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주의 확산, 무역분쟁 장기화 등으로 국제통상 질서가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가치사슬(GVC) 변화, 세계적인 제조업 리쇼어링(reshoring) 정책 실시 등 제조업 관련 통상 이슈가 발생하면서 제조업 부흥 전략을 담은 ‘제조업 르네상스’가 주목받고 있다. 관련 전문가와 기업들은 이번 전략이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을지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조업은 2017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29.6%, 수출의 90%를 차지한다. 우리 경제의 기둥이자 성장 엔진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상황에서 제조업의 도약을 뒷받침하는 전략이 발표되자, 우리나라 제조업이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한 시작점에 서게 됐다는 기대가 나온다. 시장에선 제조업 부흥을 위한 선결 과제를 풀어나가고, 민관이 힘을 모아 중·장기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산업정책을 총괄하고 제조업 르네상스 대책 수립에 참여한 이재석 산업정책과 산업정책팀장, 산업통상 분야를 연구하는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그리고 정보통신기술(ICT)과 산업 분석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이상근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교수까지.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과제와 향후 전망을 진단하고자 세 명의 전문가가 모였다.
# 세계적 제조업 부흥 기조와 한국의 현주소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 부흥의 물결이 일고 있다.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은 물론 베트남·인도 등 신흥국까지 제조업 부흥 정책을 펼치며 제조업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제조업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
이재석 팀장 많은 국가들이 2008년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조업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금융위기 당시 제조업 기반이 튼튼하던 국가들은 비교적 빨리 회복했다. 이를 계기로 제조업 선진국뿐 아니라 후발국에서도 제조업 육성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각국의 제조업 부흥 전략을 살펴보면 자국 산업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바탕으로 자국만의 강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육성하고 있다. 독일은 ICT 산업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이후 ‘인더스트리 4.0’ 전략을 통해 제조업에 주력하고 있으며, 영국은 제조업 공동화와 낮은 생산성 증가율 해소를 위해 미래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제조 2025’ 전략을 내세워 신산업 육성으로 단순 생산 기지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제조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간의 양적·추격형 성장전략에서 벗어나 혁신 선도형 제조 강국 실현을 위한 방향성과 추진전략을 제시하는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을 마련했다. 이번 비전에서는 우리 제조업을 둘러싼 환경변화, 주요국 동향, 미래 전망 등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제조업이 해결해야할 과제와 대안들을 모색했다.
주원 실장 스웨덴의 제조업 부흥 전략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1990년대 스웨덴은 높은 R&D 투자 대비 낮은 산업적 성과를 냈던 국가다. 현재 우리나라가 당시 스웨덴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논문, 특허 등의 실적이 크게 개선된 반면 특허 이용 등에 대한 산업적 성과가 매우 저조하다. 스웨덴은 산학연의 강력한 협력 플랫폼 구축과 민간 주도형(bottom-up) R&D를 통해 제조업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 역시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을 통해 신산업을 새로운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고, 이를 혁신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편 지금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신흥국까지 제조업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비스 산업 중심의 성장에 대한 한계를 인식한 국가들이 안정적인 경제 성장의 기반으로 제조업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조업이 부진할 때마다 경제 전반이 휘청이는 경험을 많이 해온 우리나라는 제조업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상근 교수 20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세계경제를 견인해온 인터넷 산업이 과도기에 접어들면서 성장의 한계성을 느낀 국가들이 제조업으로 다시 눈을 돌리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실물경제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제조업으로의 회귀가 요구되는 시점에 다다르면서 각국이 경쟁적으로 투자한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제조업 르네상스를 발표하며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 공장 등 제조업 혁신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노력은 현재의 세계적 흐름에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소품종 대량화가 아닌 다품종 소량화를 통해 소비자의 니즈를 맞추는 품목을 선호하는 세계적인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서도 산업 생태계 혁신은 반드시 필요하다.
# 국제 통상환경 변화 속 제조업 르네상스의 필요성
보호무역주의 확대와 무역분쟁 장기화 등으로 인해 국제 통상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제조업 관련 통상 이슈는 무엇인지 짚어보고, 제조업 르네상스가 선제적 대응 방안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주원 실장 세계 경제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확연히 둔화됐다. 쉽게 말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5%일 때 교역증가율이 10%에 달했던 것에서, 세계 경제성장률이 5%일 때 교역증가율 역시 동일하게 5%에 그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만큼 중간재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는 보호무역주의가 확대되고 있다는 뜻으로, 중간재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위협이 되는 상황이다. 미·중 무역 갈등, 한·중 사드 갈등, 그리고 일본의 수출 규제까지 보호무역 자체가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국내 기업에는 큰 불안 요소다. 이로 인해 가장 크게 우려되는 영향은 글로벌 가치사슬(GVC) 구조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인데, 변화 여부에 대해서는 확실히 단언하기 힘들다. 다만 가치사슬 변화에는 상품을 제조하는 공장이 있는 국가뿐 아니라 R&D, 기획 및 디자인, 부품 및 소재 조달 등 모든 과정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파급력이 크다는 것은 명심해야 한다. 만일 상품 생산이 소비되는 국가에서 이뤄진다면 우리나라와 같이 GDP 중 수출 비중이 높고, 글로벌 가치사슬에 매우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국가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의 산업정책은 생산이 어디서 이뤄지든 국내에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강구해야 한다.
이상근 교수 글로벌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를 보면, 최근 PMI 지수는 2011년 10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며 세계 경제의 전체적인 둔화를 예고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통상 전쟁으로 인해 세계 무역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상환경이 역으로 우리에게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시장 조사 업체 디램 익스체인지(D-Ram Exchange)에 따르면, DDR4 8Gb D램의 현물 가격은 10개월 만에 상승세를 보였다.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던 산업이 일본의 반도체 규제로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자 수급 우려로 매수세가 나타난 것이다. 한편, 글로벌 가치사슬(GVC) 구조에는 반드시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 예전처럼 인건비가 저렴한 곳에서 제품을 생산한 후 수출하는 방식은 점차 사라지고, 소비시장과 가까운 곳에 공장을 세우며 물류 비용을 절감하고 있는 추세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에 제조업의 부가가치 창출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포함돼야 한다.
이재석 팀장 EU와 미국 등 모든 국가는 자국 제조업 강화를 위해 해외에 진출한 기업의 국내 귀환, 즉 리쇼어링(reshoring)을 촉진하고 있는 대외 환경에 대해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진단한 대로 국내 제조업은 부가가치율이 낮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크게 세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핵심소재 부품의 국산화율이 저조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프리미엄 제품의 비율이 낮으며, 제조업 가치사슬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설계 및 디자인 역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에 각각의 소재부품 장비의 경쟁력 강화, 서비스 융합, 고도화된 제품에 대한 도전 등을 담은 것이다.
정부는 빠른 시일 내에 세부 대책을 통해 기업 투자 환경 개선과 노동 이슈 관련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발표한 전략은 제조업 부흥 정책의 커다란 방향성만 제시한 것이다. 정부 또한 기업의 새로운 시도와 과감한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투자 지원 및 규제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반영한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도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향후 신산업 분야의 규제 혁신 로드맵도 마련할 방침이다.
# 제조업 부활을 위한 민관의 과제와 향후 전망
제조업 르네상스가 직면하고 있는 선결 과제는 무엇일까. 나아가 제조업 르네상스가 성공적으로 이뤄졌을 때,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기대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전망해본다.
이상근 교수 제조업 르네상스 성공을 위한 선결 과제로 규제 완화를 꼽을 수 있다. 시장 조사기관 포레스터 리서치가 매년 발표하는 개인 정보 활용 규제 지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최고등급인 ‘규제 심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로 인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라고 불리는 빅데이터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현재 국회에서 표류 중인 빅데이터 3법을 시작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앞서갈 수 있는 점진적 접근법이 필요하다. 또 국내 기업에 동기 유발 및 의지를 북돋워주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정부가 기존 전통 제조업에서 새로운 공정으로 전환할 의지가 있는 기업에 금융 지원을 해줘야 한다. 인재 육성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관련 인재를 육성하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제조업 부흥을 위해 나선다는 방침에 대해 업계는 환영하고 있다. 다만 급격한 최저임금의 상승이 제조업 전체는 물론 서비스업의 임금 상승을 가져오고 있다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최저임금 차등화를 하지 않는 것이 산업 전체를 정체시킨다는 주장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주원 실장 제조업 르네상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제 개혁과 규제 혁신 등 실질적 조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전략 중 하나인 이종 산업 간 융합은 이미 세계의 선도 기업들 사이에서는 만연한 이야기다. 제조업과 타 산업을 융합하려면 걸림돌이 되는 규제 등을 개선해야 한다. 결국 노동 개혁, 과감한 규제 완화, 기업들의 조세 부담 경감 등과 같은 조치를 통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고 투자에 대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의 혁신, 콘텐츠 산업 역량 및 제조업과의 소통·연계 강화도 필요한 조치다. 기초 기술 및 신기술 확충을 위한 과학기술 분야의 고난도 R&D 시행과 정부-학계-산업 간 유연한 협력이 필요하다.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금융도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민간 금융이 부족하다고 해서 정부 자금으로 모두 채울 수 없기 때문에 금융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제조업 르네상스가 성공한다면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 달성, 기술 혁명에 따른 생산성 향상 등으로 사회적·경제적 편익 창출 및 잠재 성장률 제고 등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제조업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민간의 생각을 읽으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정부는 기업의 의견에 끊임없이 귀 기울여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재석 팀장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을 구성하면서 제조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금융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사실 민간 투자자본이 부족한 데다 대부분 정책 자금에 의존하고 있어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금융 지원이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다. 이에 관계부처 등과 협의하여 제조업 혁신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제조업 르네상스가 성공하면 제조업과 서비스업 융합을 통해 산업이 더욱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조 기업과 서비스 기업의 협업과 융합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융합 얼라이언스를 적극 지원하고, 산업 인재 양성과 각종 산학 인턴십 운영을 위해 관련 부처와 협의할 계획이다. 민관이 함께 제조업이 육성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간다면 제조업 르네상스의 목표인 부가가치 창출, 세계 일류 기업 증대, 일자리 문제 해결 등의 목표를 이룰 것이다. 이번 전략은 앞으로 범부처 차원에서 제조업 혁신을 위해 새롭게 도전하고 투자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나 다름없다. 민간에서도 정부를 믿고 신산업 투자에 과감히 나서준다면, 제조업이 앞으로도 경쟁력을 잃지 않고 부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대한민국은 메모리 반도체, OLED, 조선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굳건히 유지했다. 세계시장 점유율 5%, 5위 이내에 해당되는 우리나라의 세계 일류 상품만 573개에 달한다. 이처럼 국내 경제를 지탱하고, 세계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제조업의 위상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중 하나가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이 될 것이다. 제조업 혁신이 지속적인 성장동력이 될 수 있도록 민간의 과감한 도전과 정부의 실효성 높은 지원 방안 마련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