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먹방 중
음식을 먹는 방송, 이른바 먹방은 이제 전 세계가 사랑하는 콘텐츠가 됐다. 해외에서도 각광받는 이 콘텐츠는 ‘Eating Show’가 아닌 ‘Mukbang’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며 한식의 세계화를 견인하고 있다.
글. 정덕현 문화평론가
먹방, 어떻게 탄생했고 세계화됐나
흔히 2000년대 초반 새로운 동영상 플랫폼인 ‘아프리카TV’를 통해 음식을 먹는 방송, 즉 ‘먹방’이 시작됐다고 얘기하지만, 그것을 시초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미 훨씬 전부터 국내 방송사가 이른바 음식을 소개하고 먹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먹방의 세계화를 이룬 것은 지상파나 케이블 등의 주류 미디어가 아니라 유튜브 채널 같은 뉴미디어라는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먹방은 1인 미디어를 통해 뉴미디어에 등장했지만, 본격적으로 세계적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2010년 이후의 일이다. 2015년 구글에 ‘Mukbang’이라는 검색어가 급증했고, 2016년 10월 미국 CNN이 ‘Mukbang’을 ‘함께 식사하는 소셜 이팅(Social Eating)’으로 소개하면서 ‘먹방의 세계화’가 시작됐다.
이미 먹방은 국내 크리에이터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세계 1인 크리에이터들이 함께하는 하나의 글로벌 콘텐츠가 됐다. 한국의 먹방을 보며 열광하던 해외 크리에이터들이 먹방 콘텐츠 제작에 직접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미국의 디지털 문화 전문 매체인 <와이어드>는 “먹방이 주류 문화로 부상했다”라며 “먹방은 국경 없는 문화 유전자”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다양해지는 먹방, 한식의 세계화까지
구독자 320만 명을 보유하며 초기 먹방의 세계화를 이끈 ‘밴쯔’는 주로 많이 먹거나 특이한 음식을 먹는 먹방을 선보이곤 했다. 하지만 이미 세계화된 먹방은 프로그램의 다양화로 이어졌다. 입담을 강조하는 ‘권회훈’의 먹방을 비롯해, 마치 <6시 내 고향>이 먹방으로 재탄생한 것 같은 ‘떵개떵’의 시골 가족 밥상 먹방, 쿡방과 먹방이 결합된 ‘입짧은햇님’, 부산의 지역 음식 먹방을 보여주는 ‘나름’, 80대라는 세대적 포인트로 먹방을 보여주는 ‘영원씨’ 등이 대표적 사례다.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과 결합해 음식을 먹는 소리에 집중하게 해주는 먹방도 등장했는데, 이는 해외 먹방 크리에이터들이 한국 먹방이 지닌 중요한 차별점으로 꼽는 것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먹방의 세계화와 함께 한식의 세계화 또한 함께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먹방에는 피자나 햄버거 같은 글로벌 푸드, 스시나 타코 같은 세계 각국의 고유 음식이 등장한다. 하지만 ‘먹방의 종주국’답게 한국 음식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그 어느 나라 음식보다 뜨겁다. 이미 해외에서도 각광받고 있는 불고기, 잡채, 갈비, 김밥, 김치 등은 단골 소재가 되었고, 특히 라면이나 떡볶이 같은 매운 음식들에 대한 도전은 ‘먹방’이라는 특성상 국내 크리에이터는 물론이고 해외 크리에이터들의 핫 아이템이 되었다. 예를 들어 ‘불닭볶음면’처럼 한국인도 매워하는 음식은 먹방에서 자주 소개되면서 지난 3년 새에 수출액이 무려 6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팔렸다는 얘기.
김, 라면, 커피믹스, 만두 등 우리가 만든 식품이 해외에서 각광받는 데는 먹방의 힘이 적지 않다. 커피믹스는 이미 해외에서 한국의 커피로 받아들였고, 만두의 경우 얇은 만두피와 꽉 찬 만두 소로 차별화함으로써 중국 만두가 차지하고 있던 지분을 상당 부분 빼앗아오고 있다. ‘먹방’이라는 콘텐츠가 우리가 만든 식품을 세계에 전파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먹방 크리에이터로 유명한 밴쯔의 모습. 사진 제공 연합뉴스
한국 문화가 만들어낸 먹방, 글로벌 소통의 장으로
이제 해외 스타들이 국내에 방문했을 때도 ‘먹방’은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자리 잡았다. 일례로 유명 유튜버인 ‘영국남자’가 영화 <알리타>의 홍보차 내한한 로사 살라자르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과 함께한 한우 먹방은 14시간 만에 조회 수 100만을 돌파하며 소주와 한우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제 해외 유명 스타들이 김치를 찾는 건 익숙한 일이 되었다. 이는 한식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됐고, 우리가 만들어낸 먹방이라는 방송 트렌드가 거기에 일조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에서 이처럼 먹방이 하나의 방송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 건 1인 가구, 다이어트, 소확행 같은 라이프스타일이 결합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즉 1인 가구가 늘면서 혼자 식사를 하는 인구가 급증했고, 이들이 먹방을 보며 식사를 하는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난 것이다. 이루기 어려운 큰 목표보다 작아도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 라이프스타일에 걸맞게 ‘음식을 먹는 행복’으로서의 먹방이 주목받기도 했다.
이처럼 독특한 한국적 정서와 배경으로 탄생한 먹방은 먹는 것이 ‘인간의 기본 욕구’라는 점에서 전 세계인이 동참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글로벌 콘텐츠가 될 수 있었다. 또한 글로벌 콘텐츠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언어적 차원을 뛰어넘는 영상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주는 요소로서 ‘먹방’이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이 지점은 먹방이 국내의 한국 음식뿐 아니라 전 세계 음식을 소개하는 글로벌 소통의 장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의 유명 먹방 크리에이터 중에는 이제 해외 팬들의 요구에 따라 그들 나라의 음식을 먹어보는 방송도 점차 늘고 있다.
먹방이 우리 고유의 음식만이 아닌 전 세계 음식을 소개하기 시작한 건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즉 해외의 음식이라도 우리 스타일로 해석해 선보인다면 이것이 한식의 또 다른 나아갈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먹방의 진화는 점차 퓨전화하는 한국 식품의 세계화 전략에서 중요한 한 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