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상반기 가장 큰 통상 이슈는 단연 미·중 간 통상 갈등이다. 세계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은 당사국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 직간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3,5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대중 무역수지 적자를 이유로 시작된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는 ‘중국제조 2025’를 내세우며 기술굴기를 주창하던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패권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글 강인수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한국국제통상학회장
무역적자 해소하려는 미국의 카드, 제232조
트럼프의 중국에 대한 압박은 이미 선거 과정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두드러지게 부각된 것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무역 제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근거는 국가 안보 문제가 크게 부각됐던 냉전 시기에 제정한 미국의 ‘1962년 무역확장법 제232조’다. 이 법은 수입품으로 인해 국가 안보가 저해될 위협이 있는지를 상무부가 판단하고, 대통령이 수입제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규정하고 있다. 상무부는 정부 부처·기관의 장 또는 이해 당사자의 요청이나 직권으로 미국의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수입에 대해 조사 개시를 할 수 있고, 조사 개시 후 270일 이내에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상무부 조사 결과가 미국의 국가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결정된 경우, 대통령은 보고서를 받은 90일 이내 ① 보고서에 동의하는지 결정하고, ② 동의하는 경우 대상 수입을 조정하기 위해 취할 조치의 성격과 기간을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은 부정적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기간이나 금액의 제한 없이 관세 또는 쿼터를 부과할 수 있는데, 특정한 상품 그룹, 국가를 제외하거나 면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법안에 근거한 조사는 2001년을 마지막으로 17년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2018년 2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각각 조사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이 ‘국가 안보 조항’을 합법적인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활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안보 이익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한국의 경우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와 함께 철강 조치에서 면제됐지만, 그 대신 철강 쿼터를 수용했다. 철강에 이어 미 상무부는 2018년 5월 SUV, 밴, 경량 트럭 및 자동차 부품의 수입이 국가 안보를 저해할 위협이 되는지에 대해 제232조 조사를 개시했고, 올해 2월 조사 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했다. 동 보고서는 수입산 자동차와 부품 등이 미국 자동차 산업을 위협해 결과적으로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5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 결정을 180일간 연기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향후 협상 대상은 ‘EU, 일본 그리고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적당하다고 판단하는 다른 나라’로 표현돼 한국이 명시적으로 제외되지는 않았다. 개정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최근 서명한 멕시코·캐나다와의 무역협정(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 이하 USMCA)이 국가 안보 위협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자동차의 경우 한국이 직접적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가 안보 조항’이 반도체를 포함한 우리의 주력 산업과 첨단산업 분야로 확대될 개연성은 상당히 크다. 작년 개정된 한·미 FTA 23조에 ‘자국의 필수적 안보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조치’에는 FTA의 모든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우려가 단순한 기우에 그칠 것 같지는 않다. 이 조항이 미국보다는 우리에게 더 유용한 조항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완전한 오판이었다는 것이 최근 미국의 조치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마땅히 대응할 카드가 없다는 데에 있다. 미국 내에서는 제232조의 조사와 관련해 상무부와 국방부가 광범위한 재량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사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미국 의회 내에서도 제232조가 무역 관련 국가 안보 문제를 다루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반대로 잠재적 무역 제한 조치이기 때문에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정치적으로 상당히 재미를 본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가 안보 조항’의 적극적 활용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 신만리장성, 미국 우선주의 막을까?
현재 진행 중인 화웨이 제재 건도 제232조를 직접 적용한 것은 아니지만 핵심은 국가 안보다. 화웨이는 지난해 1,051억 달러 매출에 18만 명을 고용한 중국의 대표 기업이다. 화웨이는 ‘신만리장성’으로 불리는 방화벽(Great Firewall of China)을 구축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중국판 마이너리티 리포트라 칭하는 얼굴 감시 시스템 ‘톈왕(天網)’ 구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화웨이는 일개 통신 장비 회사가 아니라 통치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일을 하는 사실상의 국영 기관인 셈이다. 화웨이가 판매한 통신 장비에서 해킹용 칩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화웨이 장비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된다고 주장하는 트럼프는 현재 미국 기업은 물론 유럽, 일본, 한국의 주요 기업에게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대로 러시아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우리에게도 위협성 경고를 서슴지 않고 있다. 미·중 간 패권경쟁이 단기간에 마무리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내년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이 변수가 될 수도 있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대중 압박이 정치적으로도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점차 강화하는 신보호주의, 우리의 선택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신보호주의 강화는 지속될 것이 확실하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시작으로 WTO의 분쟁 패널 상소기구의 후임 지명 거부를 통한 무력화 시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한·미 FTA 개정 협상 등이 이미 이루어졌다. 특히 NAFTA가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이라는 새 명칭으로 재탄생한 점은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타결된 USMCA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이 구체적 협정으로 드러난 첫 번째 사례로, 향후 미국이 추진할 통상협정과 국제 통상질서 재편의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USMCA는 미국의 양자 FTA를 위한 새로운 틀(template)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지식재산권 보호, 금융 서비스, 노동 환경은 물론 디지털 무역 등 자신의 강점 분야에서의 글로벌 표준 선점 전략인 동시에 대중국 봉쇄 전략이기도 하다. USMCA는 노골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환율정책과 비시장경제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결국 국가 안보를 이유로 미국의 신보호주의에 한국이 어떻게 능동적으로 대처하느냐가 관건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에 대해 안보 문제에 관한 한 적극적으로 우려를 불식시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정부가 외국의 정책 담당자들과 접촉하며 이들을 설득하는 아웃리치 확대 전략이 그러한 노력 중 하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글로벌 경쟁력 강화만이 지금과 같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임을 명심하고, 이에 부합하는 대내적 여건 정비와 글로벌 호환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과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디지털 통상 등 새로운 논의 주도해야
이와 관련해 디지털 통상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18년 5월 EU은 GDPR을 발효했다. 개인 정보의 국경 간 이전 문제를 규율하기 위해 EU GDPR은 데이터의 국외 이전을 허용하는 근거로 적정성 결정(Adequacy Decision)을 제시했는데, 한국은 적정성 평가(Adequacy Test)에서 탈락했다. 반면에 중국은 올해 초에 컴퓨팅 설비의 로컬화 조치를 발효했다. 이러한 주요국 데이터 규제의 변화가 가져올 파급효과는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수준 높은 전자상거래 챕터를 포함한 무역협정(CPTPP, USMCA)이 등장하고, 국경 간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 데이터 지역화 조치 금지 등을 의무 규정화하고 있는 추세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5월 WTO에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고,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은 자국의 입장을 반영한 제안서를 제출한 상태다. 미국은 이 문제에 관한 한 가장 강력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데이터 규제 혁신에서 통상적 관점을 반영해 우리나라가 전자상거래 관련 협상 및 협력 논의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디지털 통상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한다.
미국은 빠졌지만 일본을 중심으로 타결된 점진적·포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복귀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USMCA에서 드러났듯 미국이 CPTPP를 사실상 양자화할 가능성이 크다. CPTPP는 자유화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기존 FTA에서 다루지 않던 개발, 중소기업, 공기업, 규제의 일관성, 투명성 및 반부패 등이 포함돼 향후 양자 및 다자 협상에서 새로운 기준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 누적 원산지 기준 적용에 따라 역내 글로벌 가치사슬이 새롭게 형성될 수 있는 만큼 CPTPP 가입 여부를 포함해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USMCA에 새롭게 도입된 규범이 향후 미국이 추진할 무역 협상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 통상질서의 재편에 대비해 미국이 추구하는 신무역 규범과 국내 법·제도와의 조화 또는 충돌 가능성, 경제적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