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PP, 가입을 향한 시선②
CPTPP가 2018년 12월 30일 발효한 상황에서 한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CPTPP의 가입 시기와 방법을 고민해봐야 할 때다.
글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부교수
2018년 3월 9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CPTPP 공식 서명에 나선 11개국의 장관들.
CPTPP의 시작과 전망
CPTPP는 2008년 미국 부시 대통령 때부터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8년에 가까운 오랜 협상 끝에 미국을 비롯한 12개국이 2016년 2월에 서명한 TPP에서 시작된다. TPP는 2016년 말 미국 의회 비준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2017년 1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탈퇴를 선언하면서 갈 길을 잃었다. 이후 일본을 중심으로 한 11개국은 2018년 3월 TPP의 합의 내용을 존중하면서도, 미국의 주장이 많이 반영된 22개 사항은 유예한 채 CPTPP 타결을 선언했고, 2018년 12월 30일 발효했다.
CPTPP 참여에 관한 한국의 고민
TPP 협상이 진행되던 2013년 11월, 한국은 TPP 참여에 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면서 참여국들과 양자 협상을 진행했다. 당시 한국은 TPP가 한·일 FTA를 포함한다는 업계의 우려에도 TPP 배제에 따른 불이익을 고려해 참여 의사를 표명했다. 성한경(2015)에 따르면, 한국이 TPP에서 배제되면 10년 후 한국의 실질 GDP가 약 0.1% 감소할 수 있다. 또 TPP 합의로 일본이 한국보다 미국과 동남아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더 높일 수 있었고, 누적 원산지 규정을 적용하면 한국이 배제된 글로벌 가치사슬이 완성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게다가 TPP 협정이 오바마 대통령의 의도대로 21세기형 FTA의 표준이 될 때 협정 내에 한국의 주장이 부재한 점은 대외 의존도가 80%를 넘어서는 한국 입장에서는 향후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그뿐 아니라 TPP 협상이 끝난 후 가입하면 기존 회원국이 높여둔 진입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하지만 이미 TPP 협상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에서 주요 참가국인 미국은 타결 전에 참여국을 늘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실 한국 입장에서는 CPTPP 참여에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나타낼 수 있다. 미국이 없는 CPTPP가 국제 통상 질서를 주도하기 어려운 데다, 한·일 FTA의 부정적 효과가 CPTPP에서는 더욱 명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 현재 일본에 비해 한·미 FTA를 통해 미국 시장에 대해 높은 접근성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TPP 장관과 일데폰소 과하르도 비야레알(Ildefonso Guajardo Villarreal) 멕시코 경제부 장관이 악수하고 있다.
CPTPP는 언제, 어떻게 참여해야 하나?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여전히 CPTPP에 참여할 필요가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언제 해야 할까. 필자는 CPTPP 참여에 대한 여러 유보적 견해에도 다음의 이유로 한국이 CPTPP에 참여해야 할 뿐 아니라 되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CPTPP는 보호무역주의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효되는 유일한 메가(Mega) FTA이고, 또 FTA는 발효 초기에 그 파급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추후에 보호무역주의가 완화되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같은 메가 FTA가 타결 및 발효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그리고 이순철(2018)에 따르면, FTA는 발효를 전후로 상대국과의 투자와 무역량이 급격히 증가한다. 그만큼 FTA 효과가 남아 있을 때 진입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CPTPP는 언젠가 TPP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순히 2018년 초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TPP에 복귀할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도 호황을 지나 불황으로 접어들면서 장기적으로 이를 개선하기 위해 TPP 복귀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때 한국이 최소한 CPTPP 참여 협상조차 시작하지 못하면, 과거와 같이 TPP에서 배제되는 것은 자명하다. 또 참여를 위한 협상을 진행할 경우 미국은 한·미 FTA 개정 협상보다 자국의 이익을 더 많이 관철한 USMCA과 동등한 협상 조건을 한국에 다시 요구할 수 있다. 게다가 일본도 미국이 복귀하면 미국 시장을 두고 경쟁할 한국의 참여가 반갑지 않을 것이다.
셋째, 애석하게도 한국 입장에서 CPTPP 참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국제 통상환경에서 한국은 경제 대국이 아니다. 제3의 경제 대국인 일본은 말할 필요도 없고, 중국 역시 미·중 통상 갈등 과정에서 미국에 사실상 밀리고 있다. 아쉽지만 아직 한국은 국제 통상환경에 맞춰 기민하게 대응하고, CPTPP의 향후 변화 가능성과 관련한 국익의 변화를 고려할 때 CPTPP에는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유로 참여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한국이 CPTPP에 참여하려면, 통상절차법에 따라 CPTPP 참여의 타당성 검증, 대국민 공청회, 국회 보고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실효성 있는 국내 절차를 따라야 한다면 되도록 2019년 상반기에 마치고, 미국의 CPTPP 복귀에 앞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CPTPP 참여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일본의 시장 개방이다. CPTPP 협상에 대한 우려를 참작하면, 높은 비관세장벽이 존재하는 일본 시장에 대한 접근성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과거처럼 일본의 농업시장 개방을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일본 내 민감성을 고려하면, 기존 TPP 수준 이상으로 개방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최근 타결된 일·EU EPA에서 일본의 개방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EU는 EPA 협상에서 일본의 자동차, 의약품, 섬유 등 산업의 국제표준과 가이드라인 적용을 관철한 바 있다. 우리도 최소한 그와 유사한 형태의 개방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모쪼록 한국의 CPTPP 참여 논의가 실기하지 않기를 바란다.