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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VOL.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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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꽃피우다

게임, 질병과 한류 산업의 첨병에서

- 게임 한류, 바람직한 게임 문화 육성을 위해 힘써야

‘2018 콘텐츠 산업 통계 조사’에 따르면 게임이 전체 콘텐츠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7.2%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등 게임 한류는 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많다.

자료  정덕현 문화평론가



게임 한류, 어디까지 왔나

국내 게임 산업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국내 게임 산업 수출액의 엄청난 성장세다. 지난 7월 5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게임 산업 수출액은 2001년 1억 3,047만 달러(1,500억 원)에서 2017년 59억 2,300만 달러(6조 9,000억 원)로 무려 45배 이상 증가했다. 16년 동안 연평균 26.9%씩 성장한 셈이다. 게임 산업의 규모도 커져 2001년 3조 516억 원이던 국내 게임 산업의 매출액은 2017년 13조 1,423억 원으로 엄청나게 몸집을 키웠다. 특히 2017년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배틀그라운드’를 비롯해 중국에서 흥행한 ‘던전앤파이터’, ‘크로스파이어’ 같은 한류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한 해 동안 게임 수출액이 무려 80.7% 급증하는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 문체부가 발표한 ‘2018 콘텐츠 산업 통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콘텐츠 수출에서 차지하는 게임의 비중은 67.2%로 그 어느 분야보다도 압도적으로 높다.
지난 6월 14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한국과 스웨덴의 e스포츠 A매치는 국산 게임이 지닌 위상을 잘 보여줬다. 해외 순방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이 함께 참석해 관람한 이날 경기에서는 국산 게임의 대표 종목으로 컴투스의 모바일 게임 ‘서머너즈 워’의 친선경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서머너즈 워’는 2014년에 출시된 게임으로 누적 다운로드 1억 건을 넘어섰고, 134개국에서 모바일 게임 매출 10위권을 달성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100만 명이 즐기는 글로벌 흥행작이다. 그간 국산 게임들이 주로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권에서 성과를 거둬온 것과 비교해보면 ‘서머너즈워’의 성과는 이제 서구권으로도 진출한 게임 한류의 현재를 가늠하게 해준다.
한국은 명실공히 이른바 e스포츠의 종주국이기도 하다. 1990년대 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스타크래프트’를 e스포츠로 격상시킨 한국은 지금도 외국인들에게는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이 각인되어 있다. 지난 4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2019 LoL 챔피언스 코리아’는 해외 온라인 동시 시청자 수가 최고 242만 명으로, 국내 온라인 최고 동시 시청자 수 46만 명보다 5배 이상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분류를 둘러싼 입장 차이

게임 한류는 이처럼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고, 향후 콘텐츠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만만찮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 5월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WHO 총회에서 게임 이용 장애를 공식 질병으로 분류하게 되면서다. 이로써 국내에서는 게임업계와 의료계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찬반을 놓고 정부 부처 간에도 팽팽하게 대립 중이다. 즉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는 게임을 중독의 원인으로 보고 이번 발표가 국제사회에서도 게임의 유해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반면 게임 산업의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게임은 하나의 도구일 뿐 그 원인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게임업계와 의료계도 대립하고 있다. 게임 업계 측은 이번 WHO에서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분류가 전후 관계를 입증할 자료가 분명치 않을 뿐 아니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게임 중독의 양상과는 다른 훨씬 심각한 상황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WHO가 말하는 게임 이용 장애는 게임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먹고 자는 등의 일상 활동보다 게임을 우선시하고, 개인의 신변에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게임에 몰입하는 증상을 보이며, 이런 증상이 1년 동안 반복됐을 때 해당되는 것이므로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건 지나친 질병화로 인한 과잉 의료화의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게임업계는 게임을 질병으로 바라보는 이런 시선이 국내에도 적용될 경우 한창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는 게임 한류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국내에서 청소년의 특정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가 운영되고 있는 데다, 질병 코드화로 각종 규제가 더해질 경우 게임 산업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 다만, 이번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분류는 전 세계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인 만큼 국제 통상거래에서 특정 국가가 특히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다만 게임을 바라보는 국내와 해외의 시각차가 분명해 국내 게임업체들이 해외 게임 선진국들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해외 게임 선진국들은 게임을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기술로 받아들이는 면이 있고 질병 분류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우리는 게임을 유해한 것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제출한 ‘게임 과몰입 정책 변화에 따른 게임 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질병 코드 도입으로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발생할 게임산업의 경제적 위축 효과가 약 1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었다.


‘2019 LoL 챔피언스 코리아’ 현장.  사진 제공 연합뉴스



게임 산업, 문화 육성이 우선되어야

물론 게임업계에서 스스로 게임 이용 장애의 문제를 야기할 만한 빌미를 제공한 부분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이른바 ‘현질(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하는 일)’이라 불리는 도박적이고 사행적인 요소들을 게임업체들이 조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현질의 요소들은 실제로 많은 게임 소비자가 불만을 토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캐릭터를 꾸미기 위해 혹은 이기기 위해 게임 소비자가 돈을 쓰게 만드는 방식의 마케팅은 자칫 사행성을 조장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어두운 면이 일부 존재한다고 해서 게임 산업 전체를 병적으로 보고 규제를 먼저 이야기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사실 TV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바보 상자’라는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의 스마트 TV 시대에 ‘선택적 시청’을 하는 대중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기우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건 문화다. TV도 인터넷과 결합하면서 대중들이 좀 더 비판적으로 방송을 시청하는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마찬가지로 게임도 중요한 건 규제보다 문화라는 것이다. 게임은 이제 특정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흥미를 유발하고 좀 더 대상에 몰입할 수 있게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이 지닌 오락적 요소들이 일상적 삶의 게임화(gamification)를 추구하고 있는 게 지금 우리 사회의 변화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증의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일반화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결국 게임이 유발할 수 있는 부정적 결과 역시 궁극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한 게임 문화를 만드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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