필요는 없지만 이번 건은 우리에게 부처 간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해준 좋은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다. 민관 합동이 시대적 추세다
이번 분쟁에서는 원자력발전소, 방사성물질, 식품 안전, 인체 영향 등 상식을 뛰어넘는 전문 지식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국내외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헌신적인 과학자와 전문가분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이분들은 보수도 없이 국민과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도와주셨다. 이런 도움이 없었다면 승소 기회도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이번 분쟁의 성과는 민관 협력이 이뤄낸 성과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분쟁의 주역이 된 정부 담당자 중 일부는 민간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다가 국가를 위해 일정 기간 공직에 합류한 경우였다. 만약 민간에 적절한 통상법 전문 인력이 없거나 정부가 이렇게 인력을 채용하는 제도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앞으로 정부는 실력 있는 인력을 채용해 정부의 전문성과 분쟁 대응 능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며, 민간에서도 전문가들이 육성되도록 지속적인 지원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증명한 사례라고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의 무대가 된 스위스 제네바의 WTO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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