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
자유무역을 방해하는 조치?
GATT·WTO 체제하에서 먹거리 교역 역시 자유로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유무역 아래 그 어떤 상품이라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인데, 먹거리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직결되는 만큼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수입국은 외국산 먹거리에 대한 엄격한 위생 기준을 통해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동시에, 해당 조치가 수입을 의도적으로 위축시켜 국내 유사 산업을 지키려는 위장술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다.
글 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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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의 가치
자유무역을 통한 국가의 경제성장은 매우 중요하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 역시 중요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한마디로 이 두 가치는 양자택일할 수 없는 요소인 것이다.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둘은 동일 선상에서 지향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빛을 발하겠지만, GATT·WTO 체제에서는 양립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수입 시 위생 및 검역 기준을 엄격히 하면 무역의 자유로운 흐름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고, 반대로 무역의 자유화만 추구하다 보면 공공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 기준조차 보장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995년 WTO를 설립하기에 앞서 먼저 발효한 GATT는 후자에 무게중심을 두었고, 이는 제20조 일반적 예외 조항을 통해 명문화됐다.1 해당 조항에 따르면, 자유무역을 지향하되 인간, 동식물의 생명 및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보호무역적이라도 방해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먹거리 등을 자유롭게 수입하다가도 자국민, 또는 국내 동식물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만 있으면 언제든지 이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1948년 GATT 발효 이후 약 2년 단위로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무역협상을 통해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관세를 꾸준히 인하하자, 더 이상 관세를 통한 국내 산업 보호는 어려워졌다. 그러자 각국은 바로 위 조항을 활용해 위생 및 검역을 이유로 무역에 대한 부당한 제한을 남용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국내 동종 산업 보호를 도모했다. 인간과 동식물을 보호하자는 대의명분에 바탕을 둔 예외 조항이 비관세장벽의 독소 조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자유무역과 국민 안전 간 균형 찾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킨다는 이유로 위생 및 검역 기준이 높아져 수입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비관세장벽으로 오용되는 사례가 증가하자,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우루과이라운드(1986~1994) 협상에서 진행됐다. 이를 통해 자유무역과 국민 안전 수호 간에 합리적 균형을 모색한 것인데, 덕분에 1995년 동식물 위생 조치의 적용에 관한 협정, 즉 SPS 협정이 탄생했다.2
우선 동 협정은 ① 일국(一國)이 병해충, 질병 원인체, 오염 물질, 독소 등으로부터 자국민, 국내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취하는 모든 조치를 관할하에 둔다. 본 협정에 따라 해당 국가는 ② 특정 조치를 건강 및 안전 보호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시행하고, ③ 반드시 조치의 필요성을 충분히 뒷받침할 과학적 증거를 마련하도록 했다.3 위생 및 검역 기준 도입 시 충분한 과학적 원리를 근거하도록 해서 무역을 제한하려는 위장된 조치가 되지 않게 하려는 취지다. 이러한 맥락에서 WTO SPS 협정은 각 국가의 ④ 위생 및 검역 기준이 국제 기준, 지침 또는 권고에 기초하도록 했다.4
물론 특정 조치에 대한 국제 기준이 부재하거나, 그보다 높은 수준의 보호 조치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국민 인식과 안전에 대한 눈높이는 국제적인 그것과 늘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SPS 협정 아래 국가는 ⑤ 위생 및 검역 기준 도입 시 위험평가(Risk Assessment) 과정을 통해 객관적 지표를 확보하는 동시에, 무역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필요 이상의 무역 제한적 조치는 지양해야 한다. 그 외에도 SPS 협정은 ⑥ 동등성 조항을 통해 국가마다 상이한 동식물 위생 조치가 동등한 수준인 것으로 인식해 무역을 원활히 하도록 협조해야 하며, ⑦ 지역화 조항을 통해 한 국가 내에서도 병해충 안전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지리적 분리성을 인정해 일부 지역에서 위생 문제가 발생해도 다른 지역의 무역 활동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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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펙시트(Beef-exit): 유럽에서 미국 쇠고기 몰아내기
1996년 성장 촉진 호르몬을 사용해 키운 소를 수출하던 미국과 그 수입을 엄격히 규제하던 유럽 간에 SPS 조치에 대한 문제로 크게 한판 붙은 것이 대표적이다. 적은 사료로 빠른 성장을 촉진하도록 호르몬을 사용한 육우 비율이 높던 미국은 유럽에서 해당 호르몬이 유아의 성적 발육 등에 대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제동을 가하자 WTO에 제소했다.
당시 주요 쟁점 중 하나는 호르몬에 대한 국제 기준의 유무와 유럽의 조치가 이에 기초했는지 여부였다. 당시 미국이 사용해 문제가 된 6개의 호르몬 중 5개 호르몬에 대해 코덱스 기준이 존재했는데, 유럽의 조치는 이보다 높은 조건을 요구해 제3조 위반 논란이 일었다. 다만, 상소기구는 유럽의 조치는 충분히 국제 기준을 기초로 했고 필요에 의해 상향 적용한 것일 뿐 위반은 아니라고 보았다. 다음 문제는 제5조와 관련한 유럽의 위험 평가였다. 패널과 상소 기구 모두 유럽이 호르몬 쇠고기의 수입 금지를 위한 조치에서 위험 평가 관련 소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그 내용도 부재하거나 부실했다고 봤다. 또한 여러 종류의 호르몬을 각각 달리 취급한 것도 차별적 행위로 부각됐다. 수입 제한 조치의 부당성에 대한 증거를 철저히 제시한 미국에 비해, 반박 자료가 미흡했던 것도 유럽의 발목을 잡았다.
흥미로운 것은 판결 이후다. 유럽은 호르몬의 위해성에 대한 공포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며 판결을 불이행했고, 이에 미국 등 이해 당사국은 유럽에 대한 보복 조치를 시행했다. 자유무역과 국민 안전 간 ‘같이의 가치’ 찾기는 역시 쉬운 문제가 아닌 것이다.
1 무역 마찰 발생 시 분쟁해결제도로의 회부할 것을 의무화한 조항의 원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회원국은 대상협정상의 의무위반, 이익의 무효화 또는 침해, 또는 (중략) 장애의 시정을 추구하는 경우 이 (중략) 규칙 및 절차에 호소하고 또한 이를 준수한다.
2 GATT·WTO분쟁해결제도는 보통의 국제법 체계와는 달리 단심제가 아닌 이심제로 운영된다. 전신(前身)인 GATT체제(1948~1994)에서는 단심제로 운영했다.
3 현역 포함 1995년부터 현재까지 총 27명의 상소기구 위원이 배출됐는데, 남미(2), 북중미(5), 아시아(11), 아프리카(4), 오세아니아(2), 유럽(3) 등 출신이 다양하다.
4 산업통상자원부 <함께하는 FTA> 2017년 11월호 참고.
5 Thomas R. Graham (미국), Ujal Singh Bhatia (인도), Hong Zhao (중국)
6 WTO, WT/GC/W/752, WT/GC/W/753, 12-13 December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