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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VOL.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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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르네상스의 방향,

추격형 산업구조에서 혁신 선도형 산업구조로

제조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뿐 아니라 산업 전체의 발전 방향을 결정한다. 제조업의 성장이 물류와 운송 등 관련 서비스업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산업 전체로 확산된다는 점에서 중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제조업의 혁신을 통해 한국 산업의 재도약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



제조업은 산업 전체의 혁신을 견인하는 원천

우리나라의 제조업은 전 산업의 부가가치 생산에서 30%를 점하고 있으며, 산출에서는 50%에 근접한다. 반면 제조업 부가가치율은 약 25%로, OECD 주요국 평균이 30%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제 규모에 비해 우리나라가 매우 낮은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의 중요성을 깨달은 주요국들은 제조 혁신에 총력을 쏟고 있다. 미국이 첨단 제조 파트너십(Advanced Manufacturing Partnership)을 적극 추진하는 것을 비롯해 일본은 신산업 구조 비전(2017)과 미래 투자 전략(2018), 독일은 인더스트리(Industry) 4.0, EU는 유럽(Europe) 2020 등을 통해 제조업 부흥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역시 제조 2025와 인터넷 플러스 등을 통해 제조업 강국에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정책의 강화는 강력한 제조 기반이 국가 혁신 역량과 직결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디지털 전환이라는 글로벌 기술 혁신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새로운 국제 경쟁 질서에 대한 주도권 확보를 목표로 한다.


제조업의 성장 둔화와 3중고 직면

세계 제조업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늘어나면서 선진국의 비중은 계속 낮아졌다. 그러나 한국의 제조업은 안정적 성장을 지속해 3%대의 비중을 유지하고 있어 규모 면에서의 위상은 강화되었다. 주요 산업은 생산이나 수출, 출하에서 세계 1위부터 10위 이내로 진입했다. 국가별 생산에서 조선해양과 디스플레이는 세계 1위이며, 석유화학 4위, 자동차·가공공작기계·철강이 6위다. 기업 측면에서는 반도체와 통신 기기에서 세계 1위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은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급부상하는 가운데서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기회를 잘 활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높아지는 추세이던 우리 제조업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최근 들어 정체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해외 수출시장에서의 경쟁 심화와 신흥국의 해외 진출 확대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결과다. 주력 산업의 성장 부진과 세계시장 점유율 둔화는 중국의 성장과 경쟁 압력의 증가에서 시작됐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산업들의 제품 구조 변화가 지체된 것에서 비롯한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주력 산업은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 시장으로 진출하는 일에 매진하면서 양적 규모가 확대돼 높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제품 구조를 고도화하거나 수요 변화 트렌드에 대응하는 제품군을 다양하게 확보하는 데는 미흡했다.

생산 주체 측면에서도 한국 제조업은 일부 주력 상품과 수출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어 대외 변동에 구조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상위 10대 산업의 수출과 생산이 총수출과 생산에서 점하는 비중은 70%로 특정 산업에 대한 집중도가 높다. 수출에서도 대기업 비중이 80%에 달한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수출과 생산을 주도하는 산업 중 자동차·조선·석유화학·철강 등은 대기업의 비중이 높아 특정 업체의 경영 전략이나 수익성에 의해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산업구조의 질적 고도화를 위한 노력이 무색하게 여전히 기술과 품질에서 선진국에 비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제품 경쟁력 열위는 세계 경기에 대한 변동성이 높은 취약한 교역 구조로 이어졌다. 중국과 신흥국이 성장하면서 대중 수출 정체, 주요 시장에서의 수출 확대 고전, 그리고 수입 증가라는 3중고의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

한국 제조업의 양적 확대에도 부가가치율이 선진국과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이는 것은 우리 산업이 대량생산 기반 제품의 비중이 높고,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요소 투입적 성장에 기반하며, 총요소생산성1 향상이나 혁신 활동이 낮기 때문이다.

한편 제조업 생산을 위한 중간 투입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높아, 국내 생산이 늘어날수록 수입 역시 늘어나는 구조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세계 메모리의 60%를 공급하는 반도체 산업에서 소재와 장비의 약 80%를 수입에 의존하며, 글로벌 산업을 선도하는 디스플레이도 장비의 약 75%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렇듯 신기술에 기반한 첨단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해외 장비를 주문하고 구입하는 과정에서 신제품과 공정에 대한 개념 설계를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글로벌 선도국으로서의 위상에 걸맞지 않다.

수출 확대를 통한 성장 전략으로 인해 주력 산업 대부분 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기 때문에 해외 경기 변동이나 제도 변화에 따른 국내 생산의 변동성과 수익의 위험성이 높다. 여기에 총수출에서 점하는 대기업 비중이 80%로 세계 주요 수출국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성장 효과가 국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제조업의 혁신은 제조업의 부가가치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되 산업 생태계의 강건성을 높이고 주체들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산업의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 요인 진단을 통해 글로벌 가치사슬(GVC)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한국형 산업 발전 비전을 수립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제조업 르네상스 선포 현장(1).  사진 제공  연합뉴스

제조업 르네상스 선포 현장(2).  사진 제공  연합뉴스



우리나라 제조업의 중·장기 비전

4차 산업혁명, 환경 규제 강화, 무역질서 재편 등 대내외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는 2018년 12월 ‘제조업 활력 회복 및 혁신 전략’을 발표하고 주요 업종별 현안 대응과 발전 전략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제조업 발전의 방향성과 전략을 제시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우리 제조업이 지금까지의 양적·추격형에서 벗어나 혁신 선도형 제조 강국을 실현하기 위해 2030년까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추진 전략을 마련해 지난 6월 19일에 발표했다. 이번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은 제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와 주요국 동향 등을 통해 미래를 전망하면서 우리 산업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도출하고, 제조업 전반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통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중·장기 제조업의 비전을 ‘세계 4대 제조 강국으로의 도약’으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목표까지 제시했다. 우선 현재 주요 국가들에 비해 차이가 나는 제조업의 부가가치율을 2030년까지 5% 정도 높여 산업구조를 재편하겠다는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제조업 중 신산업·신품목의 비중을 30%까지 획기적으로 높이고, 세계 일류 기업도 2배 이상으로 키워 세계 수출시장에서 4위까지 도약한다는 비전을 설정했다.




제조업 르네상스 4대 추진 전략

4대 추진 전략은 산업구조 혁신, 신산업 창출·주력 산업 혁신, 도전과 혁신의 산업생태계 구축, 산업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로 설정했다. 첫 번째 산업구조 혁신 가속화를 위한 세부 전략으로는 스마트화, 친환경화, 융·복합화를 들고 있다. 스마트화는 스마트 공장, 스마트 산업단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업종 특화의 산업 지능화를 통해 추진하며, 친환경화는 제품과 생산 공정을 모두 재편해 친환경 시장의 선도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기술 혁신과 비즈니스 모델 변화를 반영해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의 융·복합화를 더욱 촉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두 번째는 신산업을 새로운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고 기존 주력 산업은 혁신을 통해 탈바꿈하는 것이다. 신산업 창출에 지속적으로 국가적 역량과 자원을 결집하고 주력 산업은 고부가 유망 품목 중심으로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상시적인 사업 재편과 기업 구조 혁신을 지속하며, 세계 일류 기업을 확대하고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을 지원한다. 제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해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육성해 우리 제조업의 경쟁 우위와 자유도를 높이며, 산업단지를 개조하여 혁신의 허브로 활용한다.

세 번째로 산업 생태계를 도전과 축적이 가능한 체제로 전면 개편하며 기존의 요소 중심에서 사람·기술·금융 측면을 강화한다. 제조업 구조 전환에서 필요한 인재를 적기에 양성하며, R&D 체제를 혁신하고 혁신 제조 기업의 도전과 성장을 뒷받침하는 금융 체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정부뿐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의 전반적인 혁신과 구조 재편이 필요한 분야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전략은 정부 역할은 물론 민관 협력 체제도 강화하여 민간의 주도성을 인정하며 투자와 혁신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과 과감한 지원을 통해 국내 투자 활성화를 촉진하고 정부의 선도적인 수요 창출과 대규모 실증 사업 확대를 통해 신산업을 창출하고 글로벌 진출을 지원한다.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을 발표하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사진 제공  연합뉴스


제조업 발전 로드맵으로 구체화해야

이번에 발표한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과 전략은 메가트렌드를 반영하고 있으며, 산업의 발전 방향과 경로를 정립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우리 산업이 지닌 장단점과 경쟁 우위를 고려하는 한국형 제조 혁신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전과는 차이가 있다.

앞으로는 중·장기적 관점을 견지하는 동시에 역동성을 반영해 제조업 전반에 걸친 제품 혁신-공정 혁신-조직 혁신-비즈니스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따라서 산업발전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더라도 방향 설정과 단계별 성과지표에 대해 정의하고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중·장기 목표에 기반하되 단기적(1·3·5년식)으로도 대내외 여건이나 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

특히 통합적인 산업정책에 기반해 개별 산업별로 위기 원인을 파악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업종별로 적절한 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매년 주요 산업 및 현안 분석을 통해 중·장기 발전 방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구조 대전환의 시대에 제조업의 고도화는 기존의 추격형 전략에서 벗어나 선발자로서의 역량과 비전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 과거 패러다임이 효율적 공급체제, 가격경쟁, 산업 혹은 기업 경쟁력을 중시했다면, 앞으로는 소비자 대응, 제품·서비스 융합 시스템의 경쟁, 유연한 사업 재편과 적응 역량의 강화가 관건이다. 한편 디지털 전환 추진 과정에서 중소기업들이 적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산업생태계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어 이에 대한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지능형 인프라에 대한 중소·창업 기업의 접근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민간이 주도하되 정부 지원의 적기성을 높여야 한다. 지능 정보 기술에 대해 R&D 위주의 지원보다는 혁신적 기업들의 생태계를 지원하는 정책과 예산 확대가 필요한 것도 같은 이유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산업 발전은 과거처럼 선형적 형태가 아니라 동시에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산업정책 패러다임의 변화 필요

산업정책의 목표, 정책 대상, 정책 수단, 추진 체계의 전환은 더 나은 시장과 사회·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개입이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급속한 기술 변화와 디지털 전환에 대응해 기존의 기술 시스템에 최적화된 사회·경제 시스템과 제도 등을 새로운 생산과 소비 패러다임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편해야 한다. 그리고 세대 간·부문 간 이해관계자의 다양한 요구를 적극적으로 조정하는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내야 한다.

정책 수단과 추진 과정에서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면 적기성과 정책 간 정합성을 도모해야 한다. 그러나 전 과정은 민간 부문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확산을 촉진해야 하며, 정책 개입에 의한 구축 효과(Crowding-Out Effect)2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재정 투입 혹은 국가 주도보다는 민간 부문 활성화를 위한 여건 조성에 주력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와 같이 자원을 동원해 투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성과를 높이기보다는 생산구조의 질적 전환과 인적 자원의 결합을 고도화하고, 정책 대상도 특정 기업 혹은 산업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혁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제조업 르네상스라는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새로운 성장방정식에 대응하는 산업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장 실패에만 개입하는 소극적인 정책 개입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리스크가 커서 기업들이 투자를 회피하거나 주저하는 기술 개발과 프로젝트에 선제적으로 투자하여 미래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민간 단독 추진이 어려운 복합·시스템형 R&D, 초기 시장 창출, 신기술·신제품의 시장 진입 촉진 등은 공공 부문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정부 투자를 기업 투자와 성과로 연계하기 위한 전략도 강화해야 한다. 정책 추진과 관련해서도 특정 제품·기술·산업을 대상으로 하던 기존의 승자 선발(picking winner) 방식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한 목표 설정(mission oriented) 방식으로 확대해야 한다.



1  노동생산성뿐 아니라 근로자의 업무 능력, 자본 투자 금액, 기술도 등을 복합적으로 반영한 생산 효율성 수치.
2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시중의 이자율을 상승시켜 민간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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