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의 가치보다 지식의 가치를 존중한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WIPO)라는 국제기구가 있다. 19세기 말 특허권과 상표권과 관련한 파리협약과 저작권에 관한 베른협약은 그들의 작품이다. 실연자 등의 보호에 관한 로마협약도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조약별로 따로 규율되던 지식재산권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함께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 발효로 그 통일의 대업을 이루게 된다.
자료 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TRIPs,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오늘날 지식재산권의 값어치는 무궁무진하다. ‘특허’의 발명이 핵심적 원천기술이 되기도 하고, 하나의 ‘상표’에서 다양한 부가가치가 파생되기 때문이다.
1995년 WTO가 설립되면서 발효된 TRIPs 협정 역시 우루과이라운드(1986~1994)의 성과다.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을 보호함으로써 공정한 무역질서를 만들고 이를 통해 자유무역을 지향한다는 것이 핵심 취지다. WTO 협정 구조상 TRIPs 협정은 상품(부속서1A), 서비스(부속서1B)에 이어 부속서1C의 형태로 발효되었으며, 총 7개의 부와 73개의 조항으로 구성된다. 특히 제2부는 저작권, 상표, 지리적 표시, 디자인, 특허 등 각종 지식재산권에 대한 규범을 갈래별로 명문화한다.
우선 주목할 것은 각 지식재산권의 보호 기간이다. ㉠ 저작권(copyrights)은 문학·예술·학술 창작물에 대한 것으로, 저작자의 생존 기간과 사후 70년을 기준으로 보호한다. 따라서 세계적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가 1600년 즈음 완성한 <햄릿(Hamlet)>은 저작권 보호 의무가 사라진 예로, 누구나 이를 재출판하거나 각색할 수 있다. ㉡ 상표(trademarks)는 사업자가 자신의 상품을 나타내고 차별화하기 위한 기호·문자·도형을 말하는데, 나이키(Nike)의 스우시(Swoosh)를 떠올리면 쉽다. 그 보호 기간은 7년 이상이며, 무한정 갱신이 가능하다. 공익적인 목적으로 보호 기간을 제한하는 저작권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또한 ㉢ 디자인(industrial designs)도 보호 기간이 최소 10년으로, 무한정 갱신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상표와 차이가 있다. ㉣ 특허(patents)의 경우 기술 분야에서 신규 혹은 독창적·산업적 발명에 해당하는 제품을 보호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가 의약품이다. 보호 기간은 특허 출원일로부터 최소 20년이다. ㉤ 지리적 표시(geographical indications)는 WTO 체제에서 등장한 새로운 개념의 지식재산권으로 볼 수 있는데, 상품의 명성·품질·특성 등이 특정 지리적 근원에서 유발되는 경우에 그 원산지를 표기하고 이를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발포성 와인에만 샴페인(Champagne)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외 지역에서 생산한 동종 와인은 스파클링 와인으로 통칭하는 것이 여기서 기인한다.
지식재산권, FTA 예외 인정 안 돼
WTO와 같이 FTA도 무역협정이므로 지식재산권 관련 내용이 포함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상품이나 서비스 무역에서의 FTA 예외가 지식재산권과 관련해서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미 FTA를 통해 양국은 다른 WTO 회원국에게 주지 않는 상품·서비스 무역에서의 특혜를 서로 제공할 수 있다. 관세 철폐나 서비스 시장 추가 개방 등이다. 한국이 FTA 비체결국에서 수입되는 자동차에 8%의 관세를 부과하면서도 미국산 자동차에는 무관세 혜택을 주는 일이 용인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른 회원국들을 똑같이 최선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최혜국대우 원칙1의 위반으로 볼 수 있으나, FTA에 대해서는 예외 조항이 상품협정(GATT 제24조)과 서비스협정(GATS 제5조)에 각각 존재하므로 가능하다. 하지만 지식재산권의 경우는 이러한 예외 조항이 없다. 실례로 한국은 미국과의 FTA를 계기로 저작권에 대한 보호 기간을 저작자의 생존 기간과 사후 70년까지 보호하게 되었는데, 이는 미국 저작권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저작권에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추가로 최근의 FTA에서는 소리(sound)나 냄새(scent) 또한 상표로 인정해 보호 대상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영화 제작사 MGM은 영화 시작 전 로고와 함께 등장하는 사자의 포효로 유명한데, 바로 이 울음소리가 소리 상표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유럽 對 캐나다의 엔드 게임
유럽은 캐나다의 특허법에 대해 WTO에 제소(DS114)해 2000년 4월 패널심에서 승소했다. 문제가 된 캐나다 특허법 제55조 2항2은 특정인이 특허 상품의 특허 기간이 종료된 이후 판매를 목적으로 이를 미리 대량생산·보관하는 것이 특허권 침해가 아님을 명문화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캐나다에서는 유럽의 신약 특허가 만료되기 전에 이를 사용하여 복제약(generic)을 대량생산해 미리 보관(stock-piling)해뒀다가 기존 유럽 신약의 특허 기간 종료와 동시에 판매하는 것이 가능했다. 유럽은 캐나다의 이런 행위가 TRIPs 협정 제28조가 부여하는 특허권자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았고, 그렇다고 제30조에 근거해도 예외성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3 양측 모두 캐나다의 행위가 특허권자의 권리에 침해된다는 것은 인정했으므로 쟁점은 제30조에 의한 예외 가능성이었다. 제30조에 따르면 예외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① 제한적(limited)으로만 가능했는데, 캐나다 특허법은 ② 복제약을 얼마만큼 제작·보관할 수 있는지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아 위반 소지가 있다고 봤다. 특허권이 종료된 뒤에도 경쟁사들이 복제약을 생산·판매하기까지 기존 개발사의 독점적 지위를 어느 정도 인정한 셈이다. 특허권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며, 유럽과 캐나다의 특허권 엔드 게임은 그 엔딩의 해석에도 차이가 있었다.
1 최혜국대우 원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통상: 통하는 세상>(2019년 2월호) 무역지식인을 참고.
2 해당 조항의 주요 내용 해석과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특허권이 만료된 후의 판매를 목적으로 특정인이 그 특허 발명을 생산·보관하는 것은 위반이 아니다. “It is not an infringement of a patent for any person who makes, constructs, uses or sells a patented invention [...], for the manufacture and storage of articles intended for sale after the date on which the term of the patent expires.”
3 제28조 허여된 권리(Article 28 Rights Conferred), 제30조 허여된 권리에 대한 예외(Article 30 Exceptions to Rights Confer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