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로 변한 시장의 판도는 침체된 농업을 살리는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여름을 대표하는 과일이자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인 포도는 그동안 외국산에 밀려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FTA를 활용해 포도를 수출하는 사례가 늘며 내수 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인을 사로잡은 품종으로 농촌에 희망을 만드는 김천 포도를 소개한다.
최근 포도 품종이 다양해지면서 포도를 먹는 풍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씨가 없고 껍질째 먹을 수 있는 포도가 등장하면서 과일을 통째로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먹기도 좋고 뒤처리할 걱정도 없으니 사람들의 선호도도 금세 바뀌었다.
문제는 국내 포도 농가다. 포도 소비 트렌드가 변하고 외국산 포도가 저렴하게 들어오면서 기존 국산 포도를 찾는 손길이 줄어든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농가의 피해로 돌아갔다. 침체된 내수 시장을 회복할 방법으로 국내 대표 포도 주산지인 김천에서는 현명한 대안을 내 놓았다. 바로 ‘수출’이다.
한국을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경북 김천은 국내 대표 포도 주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11%를 차지한다. 직지천의 맑은 물, 토양오염 걱정이 적은 사질 양토 등 고품질 포도 생산을 위한 환경이 충분히 갖춰져 있으며, 수확기에는 강우량이 적고 일교차가 심해 포도의 맛과 향 또한 뛰어나다. 당도가 높으며 품질이 좋은 김천 포도는 현재 4,500여 농가에서 재배하고 있다. 농지 면적만 2,400ha에 달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재배 단지로, 한 해 1,300여억 원의 소득을 올리는 효자 산업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런 김천 포도도 수입 과일의 등장에 한때 생산이 주춤하기도 했다.
위기는 곧 기회인 법. 김천시는 2004년 한·칠레 FTA 체결 이후 해외시장 판로를 끊임없이 모색해왔고, 2013년부터 본격적인 포도 수출 대열에 진입했다. 2013년 30톤 수출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베트남, 홍콩, 싱가포르 등 10개국에 360여 톤의 포도를 수출하며 해외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수출 품목은 주로 ‘거봉’과 ‘샤인머스켓’이다. 특히 청포도의 한 종류인 샤인머스켓은 1988년 일본 과수 시험장에서 육성한 포도로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국내 품종 생산 판매 신고를 하며 재배하기 시작했다. 당도가 높고 향이 강하며 껍질째 먹을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과일이다. 묘목 재배 후 2년이 지나면 수확할 수 있어 상품성도 높은 편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생산량이 점차 늘어나면서 국내 소비자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해외에서도 김천 샤인머스켓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샤인머스켓 140여 톤을 베트남, 홍콩, 싱가포르 등으로 수출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김천시는 올해 본격적인 포도 수출을 위해 2017년 12월 ‘김천포도 수출지원단’을 출범하고 180여 농가(100ha 규모)를 수출전문작목반으로 육성해 포도 재배에 관한 체계적 교육을 실시해나가고 있으며 수출국 다변화를 위해 중국, 캐나다 등 여러 나라와 협상 중이다.
내수 시장의 활기, 수출에서 답을 찾다
1981년부터 포도 농가를 운영해온 김천 ‘행복포도원’의 조우현 대표는 올해 샤인머스켓 수출을 앞두고 기대가 크다. 해외시장이라는 새로운 돌파구가 등장한 만큼 다시금 내수 시장에도 활기가 돌 것이라고 전망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 덕분에 올해 김천 지역 샤인머스켓 생산 면적이 작년보다 2배로 늘어났습니다. 내년이면 더 많아지겠지요. 생산량이 계속 늘어나면 그에 맞는 수요가 필요한데 국내시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김천시와 농협에서 적극적으로 수출을 지원하니 고품질의 포도를 재배해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겠죠. 수출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면 포도 가격도 안정을 찾을 것이고, 해외시장에서 맛을 보장받은 만큼 국내 소비자에게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38년 동안 포도를 재배하며 끊임없는 기술 개발로 2015년 포도 마이스터로 지정된 행복포도원 조우현 대표. 2, 3년 전부터 국내 포도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샤인머스켓을 재배했다. 재작년 출범한 김천포도 수출지원단에서는 수출과 유통을 중심으로 지역 농가에 현장교육을 실시한다. 조 대표는 이러한 지원이 포도 농가들에게 든든한 힘이 된다고 전했다.
“농업인들은 수출이나 유통 같은 분야에는 다소 약합니다. 그런데 시에서 지원단을 조직하고 유통 가능한 시설이나 기계 등을 지원하고, 수출 관련 교육까지 해주니 큰 도움이 되죠. 수출 규격품 생산, 유통 교육과 함께 선도 농가를 중심으로 한 현장 교육도 주기적으로 시행합니다. 생육 시기에 따라 일대일 맞춤형 현장 기술은 물론 주요 수출국의 검역과 위생 등 수입 규제 조치 교육도 이뤄져 수출에 대한 안목을 더욱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행복포도원을 비롯한 김천 포도 농가는 수확 전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포도나무와 과육의 상태를 확인한다. 날씨가 더워지지만 포도가 한 알 한 알 영글어갈 때마다 더 넓은 시장에 대한 확신이 차오른다. 올여름, 김천 포도의 가능성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